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회의를 했다. 나는 퇴직을 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아내는 예전처럼 생활을 하고 있으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가사업무를 나누기로 했다. 식사는 점심만 아내가 준비를 하고 아침과 저녁은 각자 해결하기로 했다. 청소는 내가, 설거지는 딸이, 재활용 분리배출은 딸과 한 달씩 번갈아 맡기로 했다. 그 밖의 가사업무는 가족들이 적극 돕기로 했다.
어느 날 아내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달라고 했다. 당연히 해야 함에도 안 하겠다고 했다. 다른 건 다 하겠는데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건 진짜 싫었다. 냄새가 고약하고 역겨웠다. 무엇보다 음식물 쓰레기가 퇴직을 하고 더 이상 쓰임이 없는 나인 것 같고, 더러운 쓰레기 수거통에 나를 버리는 같아 기분이 안 좋았다. 퇴직을 하고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때라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싫은 일도 한두 번 하다 보면 적응을 하는 게 사람이라, 지금은 내가 알아서 잘 버리고 있다. 누군가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해야 한다면 가장인 내가 하는 게 맞는 일이다.
지난주 재활용 분리배출하는 날, 딸이 일어나지를 못한다. 대신할까 하다가 깨워서 같이 했다. 미안했었는지 이번 주에는 딸이 미리 쓰레기들을 분리하여 현관 입구에 가지런히 모아놓았다. 아침에 카페 가려고 나서다가 그냥 나가기만 뭐 해서 폐지 박스만 들고 나와 집하장에 버렸다. 저녁에 아내가 자신이 분리배출했다면서, 이왕 하는 거 다 하지 폐지만 버렸냐고 묻는다. 아니 딸을 도와줬다고 칭찬받을 일인데 핀잔을 들으니 기분이 안 좋았다.
설날 처갓집에 가는 차 안에서 딸이 물었다.
"혹시 이번 달 분리배출 담당이 아빠인 것 모르는 것 아니에요?"
가만 생각하니 나였다. 홀수 달은 딸이 짝수 달은 내가 맡기로 했었다. 설날이 음력 1월이라 이번 달이 홀수 달이라고 착각을 했었다. 아내와 딸에게 격하게 미안했다.
그러고 보면 도움을 받았으면서 반대로 생각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착각과 오해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까 생각을 해보니 아득하다.
참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