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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Aug 13. 2023

야망,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Job Interview : 사업가 김수완

처음으로 스튜디오를 빌려서가 아니라, 인터뷰이의 일터를 찾아가 촬영하기로 했다. 스타트업 낭만농객의 대표 수완님을 촬영하러 강원도 철원에 가게 됐다. 카메라와 조명만 해도 짐이 적지 않아 차 렌트를 했다. 무려 당일치기 인터뷰 프로젝트가 되어 버렸다. 일이 조금 커졌나, 싶기도 했지만 철원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슬슬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수완님도 서울에서 함께 출발하게 돼서 우리는 차 안에서 첫인사를 나누었다. 철원에 도착한 우리는 '채반'이라는 국숫집에 가서 국수를 먹었다. 한여름이라 정말 더웠는데 냉국수 먹기 딱 좋은 날이었다. 


우리가 촬영하게 된 곳은 낭만농객의 첫 번째 유기채, 양지리 창고다. 기업 이름만 해도 낭만적이지 않은가! 낭만농객이라니. 소멸 위험 지역들의 방치된 공간들을 브랜딩 하고 리노베이션 해서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 낭만농객의 양지리 창고는 논밭이 드넓게 펼쳐진 철원이라는 동네에 자연스럽게 배경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개조된 창고에 들어가니 왜인지 세련된 공간이 펼쳐졌다. 이 공간에는 편안해 보이는 소파와 한쪽 벽을 완전히 채우고 있는 스크린, 그리고 레코드 테이블이 전부였다. 그래서 혼자, 혹은 소규모의 사람들과 영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두침침하고 어떻게 보면 갤러리처럼 꾸며진 공간에 압도당했다. 와, 이런 공간이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힐링하러 철원까지 여행 올 수도 있겠어. 수완님의 전략이 이런 공간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수완님은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을 정말 많이 한다는 게 느껴졌다. 복잡해 보이지만 기능을 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는 마더보드를 좋아한다는 수완님의 말마따나 모든 말과 행동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조목조목 하나씩 짚어가며 설명하는 모습에 반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것이 건축가에서부터 시작해 기술자, 발명가, 사업가의 모습으로 변모해 오면서 단단해진 수완님의 세계가 견고해 보였다. 


나는 어렸을 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항상 '선생님'이라고 답했다. 유치원 때는 기린반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선생님이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유치원 때 생각했던 선생님이 그대로 장래희망이 됐다. 중고등학생 때는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깊이 없어 보일까 싶어 교사라는 단어로 슬쩍 바꿨다. 이렇게 얘기하면 한길만 쭉 파온 것 같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렇게 답했다. 어른들이 봤을 때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적당한 직업을 잘 택해서 으레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질문을 피해왔던 걸지도. 놀랍게도 대학생 때 전공은 토목공학이다. 실제로 나는 교육 봉사도 오래 했고, 학원에서도 일을 했다. 학문을 가르치는 행위를 좋아했다. 그렇게 애매하게 발을 걸치던 나는 엔지니어도, 교육자도 아닌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불도저 같은 수완님의 야망이 부러웠다. 와, 멋있다. 나는 왜 그런 게 없지? 그거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 건데?





E : 안녕하세요. 수완님 촬영하러 철원까지 와버렸어요.


수완 : 안녕하세요 낭만농객이라는 스타트업을 만들고 있는 낭만농객의 대표, 김수완입니다.


E : 낭만농객이 뭐예요?


수완 : 저희 팀 같은 경우는 기업명이 낭만농객인데 의미를 말씀드리자면 농촌에서의 낭만적인 일들을 벌이자는 의미로 네이밍을 한 기업입니다. 여행사예요.


Y, E : 이름이 낭만적이에요. 


E :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모습이 계속 바뀌었다고 들었어요. 중학생 때는 건축가가 꿈이었다고요?


수완 : 맞아요. 사그라다 파밀리아라는 건축물 하나를 우연히 알게 됐어요. 그 건축물이 되게 웅장하고 비효율적이여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자연을 표방하고 되게 이상한 장식이 많은 건축물이라고 생각이 들잖아요. 그게 아직까지도 완공이 안 된 공간이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멋진 거예요.


사실 후딱 짓는 것들이 많잖아요. 기존의 한국에 있는 건축물들이 특히 효율적으로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건축물은 아직 완공이 안 됐다고? 건축가와 건축물들에 관심이 많았었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나도 그럼 건축가가 되어볼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명절 때 서울에 사는 외삼촌을 자주 만났어요. 오랜만에 오니까 외삼촌이 문물을 많이 보여주시더라고요. 제가 그때 건축에 관심이 있었으니까 교보문고에서 건축 관련 책을 사기도 했어요. 가우디 관련 책이었을 거예요. 


E : 그런데 고등학교 가서는 컴퓨터 공학 전공을 해야지, 생각했다고요?


