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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an 16. 2021

행복은 무지로부터 나온다?

'교실 안의 야크'라는 영화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이란 상대적 감정이기 때문에,
행복은 어쩌면 무지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닐까?
다르게 얘기하면, 앎으로부터 고통과 불행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예전에 오래된 미래를 읽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데,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오늘 '교실 안의 야크'라는 영화를 보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여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A와 B 중에 어떤 삶을 택하시겠습니까?


A : 몸을 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즐길 문화생활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별로 먹지 못합니다. 생활하는 모든 게 불편합니다.
그렇지만 살면서 한 번도 편안한 생활을, 즐거운 문화생활을, 맛있는 음식을 경험한 적이 없기에 비교할 대상이 없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행복합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도 없습니다. 자연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반복되는 삶 속에서 인생은 충만합니다.
B : 몸은 상대적으로 편안합니다. 다양한 문화생활과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적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며,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며, 옆에 누군가 있어도 정신적으로 외롭습니다. 그래도 때때로 행복하긴 합니다.


인간은 좀처럼 만족이란 것을 하지 못합니다.
더 편하고, 더 풍요롭고, 더 양질의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런 욕구는 앎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편한 삶, 풍요로운 삶, 더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자각'은 욕구로 이어지고, 욕구 충족을 위 정신적 육체적 노력을 당연한 것이라 여기고 아갑니다. 
그러나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 충족되는 것조차 어려울뿐더러, 만약 충족되더라도 행복한 삶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물론 욕구 실현의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이나 고차원적인 자아실현에서 오는 성취감은 느낄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의 개인의 희생과 그로 인한 불안과 압박감, 우울, 스트레스들. 어쩌면 삶에 더 다양한 고통들을 가져다줍니다.


차라리 내가 더 편한 삶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지금의 상태보다 더 풍요로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면, 그리고 원래 있던 삶 속에서 행복하다면, 더 편안하고 더 풍요로워지는 것. 그러한 것에 대한 앎이 좋은 것일까요?



위의 질문 대한 대답으로 저는 A 인생을 택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미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머릿속으로 알고, 체험해버린 탓에 아무것도 모르던 무지의 상태로 회귀는 불가능합니다. 한번 이 서구화된 편리한 세상에 발을 들인 이상 원시부족 국가로 뒤로 돌아갈 수는 없죠.

그렇기에 '나는 자연인이다'가 그렇게 인기가 많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등장하는 자연인들처럼 그들이 가진 것들을 포기하고 자연으로 돌아감으로써 우리가 앎으로부터 얻게 된 많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게 맞다고 머릿속으로 생각은 들지만, 자연인들처럼 사는 것을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용기 없는 우리가 자연인을 통해 대리만족을 경험하기에 프로그램의 인기는 높아진 것이고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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