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째 날"
오늘 내부의 평상작업을 시작했다. 골조 위에는 마루가 깔릴 것이다. 안쪽 공간의 1/3 이상은 평상이 차지한다. 신발을 벗고 앉거나 눕는 것이 역시 편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부의 평상과 외부의 평상이 그 높이가 같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경계를 어떻게 다루려고 하는지의 그 관점이다.
마음의 문제는 다 경계의 문제다.
융과 같은 이는 내 안에 없는 것은 내 밖에도 없다고 말했지만, 이것은 무의식이라는 것을 신적인 것으로 과장해버린 거의 유심론이다. 나는 오히려 그 반대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밖에 없는 것은 내 안에도 없다.
내가 경계의 문제에 대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소통이다.
경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경계가 있다는 사실이 존중되어야 한다. 당위적으로 경계의 안팎이 동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안에서 밖으로, 또 밖에서 안으로 막히지 않고 흐를 수만 있으면 된다. 안팎이 서로에게 열려 대화가 가능하다면 다 괜찮다.
나는 심리학, 마음, 상담, 이런 키워드들로 이루어진 활동들이 얼마나 '안'만을 강조하고 '밖'을 무시하는지 많이 보아왔다. 대학원에서 상담수련생들을 가르치고, 대중강연이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면서, 심리학이 마치 안에 있는 것대로 밖의 것을 바꾸려고 하는 일종의 마법처럼 추구되거나, 안의 것이 밖의 것보다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고집을 지지해주는 역기능적 양육처럼 기대되는 오해들을 자주 만나왔다.
그래서 내가 실존심리학에 뿌리내려 있는 것이리라. 실존은 '밖'을 향한 운동이다. 물론 여기에서 '밖'이라는 것이 더 사회적으로 된다거나 대중지향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 밖은 피상적이다. 진짜 밖이란 개인이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정체성의 그 밖인 것이다. 이것은 언제나 존재라는 이름으로 갈무리된다.
실존은 존재함의 운동이다. 늘 실존에 대한 것들을 언술하면 그 표현이 멋있다.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실제는 정말로 일상적인 것이다. 자기를 어떤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또는 자기가 어떤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마이크를 들지 말고, 다만 아무 생각없이 대화하면 그게 실존이다.
대화할 때 드는 90% 이상의 생각은 다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다. 자기의 '안'이라고 하는 것으로 어떻게 '밖'을 다룰지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다.
이것은 '안'이라는 것을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라고 가정한 뒤, '안'을 충분히 강하게 한 다음에야 '밖'으로 나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안'은 강해질 수 없다. '안'이 강해질 때는 언제나 돌연히 '밖'을 조우했을 때다. '안'이 강해지기 위해 무엇을 준비했든 '밖'을 만나면 열심히 준비한 것들이 거의 다 쓸모없다. 어떻게든 반드시 '안'은 깨지게 된다.
그러니 오히려 준비해야 할 것은 기꺼이 깨질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밖'을 영접하고자 하는 열린 자세일 것이다.
나는 지금 철학적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픈을 준비하는 우리 업장의 구체적인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밖을 높이는 이는 그 안이 높아질 것이다. 같은 높이가 되어 소통될 것이다. 소통의 층위는 이러한 방식으로 계속 상승해갈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지속가능성의 실제라고 믿는다. 우리 사이의 대화야말로 이 세상에서 지속되는 유일한 것이다.
나는 마음이 '밖'에 있다고 늘 말해오곤 했다. '안'에 있는 마음이라고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은 정체성을 이루는 동어반복의 죽은 생각들일 뿐이라고 말해왔다.
마음은 '밖'에서 찾아와주신 귀한 손님이다.
편히 신발을 벗고 앉거나 누워서 쉬실 수 있도록 평상 위로 모셔야 한다. 평상에는 모기향을 피우고, 초를 켜놓을 것이다. 귤을 까먹으며 만화책을 보기에 좋은 안착감이다. 우리는 지금 이 한 번뿐인 마음을 귀하게 모시고 있는가.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어찌되었든 경계면에서 만난다. 인간은 경계의 존재다. 인간의 눈은 사실 안팎을 동시에 보도록 되어 있다.
보이는 것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당위적으로 그렇게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만남의 결과다.
열한째 날,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고, 나는 만남을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