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의 재미"
나는 우리가 왜 이처럼 인생을 재미없다고 느끼는지를 언뜻 이해할 것만 같아 전율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사건의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결과라는 것은 자신들의 부단한 노력과 현명한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렇게 결과가 오직 자신들의 힘에 의해서만 정해진다고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그 일에만 온통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것은 막중한 책임감이다. 태산을 짊어지고 있던 아틀라스가 자신의 인생을 재미있게 느꼈을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책임감의 무게 아래서는 누구나 그 인생이 재미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일 것이다. 누군가가 어떤 것을 심각하고 무겁게 느끼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꼭 이렇게 쓰고 싶다. 인간이 짊어지곤 하는 최고의 무게는 바로 착각의 무게라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말은 내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말이다. 이것은 내가 어떤 말에 따라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먼저 살아감으로써 드러난 뜻이 담겨 그것이 이후 말로 표현된다는 뜻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한다.
"마음은 결과다."
일어난 일에 대해 사람들은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아니었다고 자주 말하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렇게 일어난 결과가 바로 자신의 마음이 행한 바이며, 자신의 마음 그 자체다. 나는 천 단위로 세어야 할 무수한 내담자들을 만나오며 단 한 번도 그렇지 않았던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곤 하는 마음의 신비한 작용에 매번 놀란다. 그리고 이 놀람은 삶에 대한 겸허한 이해로 나를 이끈다.
결과는 정해져 있다. 마음은 결과로서 이미 이루어질 바가 정해져 있다. 마음이 움직여가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결과도 그러니 정해져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해다. 마음도 삶도 다 개인보다 큰 것이다. 태양의 운동을 개인이 통제할 수 없듯이, 더 큰 것을 더 작은 것이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더 착각에 가까운 발상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말을 통해 인간은 한없이 작고 무력한 존재라고 그러니 그 보잘 것 없는 분수를 알라고 훈계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바로 이러하니,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냐고 오직 그 말만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마음이 결과로 정해져 있다면, 마음으로 사는 인간의 짐은 다 사라진다. 자기가 결과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그 무거운 책임감의 무게로부터 인간은 전적으로 해방된다.
하이데거는 인생은 재미있는 것이라고 말한 대표적인 철학자다. 나는 그의 말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그가 나치에 협력했다가 데인 뒤 파고든 말년의 행적이 나는 더욱 좋다. 그에게 삶은 존재가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존재사건이다. 인간은 오직 존재를 따를 뿐이며, 먼저 결과로 계시된 존재의 그 뜻을 이해해갈 뿐이다. 그리고 존재의 뜻을 이해하는 이 일이야말로 재미있는 일이다. 이것은 흡사 사람들이 MBTI를 찾고 별자리를 찾는 그 재미와 전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존재의 뜻은 언제나 내 자신을 위한 존재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존재의 뜻을 이해한다는 것은 내 자신을 알아간다는 말과 동일한 것이다.
하이데거가 존재라고 쓰고 있는 것을 불교학자들은 마음이라고 쓰기를 좋아한다. 나도 이것이 정확한 번역어라는 데 동의한다. 마음은 뜻이며, 그 뜻을 이해해가는 일은 아마도 우리에게 있어 가장 재미있는 일이다. 인간의 인생은 통째로 이 마음의 뜻이 작용한 결과다. 그렇게 결과로 드러난 마음을 통해 우리는 역으로 거기에 어떠한 뜻이 있었는가를 살피며 커다란 재미를 경험한다. 나는 이것을 과정의 재미라고 분명하게 쓰고 싶다. 재미는 언제나 과정으로부터 창출된다고 또 한 번 분명하게 쓰고 싶다.
모든 재미있는 것은 그것이 자유롭기에 재미있는 것이다. 마음은 결과라는 말과 이 자유라는 말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마음은 결과되어 있으며, 그 결과를 현재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 이루어낸다. 무엇으로도 그 결과를 실현해낸다. 여기에는 무한한 과정의 자유가 있으며, 그만큼 무한한 과정의 재미가 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조건들 속에서도 마음이 반드시 결과를 이루어낸 궤적을 후에 살피게 되면 그 과정이 정말 신묘하다. 재미있을 뿐더러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지금 어떤 수상한 운명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주 망각하기를 좋아하지만, 인간은 이미 죽음으로 결과지어져 있다. 이것은 무엇을 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결과다. 자의적으로 결과한 그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이 결과 앞에 다 무너진다. 나는 죽음 앞에 무너지는 자유를 자유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그것은 코흘리개의 잘난 척일 뿐이다. 나는 죽음이라는 결과가 정해져 있기에, 또 죽음이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래서 그 과정이 원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자유를 노래하고 싶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그 위세가 전혀 주눅들지 않는 바로 그런 자유를 원한다.
바로 이러한 자유로 살아갈 때 우리는 인생을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결과가 같을지라도 저마다 각각 다른 과정을 통해 그 결과에 도달한다. 누구도 나와 같이 살지는 않으며, 그러나 동시에 나와 같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가 얼마나 나와 같지 않은 그 자신만의 고유한 자유의 길을 밟아 여기에 도달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자유의 기쁨으로 전율하며 지금 여기에 나와 같이 서있는지, 인생은 이 만남이며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마음이 결과한 바다. 마음은 만남만을 결과짓고자 하며, 마음에는 언제나 이 만남의 뜻만이 담겨 있다.
노랫말처럼 우리의 만남은 정말로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아니 바람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운명으로 만날 것이지만 어떻게 만나게 될지는 몰라서 늘 설렐 수 있는 그 자유를 인간은 가장 큰 재미로 소망했던 것이다. 이처럼 결과를 초월해 과정을 사랑할 수 있는 무척 재미있고 감동적인 존재라서 나는 인간이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