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생활자의 수기 #28

"망함의 대가"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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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내 인생에 성공이라는 것이 있었던 적이 없다. 사실 성공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설레이던 봄날의 만남이 그것과 비슷한 것이라면, 또 뜨겁던 여름밤의 축제가 그와 비슷한 것이라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내가 가진 강점이 무엇인지를 물을 때 나는 늘 분명하게 대답해왔다. 시간을 가속하는 것이 아주 고유한 장점이라고. 그래서인지 꽃은 조금 더 빨리 피었고, 불꽃은 더 화사하게 하늘을 물들여갔다. 잎들이 떨어져 노을이 되어가는 계절의 도래도 한결 일렀다. 모든 것이 빨리 다가와 빨리 사라져갔다.


특정한 성취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성공이라면 나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망함의 성품을 지녔다고 해야 하리라. 망하는 일에 익숙했고, 자주 더욱 빠르게 망해갔다. 나는 망함의 대가였다. 대가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는 망할수록 번성했다. 망해서 위축되고 작아지기보다는 오히려 그 생명력이 증대되고 커졌다. 돌아보면 이 사실이 명징하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내가 망해갈 때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다가 더는 갈 수 없는 끝을 맞이했고, 그 자리는 정말로 모든 힘을 다해 도달한 끝이었다. 그러니 여한이 없었다. 이번에는 이런 것을 잘못했으니 다음 번에는 이렇게 해보자, 이런 반성은 여한에서 나온다. 정말로 끝에 간 이는 반성하지 않는다. 더 잘해보겠다고 하지 않는다. 다 잘 했다고만 말한다.


나는 나를 다 주었고 그것만을 사랑했다. 후회없이 전부 사랑했다. 사랑하지 못한 사랑이 여한이 된다. 그것은 결국 자신이 얼마나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인지 그 끝을, 바로 그 크기를 확인하지 못해 생겨나는 것이다. 사랑은 자신이 사랑할 줄 아는 존재라는 사실을 배우기 위해 시작되는 것이며, 망했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사랑의 배움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를 이해하면 사랑은 또 시작된다. 지난 날을 거울삼아 더 나은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올해의 봄은 지난해의 봄보다 더 나은 봄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완전히 새로운 봄이며, 완전히 새로운 사랑이다. 더욱 성대하리라.


사랑을 잃어 아팠던 그 크기만큼 새로운 사랑은 다 담기고 이제 넘쳐 흐른다. 그러니 늘 더 크게 번성할 수밖에는 없다. 흙으로 사라져간 것들이 많은 땅은 나무를 더욱 크게 키운다. 다시 숲을 시작할 것이다. 나는 한 계절을 살기보다는 계절의 순환을 살고 있었다. 숲은 사라짐만큼 성숙되어 간다. 성숙함은 영원의 눈빛을 닮아가는 일이다. 영원할 것은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이 순환의 동그라미다. 사라질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의 깊은 눈동자다. 그 눈빛 속에는 여한이 없다. 끝까지 다 사랑했기에 인간은 사랑의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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