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억제제가 수면제를 이겼네
안 하던 걸 하면 무슨 일이 생긴다
아내와 나는 일출을 보러 가지 않는다. 어제 뜨는 해가 또 뜨는 것뿐인데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한다. 꼭두새벽에 추위를 뚫고 집을 나설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내가 두물머리에 물안개 찍으러 새벽 출사를 간다고 했다. 평소 안 하던 것을 하면 탈이 난다. 마음이 불안하지만 "일교차가 심하니 옷차림에 신경 쓰라"고만 얘기 하고 말을 아꼈다.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했는데 밤늦게 돌아온 아들이 엄지손가락을 다쳐서 왔다. 골절이 일어난 사유와 치료 계획을 의논하다가 아내는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침대에 누웠다. 일행과 집 앞에서 새벽 다섯 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외출 준비 시간을 제하면 세 시간 남짓 잠잘 시간이 남았다. 아내는 빨리 잠에 들려고 수면제를 먹었다. 평소에는 수면제를 먹으면 바로 잠에 빠져들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잠은 달아나고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확인해 보니 수면제가 아니라 식욕 억제제를 먹었다. 식욕 억제제는 화학적 성질이 마약과 유사하다고 한다.
아내는 수면제나 식욕억제제를 병원에서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다. 상습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조심스레 사용을 하고 있는데 중요한 날 약을 잘못 먹었다. 자투리 잠이라도 자야 하니, 아내는 수면제를 다시 먹었다. 하지만 달아난 잠을 수면제가 잡아 오질 못했다. 마약 성분의 식욕 억제제가 수면제를 이겼다. 아내는 한숨도 못 자고 꼬박 밤을 새웠다. 안 하던 걸 하면 무슨 일이 꼭 생긴다. 기우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