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금사빠다. 나에게 금사빠라는 단어의 의미는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너무나 쉽게 빠져든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것들이 많다. 책, 영화, 재즈, 클래식 감상, 노래, 여행, NBA, 사진, 미술, 등산, 골프, 수영..
뭐 하나에 빠지면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 동안은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온 정신이 한 곳만 바라본다.
예를 들어, 재즈에 빠지면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재즈 음악만이 가득 담긴다. 일주일에 3일 이상을 재즈바에 간다.
회사서도 시간이 나면 재즈와 관련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심지어 재즈 관련 책도 사서 읽는다.
머릿속이 재즈로 가득하다.
문제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나의 관심은 사그라든다. 조금 줄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언제 내가 재즈를 좋아했었는지 조차 모르게 차갑게 식어버린다. 아예 재즈와 담을 쌓고 산다.
그러다 클래식에 빠진다. 재즈에 했던 것을 클래식에 동일하게 적용한다. 등산에도 골프에도 책에도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이런 금사빠의 좋은 점은 아주 얇지만 넓게 알 수 있다. 소개팅을 나가면 여자가 어떤 분야에 관심사가 있더라도 웬만해서 내가 좋아하는 관심사 내에서 커버가 가능하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는데 능할 수밖에..
그렇지만 깊이는 없다. 한두 단계만 더 들어가도 내 지식의 한계는 쉽게 드러난다.
20대에는 나의 이런 성격이 싫었다. 나도 다른 이들처럼 수년간을 한 분야에 푹 빠져 거의 준전문가 수준의 박식함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영화 몇천 편을 보고, 평론가 못지않게 영화를 분석하는 사람들,
클래식에 조예가 깊어 듣기만 해도 무슨 곡인지 곡의 배경이 어떤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 없이, 하고자 하는 의지 없이 강제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시즌제 인생'이라고 제목을 단 이유. 한 시즌을 마치고 일정 기간이 흐른 뒤 뒷이야기가 이어지는 시즌제 드라마와 같이 나의 관심사들도 새로운 시즌이 돌아왔다.
책을 읽는 시즌이 지나가면 영화, 재즈, 클래식 등등 다양한 관심사의 시즌이 찾아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시 책의 시즌이 찾아온다. 시즌이 돌아오는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다양하게 함께 오기도 한다.
여전히 깊이는 부족하지만, 열정만큼은 처음과 같다.
이런 시즌제 인생의 장점은다양한 관심사 많다 보니삶 속에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에 있다.
여자 친구와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에는 모든 감각이 여자 친구를 향해 있는다. 친구들에게는 철저하게 무신경해진다. 그러다 몇 개월이 지나면 여자 친구에게 집중됐던 시선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런 경우를 여러 차례 겪다 보니 정말 친한 친구들도 제외하곤 다들 점점 멀어져 갔고, 더욱이 황당한 것은 여자 친구는 '내 사랑이 변했다'라고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열정보다 중요한 건 꾸준함인데, 나에겐 그게 너무나 힘들다. 내가 아마도 결혼을 못한 이유 중에 이런 성격이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좋은걸 좋아하지 않는 척할 수는 없다.' '좋아하지 않는걸 좋다고 할 수도는 더더욱 없다.'
어쩌겠는가? 나의 시즌제 인생을 즐기며 사는 수밖에!
다만 속도의 조절은 필요하다고 느낀다. 좋아하는 마음에 나 혼자 200km의 속도로 달려봤자, 관계에는 과속 딱지가 붙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