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변명

by 앤디

오늘도 눈을 주제로 글을 쓴다.

어제 눈이 너무 예쁘게 와서 퇴근 후에 예술을 전당 산책을 했다고 회사 동료들에게 이야기하니,
길도 미끄럽고, 추운데 산책을 도대체 왜 산책을 하냐는 반문이 돌아온다.

난 그저 '눈이 좋아서'라고 답했다.

그렇다. 난 '눈 덕후'다. 눈이 좋다. 너무 좋다.
눈이 많이 내리면, 시골 마당의 멍멍이처럼 마음이 들떠 어쩔 줄을 몰라한다. 당장이라도 나가 뛰놀고 싶어 안달이 난다.



나는 눈이 따뜻해서 좋다.
너무나 역설적이게도 나에게 눈은 따뜻하다.
차가운 눈이 내려 깨끗함과 고요함과 포근함으로 세상을 덮어준다. 그 순백으로 변한 순간에 마음속으로 그 어느 때보다 따듯한 감정이 든다.

거기에 모든 사물이 예뻐지는 건 덤이다.
눈이 많이 내리면 본래의 모습들은 사라지고,
자동차 모양의 눈, 자전거 모양의 눈, 나무 모양의 눈, 눈눈눈.. 온통 눈만 남는다.



분명, 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눈을 대신해 변명을 해보고자 한다.

Q. 누군가는 거리가 질퍽거리고, 지저분해서 싫다고 한다.

A. 눈은 자기 혼자서 질퍽거리고 지저분해지지 않는다. 눈이 질퍽거리고 지저분해지는 건 사람들이 더러운 신발로 눈을 밟아서 그렇게 된 것뿐이지 눈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오히려 밟고 지나간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


Q. 누군가는 눈이 오면 차가 막혀서 싫다고 한다.

A. 눈이 올 것은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를 통해 알 수 있다. 운전을 꼭 해야 한다면 스노우타이어를 끼우고, 가급적 눈 오는 날은 대중교통을 타면 된다. 왜 본인이 준비를 안 해놓고 눈 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눈 아니고 비가 와도 길은 막힌다.


Q. 누군가는 길이 미끄러워서 싫다고 한다.

A. 운동화를 신고 조심히 걸으면 된다. 구두를 신어야 한다면... 그건 어쩔 수가 없다. 해해 주길 바란다.

눈 덕후로서 눈을 대신해 핑계를 대 보았다.

혹여나 누군가는 '군에서 제설작업을 했으면 눈 좋다는 소리를 못할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나도 군대 시절 눈을 많이 치웠다. 많이 치운 정도가 아니다. 내가 군대에 있었던 2005년 전라도 고창에는 기록적 폭설이 내렸다.

하루 이틀 내린 게 아니라 약 50일 정도 계속 내렸다.

덕분에 무너진 비닐하우스와 인삼밭을 복구하기 위해 매일같이 대민지원을 나갔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시 대민지원 나온 군인들을 위로하고자 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고창으로 내려온 일도 있었다.

정말 몇 날 며칠을 눈만 치웠다.
그러니 제설작업을 하다 보면 눈이 싫어하게 된다는 것은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히 얼마나 좋은가? 눈도 치우고 훈련도 안 하고..





올 겨울은 코로나로 우울함이 극에 달하고 있다. 누구를 만나기도 딱히 어디를 가기도 힘든 요즘, 세상을 뒤덮은 눈만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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