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여행기
코로나로 막힌 하늘길이 조금씩 열리니 여행사에서 앞다퉈 유럽 여행 상품을 선보인다. 삼 년 전 늦은 여름에 가족과 떠난 동유럽 여행이 떠오른다. 오스트리아를 거쳐 체코와 폴란드를 둘러보는 일정인데, 오스트리아 대표 휴양지인 잘츠카머구트에서의 관광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열한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했다. 첫 관광지는 멜크(Melk)였다. 멜크는 빈에서 서쪽으로 80km 떨어져 있는데, 오스트리아 첫 왕조인 바벤베르크의 수도였다. 바벤베르크 왕조가 수도를 옮기면서 왕궁을 베네딕트 수도회에 기증하여 멜크 수도원이 탄생했다. 유럽의 젖줄 도나우강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 수도원이 요새처럼 서 있다. 주황색 지붕과 노랗고 하얀 건물,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사뭇 이색적이다. 나무도 아니고 돌로, 어쩌면 저리도 화려하게 만들었을까. 탄성을 지르며 한참을 보았다.
수도원 가는 길에 열쇠 두 개가 겹쳐진 모양의 문장이 보였다. 선교의 방향이 달라 자주 다투었다고 하는 베드로와 바울의 화해를 뜻한다. 가족끼리 오랫동안 여행을 하면 말다툼이 생긴다고 하는데, 아무 탈 없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본다.
바벤베르크 왕실과 수도원의 귀한 유물이 보관된 박물관을 나오면 간이 전망대가 있다. 한적한 중세도시 멜크 시내가 보이고 그 너머에는 도나우강이 유유히 흐른다.
움베르토 에코가 쓴 소설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된 도서관에 들어섰다. 책들 사이 어딘가에 젊은 아드소 수사가 있을 듯하다. 오크색 책장과 검은색 고서들이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면, 천장에 채색된 화려한 프레스코화는 신성한 느낌을 준다. 도서관과 성당을 연결하는 계단을 ‘황제의 계단’이라고 한다. 마치 천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 한 유려한 나선형 계단과 계단 천장의 그림이 신비롭다.
멜크 수도원을 떠난 버스는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를 향해 달려간다. 잘츠카머구트는 '소금 영지'라는 뜻인데, 곳곳에 있는 빙하 호수와 웅장한 알프스 산맥이 어우러져 한시도 눈길을 멈출 수가 없다. 볼프강(Wolfgang) 호수 마을 장크트 길겐(St. Gilgen)에서 점심으로 슈니첼을 먹었다. 돈가스와 모양과 맛이 비슷한데 소스가 따로 없고 퍽퍽해서 기대한 맛과 거리가 있었다.
식사하고 호숫가를 산책했다. 모차르트는 장크트 길겐에 있는 외가에서 일곱 살 때까지 살았다. 모차르트 어머니는 볼프강 호수를 너무 사랑하여 아들의 이름에 넣을 정도였다.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에메랄드빛 호수와 파란 하늘, 흰 구름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몇 달이고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싶다.
장크트 볼프강(St. Wolfgang)으로 가는 유람선에 올랐다. 40분간 타고 가는데, 한국말로 안내 방송이 나와서 반가웠다. 볼프강 호수는 길이가 약 11㎞에 이르며, 가장 깊은 수심은 114m나 된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에 하얀 돛을 올린 요트들이 종이배처럼 떠 있고, 구릿빛 몸을 가진 노인 한 분이 작은 배 위에서 한가로이 노를 젓고 있었다. 평화롭고 여유 있는 노년의 모습이다.
장크트 볼프강 마을에는 천 년이 지난 성당이 있다. 성당에 들어서니 화려한 제단이 눈에 들어왔다. 성모 마리아의 대관을 묘사한 황금색 조각인데, 높이 12m로 한참을 올려다보아야 했다. 전설에 따르면, 볼프강 신부가 산 아래로 도끼를 던져서 떨어진 곳에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성당 안 모퉁이 암석에 도끼가 떨어진 것처럼 움푹 팬 곳이 있어 신기했다.
장크트 볼프강에서 할슈타트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할슈타트는 소금 마을이란 뜻인데 세계 최초의 소금 광산이 마을 뒤 높은 산속에 있다. 할슈타트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온 곳으로,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푸니쿨라를 타고 호수 전망대에 올랐다. '잘츠카머구트의 진주'라 불리는 할슈타트가 한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봉우리들이 옥빛 할슈타트 호수를 둘러싸고, 알프스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 모습이 동화 같다.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좋다. 보이는 곳이 모두 영화의 한 장면이다. 딸아이는 스마트폰으로, 아내는 DSLR로, 나는 비디오카메라로 연신 촬영했다. 이곳저곳 발걸음을 옮기며 여러 시선에서 보고 또 보았다.
할슈타트는 빼어난 풍경으로 영화 '겨울 왕국'의 배경이 되었는데, 아기자기한 집들 어디에선가 엘사와 안나가 살고 있을 것 같다. 아스라한 절벽 위 전망대 벤치에 앉았다. 더운 여름날, 빙하 호수와 동화 마을을 내려다보며 맥주를 마셨다. 콸콸콸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청량한 맥주. 여태 맛보지 못한 최고의 맛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사진을 본다. 할슈타트 호수를 배경으로 맥주잔을 하늘 높게 치켜든 사진이다. 언제 보아도 즐겁고 가슴이 설렌다. 잘츠카머구트를 보지 않고 오스트리아를 말하지 말라고 한다. 눈을 들어 어디를 둘러보아도 마음속에 저장해 두고 싶은 풍경, 에메랄드빛 호수와 동화 속 마을이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