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들에게"
마법의 문제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강요되고 있다는 것이다. 착한 마법사와 나쁜 마법사는 쉽게 구분된다. 숲에서 혼자 꿈꾸고 노래하며 사는 것은 착한 마법사다. 그는 누구에게도 그의 꿈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쁜 마법사는 자기의 꿈을 강요한다. 자기의 꿈이 사실보다 더 권위있다며 사실을 무시하고 사실에 대한 폭력을 행사한다.
나는 착한 마법사들도 많이 보아왔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나를 울렸다. 그 영혼이 아주 순수하고 맑아서 그들에 대해서는 그것과 똑같은 눈물로만 지불될 수 있었다. 이 착한 마법사들의 이름은 작가라고 불린다. 숲에서 홀로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아름다운 꿈을 꾸는 이들의 이름이다. 그 투명한 눈망울로 세상을 증언하라고 보내진 이들이다.
나는 나쁜 마법사들은 더 많이 보아왔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피해자인 것처럼 분노하고 있었다. 자기의 강력한 권위와 놀라운 경험을 사람들이 무시한다면서, 이들은 고대의 지혜와 최신의 기술을 아우르는 통합적 마법을 통해 성공해서 보란듯이 자신의 것을 다시 찾겠다며 사마귀처럼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나쁜 마법사들이 먼저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사람들로부터 무시되는 모습을 잘 보아왔다. 이들은 늘 이상한 것을 대단한 것이라고 들이밀며,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 거짓의 것을 진짜의 것보다 더 권위있게 대접하라며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로 놀란 것은 나쁜 마법사들의 면면이 그들의 유전자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아주 공통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쁜 마법사들은 다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알고, 특히 제일 똑똑하다고 믿고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들이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간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지성뿐이 아니라 마음에 대한 놀라운 이해를 갖고 있고, 또 대중문화도 수준높은 차원으로 즐길 줄 아는(이를테면 남들은 어벤져스 영화만 볼 때 자기들은 마블 TV드라마도 다 찾아보는 식으로.) 고급의 문화생활자이기도 한 까닭에, 자기들을 특별한 선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하게 자기들이 선택받은 존재라고 이들은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겸손한 척하는 이들의 미소 뒤에 숨겨진 것은 명백한 선민의식이었다.
밖에서 이 나쁜 마법사들을 보면 무엇인가 좀 찌질하게 보이곤 한다. 그렇게 보이는 정도는 바로 이들 자신이 바깥에 있는 머글들을 자기 아래로 찌질하게 보고 있는 그 정도와 정확하게 일치할 것이다.
만약 이 나쁜 마법사들이 그래도 자기 혼자 그러거나, 자기들끼리 호그와트를 차려 그러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나쁜 마법사의 모습과 정신분열의 모습은 매우 유사하다. 정신분열이 문제가 되는 것은 정신분열 그 자체가 아니라 소통이라는 지점에 있어서다. 이 지점에 대해 심지어 나쁜 마법사는 정신분열보다도 더 큰 문제를 드러낸다. 정신분열자는 자신이 남들보다 상위의 권위를 얻기 위해 그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정말로 소통되기 어려운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것뿐이다. 그러나 나쁜 마법사들은 언제나 상위의 권위를 갖고자 하는 그 의도를 통해 소통을 결렬시킨다.
마법의 문제는 이와 동일하다. 마법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마법을 사실보다 상위의 소재로 고집해서 사실을 오히려 부정하려 하기에 문제가 된다.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무시받고 있는 한 마법사 아이를 본 적이 있다. 마법사 아이는 아이들이 자기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한 채 자기가 하는 말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한다며 그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물었고, 아이는 대답했다.
"저는 사람이 50층에서 떨어져도 살 수 있다고 말했어요."
다른 아이들이 50층에서 떨어지면 누구도 살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마법사 아이는 거기에 껴서 소위 말하는 당당한 자기의 이야기를 통해 시비를 건 것이다. "아니, 너희들이 틀렸어, 사람은 50층에서 떨어져도 살 수 있어."라면서. 아이들이 그렇지 않다고 반박해도 마법사 아이는 한결같이 고집스러웠다. "훗. 그래.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지. 내 의견이나 너희의 의견이나 다 동등한 의견일 뿐이야. 진리란 상대적인 것이지." 아이들이 한층 언성을 높여 헛소리를 하지 말라고 하자, 그 주위를 지나가던 어떤 어른 마법사가 개입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어머, 얘들아, 그렇게 여럿이서 한 아이의 고유한 이야기를 짓밟으면 어떡하니. 나는 부당하게 소외되어 상처받은 이 아이의 편이 되어야겠구나. 이 아이의 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너희는 알아야 한단다. 집단적 억압에 맞서 자기의 이야기를 지켜내다니 이 얼마나 멋지고 강한 아이니."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선량한지를 감동적으로 목격했다. 귀싸대기를 후리는 것 외에는 답이 없을 때도, 아이들은 누군가를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 다만 무시하려는 평화로운 방법을 현명하게 찾아냈다. 자기만의 판타지를 강요하는 폭력 앞에서도 아이들은 의연한 중력의 수호자였다. 나는 더는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사실을 무엇보다 존중하는 아이들이 있어서다.
마법사 아이가 아무리 피해자 코스프레를 시도한다 해도 그는 가해자였다. 자신의 마법으로 인간의 사실을 무시하고자 하는 폭력의 집행자였다. 그러니 그의 마법도 무시된 것이다. 사실을 먼저 존중하지 않으면 마법은 존중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마법사 아이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스스로 만든 증오 때문에, 커서 나쁜 마법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따라서 나는 말하고 싶다. 모든 고집 안에는 소망이 담겨 있다고. 그리고 소망은 사실 위에서만 피어날 수 있었던 꽃이라고. 착한 마법사들은 이 소망을 다룬다. 사실을 존중함으로써 소망 또한 존중될 수 있도록 그들은 노래한다. 아이가 착한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우리 아빠가 아파트 공사하다가 떨어져 돌아가셨어요. 사람이 50층에서 떨어져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나도 그렇게 소망한다. 아이를 둘러싼 모든 아이가 그렇게 소망한다. 80억의 인류가 한마음으로 그렇게 소망한다. 절대적으로 꼭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하나님도 그렇게 소망할 것이다.
착한 마법사들은 이 간절한 인간의 소망이 하늘에 반드시 닿도록 올려보내는 노래를 숲에서 홀로 부르고 있는 이들이다. 그 가슴에 인간의 눈물이 담겨 있어서 그 영혼이 순수하고 맑다. 그들의 이름은 작가라고 불린다. 사실을 무엇보다 존중하기에, 그 소망이 한없이 아름다운 노래가 되는 이들의 이름이다. 소망의 노래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름이다. 그래서 나는 더는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다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노래하며 또 살아가고자 하는 착한 마법사로 컸으면 좋겠다고 나는 소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