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생활자의 수기 #12

"서로는 대체 무엇에 끌리는가에 대한 모든 연애사"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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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극이 서로 끌린다는 말을 나는 질릴 정도로 자주 듣곤 한다. 많이 질렸다. 자기와 상반된 대극을 좋아할 수 있는 것이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는 일이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이 말은 질리기보다는 아주 이상한 말로 들린다. 대극이라는 개념과 다양성이라는 개념은 상충한다. 대극은 자기를 중심으로 반대되는 것을 묶어놓는 것이고, 다양성은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것들로 모든 것을 풀어놓는 것이다. 그러니 대극이라서 좋아한다는 말은 실은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심지어 대극이라는 개념 또한 그 성립이 불투명하다. 불의 대극은 물인가? 나는 도저히 그렇게 믿을 수 없다. 물로 불을 끌 수 있으니 대극이라고 한다면 흙도 불의 대극이어야 한다. 바람은 왜 또 아니겠는가. 흡연자들은 바람이 차라리 불의 대극이라는 말에 더욱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불의 대극은 물이고, 흙이고, 바람이고, 쇠이고, 나무이며, 기린이고, 유채꽃이며, 수르스트뢰밍이고, 명왕성인가?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일은 설득력이 있다. 그 모든 것은 불은 아니기에, 불이 아닌 모든 것은 불의 대극이라고 말한다면 현실적인 묘사에 가깝다.


그러나 이 경우라면 대극은 서로 끌린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불이 그토록 수르스트뢰밍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는 정말로 믿기가 어렵다. 차라리 불은 불이 아닌 모든 가능성을 기각하며 지금 불로 드러나있는 가능성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왠지 그럴듯하게 들린다. 불과 그밖의 세상 전체와의 교집합은 없는 셈이다. 그렇게 불은 불로서 고유하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어떤 것을 구성하는 원소는 이미 다른 무엇인가를 구성했던 그 원소다. 오히려 넘치도록 교집합이며, 전적으로 독립된 고유성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발상은 달라진다. 불이 불로서 드러나는 고유성을 다른 상대적인 대상과 연결지어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불없음'과 연결지어 구성하는 일을 시도할 수 있다. 존재와 비존재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대극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대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반대의 상태에 끌리기까지 한다. 프로이트는 이를 삶의 충동인 에로스와 죽음의 충동인 타나토스라고 표현했다. 존재는 비존재가 되고 싶어하고, 비존재는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만약 이 존재론적 대극의 개념을 억지로 불과 물의 관계에 적용시킨다면, 결국 불과 물은 상대를 통해 자기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끌린다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자기를 파멸시킬 나쁜 남자, 나쁜 여자와의 위험한 연애에 끌린다는 말로 이해해야 하는가? 끝내는 이처럼 희극적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여기에는 어떠한 진실성이 담겨 있음을 나는 이해하고 싶다. 물론 이 이해는 우리가 대극에 끌린다는 말을 포기했음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반대되는 것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금껏 자기라고 믿었던 정체성을 망칠 수도 있는 것에 끌린다. 그러나 하나의 정체성과 180도로 반대되는 입장에 서있는 것만이 그 정체성을 붕괴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0도 정도에서 파고든 쐐기에도, 또 75도에서 두드리는 망치에도, 얼마든지 정체성은 붕괴될 수 있다. 그러니 이는 더는 대극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순수한 다양성의 문제라고만 말해야 할 것이다.


개인이 채택하고 있는 정체성은 다양한 각도에서 위협받는다. 나는 이 말이 정말 좋다. 개인이 다양성에 끌린다는 말과 진배없다. 그런데 개인에게 있어 다양성이 의미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언제나 단 하나다. 나는 사실 이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언제라도 이것에 대해 쓰고 싶다. 나는 늘 자유에 대해서만 쓰고 싶다. 바로 이것에 인간은 가장 근원적인 차원에서부터 끌리고 있다.


끌리고 있는 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인간은 자유를 눈치채곤 한다. 뒤집어 말하면, 어느 방향으로나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이다. 어느 각도에서나 목격하게 되는 다양성에 의해 인간 자신이 현재 갇혀 있는 정체성이 깨어질 수 있으며, 그만큼 인간은 자유를 증진할 수 있다. 불로도, 물로도, 흙으로도, 바람으로도, 쇠로도, 나무로도, 기린으로도, 유채꽃으로도, 수르스트뢰밍으로도, 명왕성으로도 인간은 더욱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는 자신과 다른 것에 끌린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달라서 끌리지 않는다. 자유로워서 끌린다. 우리는 언제나 자유로운 것에만 끌린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도 분명하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처럼 자유로운 것에만 끌린다. 자신과 같은 것에 끌린다. 다양성이야말로 자신과 가장 같은 것이다. 자신은 다양성 그 자체다. 나는 자유 그 자신이다, 갈매기 조나단처럼 우리는 이제 이렇게 말해야 하리라.


나는 나와 같이 자유로운 것에 끌린다. 자유는 자유 자신의 모습에 그토록 끌리고 있다.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서 자유로운 서로에게 끌리고 있는 인간의 연애사에 대한 총정리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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