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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춘 Dec 06. 2024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얼음물

친절한 케어 매니저

  냉장고가 고장 났다. 얼음이 만들어지질 않는다. 우리 집은 얼음정수냉장고를 쓴다. 정수도 되고 냉장도 되는데 '얼음'이 안 된다. 홈바에서 얼음 버튼을 누르면 "촤르륵" 소리를 내며 얼음이 쏟아져 내렸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 냉동고 문을 열었다. 얼음통에 얼음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얼음통에 유리 같은 얼음이 서로 어깨를 겯고 가득 있어야 하는데 웬일인지 텅 비었다.  


  냉장고 케어매니저가 다녀간 후부터 고장이 났으니 아내는 매니저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연락을 받고 찾아온 매니저는 놀란 표정으로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매니저는 냉장고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어디론가 전화를 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매니저는 케어할 수는 있어도 고장을 수리할 수는 없다. 마침내 매니저는 "서비스 기사를 불러야 고칠 수 있을 것 같다. 제품 고장의 원인도 기사가 정확히 판정해 줄 것이다."라고 했다. 매니저의 상사가 쉽게 귀책을 인정하지 말고 서비스 기사의 판단을 받아보자고 한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고객과 케어부서 중간에 낀 서비스 기사도 곤혹스러워했다. 기사는 "불량이 발생해서 부품을 교체했다. 불량의 사유는 제품의 노후화인지 케어 서비스 불량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기사는 싸움에서 발을 빼겠다는 말이었다. 고민을 하던 매니저가 5:5 비용 부담을 제안했다. 멀쩡한 냉장고를 왜 고장 냈냐고 매니저에게 따지고 싶지만, 자신의 일처럼 해결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안쓰러워 보였다. 매니저의 제안에 합의를 했다.


  이튿날 케어매니저가 신이 난 목소리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고객님, 무상 수리 지원으로 결재가 났어요. 고객님 한 푼도 부담하지 않으셔도 돼요"라며 즐거워했다. 크지는 않지만 자신의 회사에 금전적인 손해가 발생하는데도 고객의 입장에서만 생각해서 좋아했다. 아마도 일 잘하는 매니저의 사기가 떨어질까 봐 상사들이 결재를 하는 과정에서 무상수리로 의사결정을 바꾼 것으로 생각 들었다. 

  각 얼음을 가득 넣고 냉수를 마셨다. 얼음 덕분인지, 케어매니저의 착한 심성 덕분인지 가슴속까지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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