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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Apr 18. 2023

3.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던

어쩌다 세계여행, 캘리포니아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저는 지금 또다시 이사를 했어요. 이번에는 정말 멀리멀리 13시간을 날아서 지구 반대편, 미국 캘리포니아에 왔어요. 뜬금없이 미국이라니, 조금은 놀라셨겠죠? 벌써 캘리포니아 주의 Orange county라는 지역에 온 지 이 주가 다 되었네요. 편지가 조금 늦었어요. 시차적응도 시차적응이지만 새벽 4시, 5시에 일어나 서핑하러 가야 해서 잠을 많이 못 잔 탓에 비몽사몽인 상태로 열흘이나 보냈지 뭐예요. 매일 새벽에 서핑을 하러 간다니 꿈만 같은 일이라고 상상하시려나요? 


처음 엘에이 공항에 내렸을 때 느낀 칼바람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요. 캘리포니아가 이렇게 추운 곳이었단 말인가. 정말 충격이었어요. 그때 제 옷차림은 반팔티에 긴팔 셔츠 하나를 걸치고 무려 반바지를 입고 있었거든요. 친구가 데리러 와준다고 해서 공항 밖에 나와 기다렸어요. 태너는 작년 멕시코를 여행하다가 만난 친구인데 캘리포니아에 가게 됐다고 먼저 연락을 했더니 자신도 옆 동네에 산다는 거예요. 어라, 이런 우연이 있나! 공항 픽업을 나와준다길래 냉큼 좋다고 했죠. 공항 밖으로 나와 서있으니 픽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마중 나온 가족, 연인, 친구들 차를 타고 떠나갔어요. 도착하자마자 나와서 찐한 키스를 하는 연인, 바로 트렁크에 짐을 싣고 타는 사람, 찐한 포옹을 하는 친구. 사람 구경을 하는 것도 좋았지만 사실 너무 추워서 얼른 친구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한동안 벌벌 떨고 있는데 뒤에서 친구가 나타났어요. 친구가 배낭을 차 뒷좌석에 넣어주고 저는 작은 배낭을 들고 조수석에 올라탔어요. 빨간 차 안으로 쏙 들어가니 그제야 캘리포니아의 예쁜 야자수가 보이더라고요. 쨍한 햇살, 차 안에서 바라본 캘리포니아가 제가 상상하던 바로 그 캘리포니아였거든요. 


네 시쯤 공항에서 출발했는데 트래픽이 엄청나더라고요. 차가 많이 막힌 덕에 친구랑 밀린 이야기를 나눴어요. 친구한테 피곤하다고 했더니 왜냐고 묻더라고요. 생각해 보니까 그럴 만도 했어요. 호놀룰루에서 엘에이로 넘어오는 비행기 안 제 좌석이 창가석이었는데 이미 누가 앉아있더라고요. 복도 쪽 자리에도 이미 자리 잡고 앉아있길래 그냥 별말 없이 가운데 좌석에 앉아서 왔어요. 6시간이나 걸릴지도 모르고 말이에요. 바보같이 옴짝달싹 못하고 쪽잠을 자면서 온 탓에 피로가 쌓였죠. 비행시간을 미리 확인했다면 자리를 바꿔달라고 얘기했었을까요? 






그래도 첫날이니까 집에 가기 전에 바다 구경을 하고 싶어서 헌팅턴 비치에 들렀어요. Huntington beach. 아, 제 친구 아버지는 유명한 1세대 로컬 서퍼예요. 헌팅턴 비치 메인 스트리트 바닥에 새겨져 있을 정도예요. 멋지죠? 지금은 멕시코에 살고 있어서 제 친구는 멕시코에 아버지를 만나러 자주 휴가를 가곤 해요.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유명 서퍼라는 게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어요. 


You must be proud of him.

Of course.

물론이지, 하면서 가족 자랑을 하는 친구. 멕시코에서 만났을 때 친구가 어느 날 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어요. 제가 사정이 생겨 못 갔거든요. 제가 미국에 왔지만 아버지는 멕시코에 있으니, 그때 어떻게 해서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또 생겼어요. 하지만 또 언젠가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 거니까 크게 아쉽지는 않아요. 제가 태너를 이렇게 우연한 기회로 다시 만나게 된 것처럼요.




