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날"
이전에 머물던 공간을 마지막으로 오늘 정리하면서 처음으로 이렇게 느껴보았다.
"이곳이 이렇게 작았었나?"
지금껏 집을 옮기거나 사업장을 옮기면서 나는 그 반대로만 경험해왔다. 머물던 곳이 빈 자리를 드러낸 후에야 그곳이 그렇게 컸다는 것을 다시 발견하게 되던 경험들이었다. 그것은 포근했던 엄마의 품을 막 떠나려는 아이가 느낄 법한 그 감각과도 비슷했다.
오늘은 아주 오래 전에 살던 옛동네와, 작은 철길의 건널목과, 중학교 그 교실을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온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작아서 새삼스럽고, 조금 놀라우며, 왠지 모를 반가움으로 선명하게 추억진다.
나는 점점 더 잘 보내고 있는 중이다.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소화도 차마 하지 못한 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눈을 질끈 감고는 무시하며 흘려버리지도 않고, "이 또한 지속되리라."라고 눈을 부라리고는 고집을 부리며 경직된 모습으로 썩어가게 하지도 않는다.
잘 보내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심리상담의 핵심일 것이다.
잘 보내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는 누구나 화장실에서 이 중요한 인생의 핵심을 배운다.
좋은 상담소인지를 알고 싶다면 그곳의 화장실을 살펴보라, 나는 이러한 격언을 유행시키고 싶다. 잘 보내는 일을 물심양면으로 조력하고 있는 상담소라면 나는 그곳에 신뢰가 간다.
넷째 날, 선량한 지구인들을 향한 신실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마음의 방주는 전면적인 화장실 개수 작업에 들어갔다.
여성용과 남성용으로 구분된 두 공간에 각각 위생기를 2개씩 새로 설치하기로 했다. 비데까지 장착된 총 4개의 청결한 위생기들이 소중한 지구인들의 정신건강을 도울 것이다. 여성용 공간에는 정결한 식물들로 꾸며진 파우더룸도 부설될 예정이다. 스스로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나날이 발견해가는 여성형 지구인들의 정신건강에 더욱 좋을 것이다.
한글은 아름답다. "주말 잘 보내." "저녁 잘 보내." "휴가 잘 보내."라는 말들은 우리의 건강과 행복이 '잘 보내는 일'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아주 직접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정말로 잘 보냈는지를 알고 싶다면 잘 보면 된다. 살짝 위생기 안을 들여다보면, 어쩌면 작아서 새삼스럽고, 조금 놀라우며, 왠지 모를 반가움으로 선명하게 추억지어지는 것들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잘 보낸 것이다. 추억은 방울방울 투명하고 더욱 맑아지기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 흘러갈 것이다.
우리도 그만큼 조금은 더 커진 것이며 한층 맑아진 것이다.
나는 화장실에서 나온 인간은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과는 분명 조금 다른 존재라고 믿는다. 내담자가 상담소에 들어가기 전과 상담소에서 나온 후가 조금 다를 수 있는 그런 상담소라면 나는 그곳에 신뢰가 가며, 그런 상담소를 만들고 싶다. 화장실 배관을 그윽하니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던 넷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