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생활자의 수기 #2

"고양이를 닮았다"

by 깨닫는마음씨




나는 언제부터인가 고양이를 닮았다. 수줍다. 자주 가는 카페의 주인이 알아봐도 모르는 척 목례로만 맞아주면 좋겠다. 백반집의 이모님이 너무 많이 말을 걸지 않으면 좋겠다. 든 자리와 빈 자리가 공기와 같았으면 좋겠다. 그저 있어서 좋은 것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자유를 침해하고 싶지 않고 자유가 침해되고 싶지 않아 나는 수줍다.


나는 멀리 돌아다니지 않는다. 이 거리가 제일 좋다. 익숙한 이 거리에서도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일어난다. 내가 사는 거리에 질려본 적이 없다. 내 마음이 그렇다.


내가 거대한 것을 꿈꾸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꿈꾼 것 중 기억할 만한 거대한 것은 퇴마를 하는 음양사의 부업을 가진 헌책방 주인이 되는 일이었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은 그도 나와 같이 중학교 시절의 그런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아 반가운 까닭이다. 분명한 것은, 나는 거대한 것을 전혀 꿈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조금도 갖고 싶지 않다.


나는 파란 하늘만을 갖고 싶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만을 갖고 싶고, 그것을 이미 갖고 있다. 내 머리 위에도, 내 가슴 안에도.


나는 거대한 것을 원하지 않으며, 언제나 제일 거대한 것만을 원한다. 제일 거대한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제일 거대한 것은 어떤 자유도 침해하지 않기에 제일 좋다. 좋아하는 이 표정을 숨길 수가 없어서 나는 제일 거대한 것 앞에서 늘 수줍다. 자주 가는 카페의 주인 앞에서, 백반집의 이모님 앞에서, 그리고 파란 하늘 아래서 나는 수줍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분명 수줍다. 언제부터인가 고양이를 닮았다. 그 눈동자가 세계라는 보물을 담고 있어 반짝이는 고양이를.


고양이에게 마음이 없다고 하는데 무슨 말인가. 고양이는 9개의 마음이 있다.


남자를 위한 마음, 여자를 위한 마음, 아빠를 위한 마음, 엄마를 위한 마음, 내 친구인 댕댕이를 위한 마음, 나의 적인 까마귀들을 위한 마음, 비가 그친 저녁 풀벌레 소리를 듣는 마음, 그리고 너를 생각하는 마음. 이렇게 8개의 마음이 있으며, 마지막 마음이자 가장 큰 마음은 바로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고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호기심이야말로 고양이가 가장 안심할 수 있는 현실로 이끌어준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 사고는 경직되고 태도는 폐쇄된다.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자유라는 말은 단지 그 목적을 위한 쓰임새에만 전념한다. 그렇게 집행된 자유라는 것이 안내하는 곳은 언제나 감옥 안이다. 두렵지 않으려면 감옥이 제일이다. 가장 두려워하는 이들이 스스로의 자유를 봉쇄하고 감옥에 갇혀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실은 자유가 아니던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란 이처럼 자유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옥중행이었던 것이다.


다르게 보는 법도 있었을 것이다.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말 대신에, 두려움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말은 9개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마음인 호기심이 낳은 말이다.


나는 수줍다. 두려워할 자유를 행사하고 있다. 두려움은 지금 자유롭다.


고양이는 수줍기에 짖지 않는다. 두려운 것으로부터 슬쩍 이동해 그 사이에 공간을 만든 뒤, 유심히 바라본다. 고양이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과 친해지는 법을 무척 잘 안다. 호기심이 사교를 이끈다. 호기심은 언제나 낯설고 새로워서 두려운 것을 향해서만 반짝인다. 호기심은 가장 어두운 밤에 빛나는 샛별이다. 고양이의 눈동자 속에는 언제나 이 영롱한 별빛이 담겨 있다.


인간의 영혼은 태어날 때부터 고양이를 닮았다. 두려운 것과 제일 친해지고 싶어한다. 세상에 올 때부터 제일 거대한 이 마음을 갖고 왔다. 호기심이 인간을 빛나게 하며, 그 빛으로 환해져 안심할 수 있는 현실로 인간 자신을 이끈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호기심은 아마도 고양이를 죽일 때도 있었을 것이다. 호기심을 따르다 보니, 남자에게 상처받고, 여자에게 상처받고, 아빠에게 상처받고, 엄마에게 상처받고, 친구에게 상처받고, 적에게 상처받고, 세상에 상처받고, 오직 너뿐이던 바로 그 너에게 상처받아, 재기불능의 상처처럼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끼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에게는 9개의 마음이 있으며, 9번째의 마음이 있다. 앞서 이끈 호기심은 가장 뒤에서 그 모든 것을 다 회복해낸다. 이 호기심으로 인해 고양이는 죽지 않으며 그 영혼이 불멸이다.


퇴마가 필요하지 않은 영혼이 있다면 바로 이 호기심의 영혼이다. 이것은 두렵게 하는 영혼이 아니라, 두려워할 자유를 행사함으로써, 두려운 것을 존중하는 영혼이다. 그러니 두려운 것으로부터 존중받는다. 어느 거리에나 이 영혼으로 가득하다. 사실은 존중하고 싶다. 이미 존중하고 있다. 수줍게 목례를 건네듯이, 당신의 안녕을 기원한다. 당신의 안녕이 나의 안녕을 지켜준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존중되고 있다.


나에게는 당신들이 안심할 수 있는 현실을 꿈꿀 그 자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꿈꾸고 싶지 않다. 그것을 제일 갖고 싶다. 두려워하는 당신이 늘 편히 잠자리에 들며 내일을 설렘으로 희망할 그 현실을 나는 이 눈동자 속에 이미 담고 있다.


나는 제일 거대한 것을 갖고 있다. 인간을 향한 파란 하늘 같은 호기심을 갖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고양이에게도 그러했겠지만, 나에게도 인간은 이해불가의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낯설고 새로운 것을 향해 전할 수 있는 최종의 것은 호기심뿐이다. 그렇게 호기심으로 인간의 자리를 지켜보고 있다. 분명 호기심이 인간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 고양이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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