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째 날"
비가 많이 와서 나는 철없이도 조금 신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이곳의 첫 손님일 것이다. 이 공간이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그 어떤 분위기와 풍경들을 처음으로 두루 체험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만족스러웠다. 비일상의 향기가 나를 사로잡는 듯한 일에 무엇보다 만족했다. 왠지 꿈결 같다고 나는 느꼈으리라.
이곳은 차라리 전망대였을까. 일상을 다시 들여다보는 마음의 망원경이 설치된.
비에 젖은 나무냄새가 음악처럼 흐르고, 빛줄기가 선연한 색을 가진 것들 위에 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드시 다시 찾기 위해 떠난 것도 여행이고,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과 처음부터 같이 떠난 것도 여행일 것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싶었던 것은 그러한 안도감이다.
변화는 잠든 사이에 일어난다. 이 사실을 간과하지 말 것, 이라고 나는 다시 기억했다.
깨어나야 한다고 강박하며, 잠들 수 있는 자유가 없다.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은 실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일상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 그 위에 언제나 우리는 앉아 있었다. 일상을 다시 보면 그것은 눈감을 수 있는 안심이었고, 그러면서도 눈떠보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던 변화였다. 망원경으로 보기 위해 한쪽 눈만을 감아 보면 그러한 양쪽이 다 보인다.
일상의 비일상성과 비일상의 일상성, 그 섬세한 경계를 나아가고 있는 갑판 위에 앉아 있다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비가 많이 오니 노골적으로 갑판이었다. 닭백숙을 뜯으며 이모에게 복분자주 한 병을 더 청하는 잭 스패로우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철없이도 조금 신나 있었다.
진지하게 비올 때 청양고추를 살짝 썰어넣은 부추전을 팔까 고민하게 되었다. 배에 따듯한 담요를 깔고 누워 젓가락으로 부침개를 죽죽 찢어먹으며 만화책을 보는 일은 태어나서 무척 행복했던 그 꿈결이지 않겠는가. 셀프전코너를 만드는 일은 어떨까. 눈을 뜨면 분명히 무엇인가가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열다섯째 날, 방주는 든든하게 마음을 태운 채 꿈결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