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유효기간을 확인하지 않으면 생기는 일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나는 제일 먼저 여행 가이드북을 구입한다. 한 권도 아니고 두 권을 산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여행지에 관련된 책을 왕창 빌려 온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생각에 최대한 많이 읽으려고 한다. 수시로 인터넷을 검색해서 여행지에 대한 기사나 여행기를 찾아본다. 생각하지 못했던 귀한 정보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들의 여행 스타일은 나와 정반대이다. 국내도 아니고 해외를 가는데도 너무 느긋하다. 비행기표와 숙박장소를 예약하면 여행 준비가 끝난다. 세부 일정은 현지 도착해서 정한다. 나는 이해가 안 된다. 이건 여행이 아니라 시간 낭비, 돈 낭비인 것 같다. 그렇다고 다 큰 아들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다.
아들이 며칠 전 일본 여행을 떠났다. 다음날 새벽에 집을 나선다고 하면서 밤이 늦도록 짐을 챙기지 않는다. 답답해서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들이 여권을 잘못 가져갔다. 아들은 인천공항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는 여권을 새로 찾아서 딸아이와 급하게 공항으로 떠났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아내가 가져간 여권도 예전 여권이었다. 아내는 차를 돌리고 딸아이는 내게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잠결에 유효기간이 남아 있는 아들의 진짜 여권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진짜 여권을 가지고 아내는 다시 인천공항으로 달려갔다. 내가 가야 했는데 너무 화가 나서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여행 준비를 소홀히 해서 새벽부터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아들이 이해할 수 없었다.
원래는 아슬아슬하게 여권을 전달했지만 이미 비행기는 떠났다. 비행기표도 매진이라 여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전개되어야 계획적인 나의 여행 스타일이 더 빛이 날 텐데. 느긋한 아들은 아무 타격도 받지 않았다. 청주공항에서 출발해서 인천공항을 경유하여 일본으로 떠나는 비행기는 두 시간이나 연착이 되었다. 청주공항 기상이 안 좋아서 이륙이 늦어졌다고 한다. 참, 아들은 복도 많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같은 집에 사는 가족도 서로 다르게 생각을 한다. 그래도 가끔 답답한 생각은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게 틀린 건 아니지 않은가. 가족 카톡 방에 아들이 정중하게 올렸다. "가족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