친구덕에 안전하게 서핑하우스에 들어왔어요. 매일 새벽, 서핑하러 가고 리뷰하고 먹고 자는 곳이에요. 서핑 강습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제가 갑자기 이곳에 왜 왔냐고요? 그래서 왔어요. 스탭을 급하게 구하고 있었고, 매일 서핑할 수 있는 이 좋은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 같았어요. 하나 걸리는 점은 수온이 12도 정도라는 건데요. 한국으로 따지면 한겨울인 거지요. 한겨울에 바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충격과 공포의 수온이었어요. 일주일도 안 돼서 두꺼운 겨울 수트를 2개나 샀지 뭐예요. 하하. 라인업에 가서 덜덜 떨고 있는 제가 안쓰러워서 크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저를 위한 소비니까요. 그 뒤로 온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춥지 않아서 꽤 만족해요. 아, 그렇다고 캘리포니아가 한겨울 날씨는 아니에요. 한낯 5시간 정도는 한여름처럼 더워서 반바지를 입기도 해요. 


오늘은 친구와 근처 라구나 비치에 놀러 가기로 했어요. 저녁을 먹기로 했었는데 제가 두 번이나 미뤘거든요. 약속 날짜가 다가오니 왜인지 나가기가 싫고 미루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걸 애써 떨쳐내고 나갔지요. 막상 나가면 좋아할 거면서 참 웃기죠? 친구가 집 앞으로 데리러 왔어요. 네시 십분 전쯤 도착한 친구, 바로 라구나 비치로 출발해서 차 안에서 안부를 물었어요. 잘 지냈지? 나 아까 헌팅턴 비치에 갔다가 너희 아빠 흔적을 또 봤어! 하고 얘기를 시작했어요.  


라구나 비치에 도착했더니 제가 여태 가봤던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멕시코 해변 느낌도 나고요. 주차를 하기 위해 조금 돌다가 적당한 언덕에 차를 대놓고 비치로 내려갔어요. 영어도 스페인어도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어요. 멕시코-미국 전쟁 이후 캘리포니아 지역이 미국으로 인수되고, 그래서 지명 이름이 스페인어로 되어 있는 곳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멕시칸 음식점들도 많고요! 아, 그리고 이곳은 히피들이 많이 모인다고 해요. 예술가, 디자이너들이 많이 살고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트 갤러리, 예술품을 파는 상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해변으로 내려가 해안 절벽을 따라 걸었어요. 제일 높은 곳의 야자수에 해먹을 걸어 책을 읽는 사람 근처에 자리를 잡고 해변을 바라보고 나란히 앉았어요. 오렌지빛이 강렬하게 비추는 낭만의 캘리포니아. 해가 지는 걸 보며 Dream, job, passion, happieness에 대해 얘기하다가 한국이 그립냐는 질문에 아니, 그리운 거 없어-라고 단번에 대답했어요. 곧이어 따라온 멕시코가 그립냐는 질문에는 Yeah, I miss everything in Mexico.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어요. 덥고 살 곳도 없고 일도 해야 하고 계속 돌아다녀야 했던 가장 힘든 여행지였거든요. 역설적으로 그래서 그런지 계속 생각나고 애틋한 나라가 됐어요. 그리고는 출출해져서 저녁 뭐 먹고 싶냐고 제가 물어봐놓고 타코를 먹으러 가자고 했지요. 브리또도 있고 여러 가지 메뉴가 있었지만 우리는 멕시코에 있을 때처럼 타코를 주문했어요. 콘또르띠야의 옥수수 향이 멕시코의 향수를 불러일으켰어요. 우걱우걱 한 접시를 해치우고 벌써 깜깜해져 차를 찾아 언덕길을 걷고 걸었어요. 너, 차 어디에 있는지 알아? 응, 대충 기억나. 그 대화를 나누고도 조금 더 걸어서 차를 세워둔 곳을 찾을 수 있었어요. 친구와 밤길을 걸으니, 주차된 차를 찾아 언덕길을 오르니 추워서 옷깃을 여미며 장난을 치는 이 시간이. 아, 이제야 또 이렇게 낯선 나라를 여행하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요. 생각보다 꽤 쌀쌀한 캘리포니아지만 이곳에서 낭만과 행복을 찾아볼게요.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의 추위 속에서.





2023.04.07. 오렌지빛 석양 아래 캘리포니아에서 olas가.



HSS 매장에 있는 친구 아버지의 마크.
라구나비치에 앉아 바라본 하늘
라구나 비치 해안 노을
따꼬따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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