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을 관리받고 있다. 몇 달에 한 번 집으로 와서 냉장고, 식기세척기, 공기청정기의 필터를 바꿔주고 제품 내부 세척도 해 준다. 며칠 전에 냉장고 케어매니저가 방문했다. 단정한 옷차림, 상큼하고 통통 튀는 목소리, 몸에 밴 친절, 어느 하나 흠잡을 것이 없었다. 나는 인사만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부엌에서 나누는 아내와 케어매니저의 대화가 정겹게 들려왔다.
아내가 "라떼, 한잔하실래요?"라고 물었다. "네, 감사합니다" 하던 매니저가 다시 극구 사양을 했다. 라떼는 쉽게 만드는 게 아니니 고객을 번거롭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모닝 라떼를 즐기는 아내가 "내가 마시려던 참이었으니 같이 만들어 드리겠다"고 했다. 라떼 한 모금을 마신 매니저는 "고객님, 너무 맛있어요"라며 의례적인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아내는 처가에서 가져온 사과도 깎아서 매니저에게 주었다. 평소 간단한 음료만 내놓던 아내였는데 케어매니저가 마음에 흡족하게 들었나 보다.
일을 마친 매니저는 다음 고객에게 가야 한다면 급하게 나갔다. 먹지 못한 사과는 아내가 밀폐용기에 담아서 건넸다. 오후에 매니저로부터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이번 고객님이 외출 중이라 차에서 삼십 분째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며 맛난 사과 먹고 있어요. 고객님이 챙겨준 사과로 울적한 마음을 달래며 힘내봅니다. 사과 정말 맛있어요.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정말 착한 사람이다. 마음도 착한데 글도 잘 쓴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마법을 가진 분이다. 케어매니저는 오래된 냉장고만 돌본 게 아니라 차가운 겨울 우리 부부의 마음도 케어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