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 가장 완전하고 가장 확실하게 느끼는 행복
선은 느낌이다. 선은 그저 불은 따뜻하고 얼음은 차게 느끼는 일이다.
날씨가 차면 우리는 추위에 떨면서 불을 반가워한다. 이 '느낌'이 전부다."
- 스즈키 다이세츠
선(禪)의 교과서와도 같은 영화다.
다도를 소재로 삼아 이 영화는 깨달음을 말하고자 한다. 특히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것이 무엇인지, 대체 무엇을 깨닫는 것인지, 그리고 그 깨달음의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명징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분명하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더욱 큰 이야기다. 이 영화는 우리의 완전함에 대한 이야기다. 그 완전함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에게 아무 잘못이 없으며, 아니 잘못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라는 존재가 얼마나 경이로우며, 우리의 이 삶이 얼마나 감동스러운 것인지에 대한 바로 그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우연히 다도를 배우게 된 뒤, 어느새 자신의 중심으로 스며들어온 다도를 통해, 그리고 다도를 가르쳐주며 삶의 본이 되어주는 선생님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며 삶과 함께 아름답게 흐르게 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다도를, 그리고 삶을 이해하는 첫 걸음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당신의 손을 믿어요."
아주 작고 단순한 몸짓일지라도, 부정할 수 없이 엄연한 자신의 그 몸짓을 신뢰하라는 말.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싹틔우는 다정한 목소리다. 상대적인 관계의 세상 속에서 늘 비교로 인한 열등감으로 힘들어하며, 자신을 늘 부족하게 생각하고, 또 그러한 자신이 있을 자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미아 같은 우리 모두에게 들려지는 이야기다.
그렇게 그녀가 자기의 몸을, 곧 자기 자신(自身)에 대한 신뢰를 조금씩 회복해감에 따라, 그녀는 깊어지고 또 풍요로워진다. 아주 미세한 사물들의 차이를 느끼게 되고, 그 느낌은 더욱 섬세하게 확장되어 간다.
이윽고, 어느 여름날에 들려오는 축제소리 속에서 그녀는 공감각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보게 되고, 어린 시절의 슬픔을 이해하게 되며, 그 슬픔을 상냥하게 떠나보낸다. 그윽한 고요함 속에서. 그렇게 그녀는 자신 안의 무언가가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느끼게 된다.
언제라도 시간은 멈추는 법 없이 흐르고, 그녀는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 새로운 인연들이 찾아오고, 오랜 사람들이 떠나간다.
그래서 그녀는 이해하게 된다.
상대를 위해 정성스럽게 차를 대접하는 다도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우리는 알 수 없다. 지금 차를 나누고 있는 상대와의 만남은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는 볼 수 없을 그를 대접할 단 한 번뿐인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성스럽다. 그래서 모든 정성을 다하는 것이었다. 생애 단 한 번뿐인 이 만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그녀의 선생님이 모든 것을 다해 정성스럽게 대접한 차 한 잔을 눈 앞에 둔다. 고요히 바라본다. 찻잔을 들어 한모금을 마신다.
"아, 좋다."
깊어진 그녀의 느낌은 찻잔에 담긴 깊이를 포착한다.
그녀에게 전해진 이 가장 깊은 정성을 향해, 가장 큰 감사가 화답된다.
하늘이 울리며, 소나기가 내린다. 만남이 이루어졌다.
세찬 빗소리 속에서 그녀는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얼굴을 발견한다. 지금은 떠나가버린 그 얼굴을 발견한다. 이미 떠나갔지만, 지금 이 느낌 속에서, 다시 찾은, 영원히 찾은 그 얼굴을 발견한다. 좋았다. 좋았다. 좋은 것이었다. 다 좋은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좋은 것이었다. 그녀는 울고 웃으며 춤춘다. 미치도록 소리친다. 좋은 것들아, 다 있으라! 있는 것은 다 있으라! 모든 삶은 긍정되고, 또 긍정된다. 완전하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차의 맛이 좋다. 소나기가 온다. 빗소리가 들린다. 좋았다. 그녀는 알았다. 삶을 알았다. 삶을 깨달았다. 삶은 좋았다.
그녀는 안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얼마나 좋았던지, 그녀 자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던지를.
다 좋은 날들이었다. 하루도 빠질 수 없이 완전한 날들이었다.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또 영원히 만난 나날들이었다. 행복했다.
고맙습니다.
태어나서 고맙습니다.
살아 있어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또 살 수 있어서, 이렇게 또 새로 시작할 수 있어서, 이렇게 또 이 하루를 맞이할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렁차게 비가 내린다. 빗소리에 내가 사라진다. 빗소리가 있을 뿐이다. 빗소리가 된 온 몸이 있을 뿐이다. 온 몸으로 이 순간을 맛본다. 생생하게 맛본다. 완전하다. 영원하다. 영원 속에서 행복하다. 감사할 뿐이다.
매일매일이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다. 이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