수완 : 약간 좀 합리적인 이유였던 것 같은데 첫 번째 이유로는 스티브 잡스가 2011년 10월에 돌아가셨는데 그때 처음 신문기사로 그 사람의 죽음을 접하고 많이 찾아봤어요. 이런 사람이 있었다고? 근데 뭘 했던 사람이지? 하고 전기를 읽어봤는데 재밌더라고요. 스티브 잡스가 기술자는 아니었지만 전공을 컴퓨터 공학을 하면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이해했던 것 같고요.  제가 하고 싶은 게 굉장히 많았거든요. 건축가가 되는 일, 우주에 가는 일, 개발도상국에 뭘 만드는 일, 게임을 만드는 일. 나한테 그걸 접목했을 때 컴퓨터공학 기술이 있으면

분명히 할 수 있는 부분 일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합리적인 이유로 컴퓨터공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했어요.


E : 스티브 잡스가 죽고 나서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거예요?


수완 : 맞아요.


E : 아 그럼 그전부터 IT에 대해서는 먼저 관심을 가졌던 거네요? 시기적으로 본다면.


수완 : 그렇죠, 알음알음 IT는 좋아했어요. 기계도 좋아했고 분해도 해보고. 그 초록색 마더보드라고 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컴퓨터 안에 들어가는 메인보드요.


E : 아 그걸 그냥 보면 좋아요?


수완 : 네, 되게 잘 견고하게 짜여있고 규격도 잘 맞고. 복잡한 패턴을 좋아해요. 패턴이 있고 복잡한데 어느 정도 규칙이 있는 것들. 


E :  아, 뭐 말하시는지 알 것 같아요. 우리가 볼 땐 복잡하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열이 규칙적으로 되어 있고 그런 거죠?


수완 : 그게 다 효율적으로 작용을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쓸데없는 것들이 없고.



E : 어렸을 때는 어떤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수완 : 여러 가지가 다 융합되었을 것 같은데요. 두 가지 정도가 있을 것 같은데 첫 번째로는 외삼촌이 IT 기술자였거든요. 외삼촌한테 듣는 얘기들, 하는 일들이 한 번은 회사에 견학을 갔는데 그런 기억이 좋게 남아있어서 '아, 나도 외삼촌처럼 노트북 들고 다니면서 코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막연한 이미지를 그렸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결핍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초등학교 때 기계들이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PDA, 이만한 노트북, 투박한 데스크탑 컴퓨터. 점점 생기고 주변에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저희 집엔 그게 없었어요. 저는 그런 기계를 단순히 보는 게 좋았거든요. 카메라 같은 걸 보고 있어도 저 안에 분명 어떤 전기적인 것들이 있을 텐데, 당시 생각으로는. 너무 멋지다, 어떻게 저렇게 조그맣게 응집되어 있지? 하는 생각을 했죠.


E : 처음으로 얻게 된 기계는 뭐였어요?


수완 : MP3였어요.


E : 아 MP3. 만인의 MP3. 아이리버예요?


수완 : 아뇨, 인형 뽑기에서 뽑았어요. 가짜 아이리버처럼 생긴 거였는데 노래도 많이 안 들어가서 넣고 싶은 거 있으면 하나 빼고 넣고 했어요. 삼촌네 집에 가면 노트북 안 쓰는 거 주신 적도 있고 그런 게 되게 소중했죠. 어렸을 때 받은 영향을 생각해 보자면 결국 결핍과 문명이었을 거예요.


E, Y : 아하하


E : 대학생이 되어서 또 진로를 완전히 변경하게 되었다고요? 전공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걸까요?


수완 : 지금은 제가 돈벌이를 코딩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 됐지만 그때 배웠던 블록체인 기술이나 보안 기술, 웹 개발 기술에 대한 지식들을 지금 사업에 접목시키고 있거든요. 그래서 계속 공부는 하고 있고 그만뒀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1학년 끝나갈 때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전공을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있는데 재미가 없는 거예요. 시험이라는 게 들어가면 나는 흥미가 떨어지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컴공은 합리적인 학문이니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활용을 하자. 꼭 기술자가 되지 않더라도 지식으로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때 컴공으로 기술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이 기술을 활용한 사업가가 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죠.


E : 아, 그러면 그때부터 사업가가 되기로 한 거예요?


수완 : 약간 발명가 느낌의 사업가였는데 그때는 상상력이 부족했고 플랫폼 개념도 없어서 사업을 한다고 하면 무조건 발명가인줄 알았거든요.


E : 뭔가 아이템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생각?


수완 : 네, 뭐 제품 같은 것들 있잖아요.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가 들어간 제품.


E : 그래서 결국 대학생 때 창업 동아리에 들어갔잖아요?


수완 : 네. 이게 되게 재밌는 게 창업동아리에서 만든 아이템 덕분에 창업이 제품만은 아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반도체가 들어간 마우스를 만들었어요. 그다음에 만든 게 물리학만 들어가는 스케이트 보드였고.


