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째 날"
세븐일레븐이 처음 들어왔을 때 놀이동산에 가는 기분으로 방과 후에 친구들과 들렀던 기억이 있다. 마음대로 섞어먹는 슬러시기계 하나만으로 기쁨은 장대했다.
탄산음료 디스펜서와 에스프레소 자동머신, 밀크커피와 율무차가 나오는 옛날자판기, 아이스티 워터저그, 그리고 가능하다면 슬러시기계도 설치하고 싶다. 자유롭게 원하는 음료를 따라 마시고 또 신기한 제조도 하며 음용행위 자체가 하나의 놀이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최대한 사람들이 소소한 것에서부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들로 이 공간을 채우기 위해 궁리하고 있다. 내부의 모든 가구에는 바퀴를 달아 이동도 자유롭게 할 것이다. 정말로 비밀기지의 감수성이다. 영화 '스탠 바이 미'나 만화 '20세기 소년'이 왠지 떠오르는 공간이고 싶다.
말이 나온 김에 빙수기도 하나 올려놓고 간단하게 시럽만 뿌려 먹을 수 있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 최대한 많은 발상이 실현가능하도록 추가로 가구들을 제작하기로 했다.
예전에 한 친구가 놀러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희 집에는 내가 직접 사기는 애매한데 한 번쯤은 꼭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많아서 좋다."
나는 책을 정말 사랑했고, 특히 그런 책들을 격하게 애정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지만 인생을 괜히 행복하게 해주는 책에 대한 선호는 일종의 B급 감성일 수 있다. 어렸을 때 내 꿈은 분명히 헌책방 주인이었다. 헌책방은 그런 책들로 가득한 꿈의 공간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들어서기만 해도 괜히 행복해지는 공간, 지금도 그 꿈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 쓸데없는 것들로 공간을 가득 채울 것이다. 나는 쓸데없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영혼에 좋다고 믿는 사람이다.
당연히 라면조리기도 설치될 예정이다. 라면에 대해서라면 대부분의 지구인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취향이 분명하다. 나는 오X기 라면 특유의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다. 갓뚜X라는 호칭은 크림스프에 대해서만으로도 차고도 넘친다고 생각한다. 그래, 크림스프도 먹을 수 있는 방안을 한번 생각해볼까. 어떻든 나에게 라면의 이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 옛날의 삼X 포장마차 우동이다. 2000년대에 얼큰한 맛으로 다시 나온 그 물건을 말하는 것이 물론 아니다.
너구리 얼큰한 맛과 포장마차 우동 순한 맛만 있으면 무인도 생활도 행복할 것이다. 짜파게티와 팔X 비빔면, 그리고 가끔 사리곰탕면이 있으면 이미 휴양지다. 포장마차 우동은 영혼의 양식으로만 새겨두고서 대체로 그러한 라면들이 준비될 것이다. 파우치에 든 스팸, 참치, 김치, 치즈 등의 토핑도 취향껏이다. 따로 먹고 싶은 라면이 있다면 앞의 편의점에서 사오시면 된다.
토스터와 잼, 피넛버터 등도 준비되어 있을 것이고 누텔라는 옵션이다. 왠지 영혼에 좋은 것들을 쓰다 보니 참기름간장계란밥이 강렬하게 떠오른다.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명란젓도 참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너구리에 명란젓을 넣고 끓이면 정말 맛있다. 일반적으로 너구리에는 금기시된 계란을 풀기까지 하면 명란계란탕 느낌이 난다. 가능할 것인가.
한 번쯤은.
인생에서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이루는 공간.
열여섯째 날, 그 소중하고 소중한 꿈을 위해 내부의 가구들은 착실히 준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