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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춘 Oct 23. 2024

황제가 될 준비

클래식을 잘 몰라도 내가 공연장을 찾는 이유

  가끔 클래식 공연장에 간다. 완전 초보라서 소품 위주로 듣는다. 내게 맞는 공연이 있다. 점심시간을 전후해서 열리는 낮 공연 프로그램이다. 브런치 콘서트 또는 마티네 콘서트라고 부른다. 예술의전당에서도 매월 열리는 브런치 콘서트가 세 개나 되는데 기업의 후원을 받아서 입장료가 아주 저렴하다. 하지만 공연 수준은 높다. 국내 정상급 연주가들이 출연하고 클래식 전문가가 관객 눈높이에 맞춘 해설을 해 준다.

  초심자들을 위해 해설을 해주어도 클래식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작품과 작곡가에 대해서 미리 알아보고 몇 번 연주 영상을 듣고 간다. 공연장에는 일찍 도착하려 한다. 최소 삼십 분 전에는 자리에 앉는다. 심호흡을 하고 공연장을 한번 둘러본다. 아직 객석에도, 무대에도 빈 좌석뿐이다. 고요하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공연 팸플릿을 자세히 읽어 본다. 공연 시간이 다가온다. 마음이 설레고 두근거린다. 이 느낌, 이 기분이 너무 좋다.  

  드디어 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된다. 브런치 콘서트할 때 육십 명이 넘는 단원들로 오케스트라가 구성된다. 연주자들은 연습이든 실제 공연이든 십 년 이상은 연주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듣는 작품 한 곡은 육백 년 동안 갈고닦은 솜씨로 들려주는 게 된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내가 마치 중세 시대 영주나 지엄한 황제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클래식을 잘 몰라도 내가 공연장을 찾는 이유이다. 다음 주 클래식 공연이 있다. 황제가 될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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