E : 컴공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네요.


수완 : 그렇죠. 그다음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어요.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는 메모장을 만들었고, 그다음이 플랫폼이었어요. '제주살이'라는 플랫폼이었는데 제주도에서 재능기부로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그런 구조였고 유저와 공급자만 매칭해 줬어요. 그리고 그 플랫폼에서 이름만 바꾸고 지역을 전국으로 확장한 게 허클베리 핀이라는 아이템이고요.


그게 학교 외부 사업에 선정이 됐어요. 그걸 통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여행객이 농장에서 하는 8시간의 농장 일과 농장주가 제공할 수 있는 숙식을 교환하는 구조였거든요. 무전여행 같은

이 사업 컨셉 자체가 재밌고 원하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있었는데 문제는 재방문율이 0퍼센트라는 거였어요. 한 번 농장 일을 경험한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서 화가 났고 농장주도 일을 똑바로 못 하니까. 그래서 이건 안 되겠다 해서 사업을 전환했는데 그때가 되게 무서웠던 것 같아요. 처음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막 이렇게 사업을 훅 완전 다른 아이템으로 바꿔도 되나? 이런 겁이 났죠.


E : 그럼 허클베리 핀 그리고 제주살이라는 아이템은 어디서 나온 거예요?


수완 : 휴학을 하고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우즈베키스탄이랑 뉴질랜드가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 여행지예요. 여행을 하면서 했던 경험이 되게 좋았거든요. 일반적인 대도시나 관광지를 갔던 여행은 아니었고 현지인들이랑 친해져서 그 사람들 집에 초대받았어요. 현지인이랑 같이 다녔을 때만 볼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더라고요. 현지식이나 생활문화, 잠자리, 반려견을 부르는 이름 등. 아, 이게 우리가 몰랐던 부분을 볼 수 있는 유일할 수도 있는 창구가 되겠구나. 


뉴질랜드에서는 이런 시도를 했어요. 뉴질랜드의 반지의 제왕 촬영지가 있는 산에 어떤 작은 가정집이었는데 오퍼를 보냈어요. 우리가 하루에 세 시간만 가정일을 도와주면 숙식을 제공해 줄 수 있냐 이런 내용이었는데

사실 그때 경험을 똑같이 베껴온 게 허클베리 핀이죠. 



E : 일하는 나로서는 어떤 것 같아요 요즘?


수완 : 집착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게 재밌는 게 사업을 하면서 방향성은 잘 가져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이루면서 갈구하고 있는데 내면에서는 두 가지가 충돌돼요. 하기 싫다와 하고 싶다. 하기 싫은 이유는 겉으로 보기엔 낭만적이고 재밌는 여행을 하는 팀으로 보이지만 이걸 만드는 저와 팀원들은 사실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거든요. 


사실 사업을 하는 이유가 개인적인 이유가 굉장히 큰데 사업체가 있기 때문에 제가 원하는 것들을 이 사업체 안에 계속 녹여내면서 해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제가 중구난방으로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건축, 독서, 개발도상국, 봉사활동, 카메라.. 이런 것들이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크게 보고 또 멀리 보면 다 연결이 되어 있더라고요. 특히 사업체라는 덩어리 안에 넣어버리면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더라고요. 


E : 맞아요. 공간을 활용하는 거니까 어렸을 때 꿈꿔왔던 건축과는 다른 모습일 수 있지만 비슷한 방향으로 잘 나아가는 것 같아서 부러워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생각한 이상향이 있었다는 것부터가 부럽고 지금도 그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는 게요.


마지막으로 그럼 why에 대해 질문해 볼게요. 수완님만의 why가 있다면?


수완 : 저의 why는 일적인 부분, 삶에서의 이유.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적인 부분에서의 why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들이에요. 내 개인의 욕구와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사업을 선택한 거고 잘할 수 있는 방식이 사업이니까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이유로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절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하고 싶고 해보고 싶고 재미있을 것 같고 또 가보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것들을 위해서 지금 사업을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어떤 사람이든 사실은 다 죽음을 향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죽음을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죽을지, 죽음을 선택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죽을지를 상상해 봤을 때 가장 합리적인 삶의 결정들을 좀 항상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 같아요. 두 가지의 비중이 큰 덩어리들이 있는데 정말 비현실적이고 철없게 이런 결정을 해도 될까? 이런 시도를 내가 해도 될까? 고민이 되는 덩어리가 있고. 진짜 합리적이고 현실적이게

지금은 내 상황에서 이런 결정들을 해야 해, 이런 덩어리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같이 비교해서 융화될 수 있는? 중간을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결정들을 계속해서 선택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실 이런 작용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삶이나 지금까지 걸었던 길들이 계속 성장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되고 있는 것 같고요.








인터뷰이 : 김수완

인터뷰어 : E 

촬영, 편집 : Y 

에디터 : Y 

채널명 : whythis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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