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최고의 지성"
깨달음은 지성이 아니다.
그러나 깨달음은 '최고의 지성'이다.
결코 말장난이 아닌 이 뜻은 무엇인가?
'최고'라는 표현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먼저 '자신이 행복한'이라는 함의가 내포되어 있다.
당연하다. 이 세상에 아무리 최고의 것이 있다 한들, 그것이 자신이 행복한 일과 아무 관련이 없다면 그러한 최고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미 최고가 아니다.
다음으로 여기에는 '그것 자체가 목적으로서'라는 함의가 담겨 있다.
단순하다. 최고의 지성이라는 것을 통해 우리가 돈을 많이 버는 현실을 생각해보자. 최고의 지성은 지금 돈을 위한 수단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최고의 지성이란 정말로 최고인가? 그렇지 않다. 목적된 돈이 최고이며, 최고의 지성은 돈보다 아래 있는 것이다. 이미 최고가 아니다.
이처럼 최고의 지성이 자신이 행복한 현실과 관련되며, 또 그것 자체가 목적으로서 작동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최.고.의. 지.성.은. 최.고.의. 지.성.을. 향.하.는. 행.복.이.다.
더 쉽게 말할 수 있다.
최.고.의. 지.성.은. 스.스.로. 배.우.는. 행.복.이.다.
이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가정된 그 무엇을 위한 배움이 아니다. 배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배움을 향한 행복이다.
그러나 배움의 소재는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무수한 인간의 활동분야 속의 다양한 소재들로 드러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배움의 소재는 언제나 단 하나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밤하늘의 신비를 조우한 과거의 어떤 인간은 별들에 대해 배움을 시작했다. 그럼으로써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규명하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주에서 점하고 있는 그 입장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러니 이는 실상 별들과 우주라는 거울에 비친 인간 자신의 모습을 배우고자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결국 무엇을 배우는가?
인간은 그 무엇으로도 인간을 배운다.
그러나 인간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인간인 우리 자신이 인간을 말할 때는 반드시 우리 자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언.제.나. 나.라.고. 하.는. 인.간.을. 배.운.다.
나를 통해 인간을 배우며, 인간을 통해 나를 배운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배우는 것은 인간이며, 인간이 스스로 배우는 것은 나다.
그 둘은 같은 것이라, 결국 이것은 스스로 배우는 일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그 둘이 같은 것이라, 내가 인간을 가르치고 인간이 나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기에, 이것은 또한 스스로 가르치는 일이라고 불러야 한다.
스스로 가르치고 스스로 배우는 것, 그렇다면 이것이 최고의 지성이다.
이 일이 너무나 행복한 이가 있다면,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그 자신이 행복해지는 일로 느끼는 이가 있다면, 그는 분명 최고의 지성을 향해있는 이다.
이 최고의 지성의 일은 다시 한 번,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자아가 매일 하는 '답정너 게임'과 전적으로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최고의 지성은 아무런 답을 갖지 않고 묻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고.의. 지.성.은. 조.금. 미.친. 것.들.을. 묻.는.다.
내가 왜 사는지, 또 왜 죽어야 하는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내가 대체 누구인지 등과 같은 것을 묻는다.
하나의 정답처럼 당연하다고 가정된 답정너의 것들을 전적으로 다 이상하게 여기며 최고의 지성은 묻는다. 그래서 최고의 지성은 이상하게 보인다. 어떤 때는 분명 어리석은 바보로 보이기도 한다. '지혜로운 바보'의 은유는 여기에서 나온다.
최고의 지성은 남들이 생각못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똑똑한 존재로 보이기 위해 이상한 것들을 묻는 것이 아니다.
최고의 지성은 모두가 생각하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을 묻는다.
이처럼 최고의 지성은 모르는 것을 묻는데, 그중에서 최.고.로. 모.르.는. 것.을. 묻.기.에. 최.고.의. 지.성.이.다.
최고로 모르는 것은 나다.
최.고.의. 지.성.은. 나.를. 물.을. 수. 있.기.에. 최.고.의. 지.성.이.다.
지성은 나만 빼고 다 묻는다. 지성은 자기가 나다. 그러니 그러한 나는 물을 수 있는 권리와, 또 알 수 있는 권능을 가진 자로서 늘 전제된다. 그렇게 이미 전제되어 있으니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지성에게 나를 물으면 아주 기분나빠한다.
"나는 나야, 씨발. 뭐 어쩌라고, 뭔데뭔데."
지성은 이처럼 실은 무식하고 투박하다.
최고의 지성은 정직하고 섬세하다. 그리고 이것이 힘이다.
최고의 지성이 지성과 다른 것은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성은 힘이 없어 늘 센 척하며 복잡하다. 허약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복잡한 언어의 거미줄 속에 자신을 숨긴다. 힘이 없어 생긴 열등감이 지성을 지배한다.
그러나 최고의 지성은 힘이 있기에 단순하다. 단순하게 모르는 것만을 힘있게 묻는다.
단순하다는 것과 쉽다는 것은 다른 것이다.
지성은 복잡한 것을 쉽게 풀어줄 수 있는 자기의 능력을 예찬한다. 물론 이것은 소망이다. 복잡하게 꼬여 힘들기에 쉬고 싶은 지성 자신의 바람이다.
그러나 최고의 지성은 단순해서 오히려 심오해진다. 최고의 지성을 통해 단순함은 신비로 드러나게 된다.
"나는 왜 죽는가?"
이것은 현상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쉽게 설명될 것이 아니다. 때문에 지성은 이러한 질문들에는 대답하지 못한다. 무력하다.
반면 최고의 지성은 내가 죽는다는 이 사실을 신비로 다시 알린다.
신비는 단지 모른다는 것만이 아니다. 신비가 미지와 다른 것은, 신비는 모르는데 거기에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우리의 행복과 관계된다는 아주 분명한 직감을 우리가 경험할 때, 우리는 그것을 신비라고 말한다.
이처럼 최고의 지성은 가장 모르는 것을 통해 힘을 창출해내며, 그 힘을 행복과 연결짓는다.
최.고.의. 지.성.은. 나.라.는. 신.비.를. 향.해.서.만. 올.곧.다.
나라는 신비로 사는 힘과, 나라는 신비로 사는 행복을 끝없이 넘치도록 개방해낸다.
모든 것을 선별적으로 통합해서 다 알 수 있기에 최고의 지성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물을 수 있는 힘이 있기에 최고의 지성이다.
가만히 앉아 모르는 척하고 있으면 다 알게 된다고 하기에 최고의 지성이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자신의 힘과 행복의 원천으로 전환하고 있기에 최고의 지성이다.
최고의 지성은 가장 모르는 것을 계속 모르는 것으로 지속할 수 있는 그 최고의 힘이다.
나.를. 계.속. 나.이.게. 하.는. 그. 힘.이.다.
나를 배운다는 것은, 나를 영원히 모르는 것으로서, 곧 영원한 신비로서 배운다는 의미다.
바로 이것이 나로 산다는 것이며, 이렇게 나로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인 나의 행복이다.
최고의 지성이 살아가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