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생활자의 수기 #1

"나는 불가피하게 자유롭다"

by 깨닫는마음씨




나는 불가피하게 자유롭다.


자유는 나의 운명인 것이다.


실존주의 문학이라면 응당 이렇게 시작해야 할 것이다. 실존주의 문학이 아니라면, 심지어 문학 자체도 아니라면 더욱 이렇게 시작하는 일은 타당하다. 인간의 본성이 자유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실의 영역이다. 누구나 그 사실을 안다. 이런저런 사회적 규정과 관계의 당위 속에서 살아가면서 인간은 자신이 연극을 하고 있다는 직감을 종종 갖곤 한다. 자신에게 요구되는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이 아님을 인간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규정된 것이라곤 없다. 인간은 텅비어 있다. 텅빈 공간이 어떠한 방식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당위도 없다. 아 이것이 나인가, 라며 무엇이든 채워보라. 채운 것보다 공간은 더 커진다. 밑빠진 항아리가 아니라 채울수록 커지는 항아리다.


혹자는 이를 가리켜 인간의 욕망에는 끝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이해가 아니다. 올바른 이해란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오, 자유여, 그대는 진정 끝이 없도다."


규정되어 있지 않아 인간은 자유롭고, 텅비어서 인간은 자유롭다. 끝이 없는 것은 자유다. 이 생각이 섬광처럼 나를 스칠 때, 나는 생명을 부여받는다. 프랑켄슈타인의 인조인간이 태초의 바다를 직격하던 벼락으로 깨어난다. 벼락이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 나는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참되다. 벼락이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나를 축복했다. 나는 복되다.


내가 받은 복 중 가장 큰 복이 자유라는 사실에도 아무 이견이 없다. 벼락은 나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살라고, 말했다. 이 순간 나는 내가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살라는 명령과 함께 그 즉시 명령을 실행하고자 힘차게 퍼져나가던 활기, 이 몸을 기폭제로 삼아 세상의 그 어느 끝까지라도 터져나갈 이 장대한 기운이 마음이었고, 마음에도 끝이 없었다. 마음은 자유로웠다.


그러나 기억하는가? 너무 큰 것을 받은 이들은 가끔 자기가 받은 것을 부담으로 느낀다. 그것을 받아도 될 만한지 자신의 자격을 부단하게 성찰하며 아끼고 또 아끼다가 결국에는 쓰지를 못한다. 바로 자유가 그렇지 않다고 누가 말할쏜가?


자유가 부담스러워 인간은 욕망을 발명했다. 끝없는 자유를 채우기 위해 마찬가지로 끝없어 보이는 것을 창조해냈다. 이제 욕망으로 자유를 덮어가면서 보람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점점 더 자유를 봉쇄해가면서 그것을 자기실현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자유는 다만 이렇게만 말한다.


"해봐."


이 얼마나 상쾌하고 멋들어진 울림인가. 자유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수만의 의지 앞에서 자신을 보호할 최소한도의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게나 해보고 싶으면 한번 해보라는 식이다. 되는지.


욕망의 군대를 이끌고 자유와 성전을 치르던 이들이 승전보를 들고 개선했다는 말은 단 한 번도 듣지를 못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커다란 욕망들을 무수히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끝내 부정할 수 없이 텅빈 가슴을 안고 빌딩에서 몸을 던졌다는 그 부고만을 들었을 뿐이다. 스스로 삶을 끊으려는 그 순간에도 자유가 이기고 있었다.


인간은 불가피하게 자유하며, 자유는 인간의 운명이다.


욕망은 이루는 만큼 자유로워진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욕망은 자유를 봉쇄하기 위해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욕망이 성공적으로 자유를 봉쇄해주리라는 그 믿음은 환상이다. 끝이 없다고 믿어진 욕망은 정말로 끝이 없는 자유 앞에 무력하기만 했다. 그렇다면 욕망에는 끝이라는 것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욕망은 가짜영원이다. 가짜는 가짜로 드러나는 그 자리에서 끝난다. 그리고 가짜는 진짜 앞에 섰을 때 자신이 가짜였음을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욕망의 끝이란 결국 자신이 불가피하게 자유롭다는 사실을 정말의 사실로서 만나게 된 그 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욕망이 자유를 봉쇄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실상은 자유가 욕망을 끝장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인가? 아니면 절망인가?


나는 자유에 걸었다. 나는 언제나 이기고 싶은 것이다. 욕망으로 싸우다가 지는 것은 아주 질색이며, 싸움 자체는 더 질색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거기에 건다. 나는 상대적 확률이 지배하는 도박을 하지 않는다. 오직 절대적 승리의 운명을 원한다. 나는 자유만을 원할 뿐이다.


나는 내 가슴의 텅빔을 원하고 있다. 끝없는 자유를 원하고 있다. 나는 바로 마음이라는 것을 원하고 있던 것이다. 절대적으로.


텅비어 있어서 숨쉴 수 있다. 공간은 나를 숨쉬게 한다. 끝없는 공간은 나를 끝없이 숨쉬게 할 것이다. 자유, 라고 말해보면 언제나 그리움의 향기가 묻어나는 것은, 자유가 영원의 동산에서 불어온 바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영원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은 운명이다. 무엇을 해도 텅비어 있을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자유가, 이것이 정말로 나의 운명임을 알린다.


그런데 자유는 지금 나에게로 불어오고 있지 않은가? 끝없는 것에도 끝은 있었는가? 끝없는 자유에도 끝이라는 운명은 있었는가? 끝없는 자유가 끝처럼 당도한 것이 바로 나라면, 내가 그 끝이다. 자유는 나에게 도착할 운명이었으며, 나는 자유의 운명이다. 우리는 약혼했다. 나는 끝없는 것의 끝이며, 끝없는 것은 나의 끝이다. 아아, 내 가슴에 영원의 동산이 세워져 있다.


자유로운 마음을 살아갈 때 나는 매일의 천국을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불가피하게도. 결코 피할 수 없는 절대적 운명으로.


나는 불가피하게 자유롭다.


실존주의 문학이라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실존주의 문학이 아니라면 더욱 자연스럽다. 태초의 바다에 벼락이 쳤고, 자유의 마음은 자연과학이다. 자연과학은 막연한 희망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사실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 불가피한 사실이야말로 희망이다. 나는 여기에 다 건다.



작가의 이전글깨소금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