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째 날"
상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러한 기대감이 들게 하는 장소가 나는 좋은 상담소라고 생각한다. 이 느낌은 조조나 심야시간대에 홀로 영화관을 찾을 때 느끼게 되는 그것에 가깝다. 고요하면서 동시에 설렌다. 내면의 여행을 떠나기에는 가장 좋은 상태다.
무엇보다 몸이 편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분명한 비일상의 감각을 환기시켜야 한다. 이제 상담실 내부에 대한 것들을 생각할 때가 왔다.
여기에는 독립된 3개의 상담공간이 있다. 하나는 일찌감치 구상해놓은 그림이 있다. 선방과 일본가정집 사이의 그 어딘가이다. 세속적 젠 스타일이라고 불러보자. 물론 이 말은 모순이다. 선은 세속과 분리된 적이 없다. 어떻든 가운데 코타츠가 있고, 주위로 식물이 조금 있으며, 그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좌식공간이다.
기왕 좌식을 생각하는 김에 제일 큰 상담실도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전기판넬을 설치하고 마루를 깔 것이다. 이곳에는 요가와 명상, 간단한 보디워크 등이 가능하다. 식물들이 무성한 느낌을 주고자 한다. 무인도 정글에서 아침햇살을 맞으며 국민체조를 하는 감수성은 어떠한가. 나는 그런 그림이 아주 이쁘게 보인다. 인류애가 증진되는 느낌이다.
세 번째의 상담실은 여러모로 정석이었다. 전체적인 화이트톤의 무드에 린넨천이 깔린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되고 화분과 액자들이 놓일 예정이었다. 대충 킨포크 느낌을 내볼까 하다가, 갑자기 에어하키를 설치하고 싶어졌다. 카우치에 누워 스토리텔링을 조작해낼 시간에 그냥 상담자랑 에어하키나 툭툭 치면서 아무 생각없이 말을 꺼내는 것이 자유연상의 효과는 더욱 높을 것이다. 부부상담이나 커플상담은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 상대에게 하키퍽을 보내면서 마음을 담은 말도 같이 보내는 일이 영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야, 우리 요즘 서로에게 불편한 게 좀 있는 것 같은데 상담 한 게임 하러 갈까?" 차라리 이러한 감수성이 상담의 일상화 내지 상담의 문화화에 더욱 가까운 그림이지 않겠는가.
상담실의 내부를 채운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인 구성에 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떠한 정신 또는 어떠한 공기라고 말해야 할 비가시적인 성분이 오히려 더 핵심적이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상담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의 문제다. 나아가 우리가 왜 상담이라는 것을 사랑하고 있는가의 그 고백이자 증명이다.
큰 범주에서는 그저 실존주의 상담이라고 말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실존주의 상담에서 보고 있는 것,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 것이 다른 이들의 것과 같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16년간 한길로 상담을 해오면서 내담자가 어떠한 온전한 상태 같은 것에 눌러 앉지 않게 돕는 것이 상담자의 가장 큰 임무라고 믿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 마음을 다 보는 척하면서 그렇게 마음의 온전함을 그 몸으로 다 수용해 알아줄 수 있는 자기가 또한 얼마나 온전한지에 취하게 되는 상태를 안내하는 일은 무척 쉽다. 반대로 내담자를 그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그가 정말로 자신의 삶을 나아가도록 돕는 일은 어렵다.
아주 많은 경우, 온전한 상태 같은 것은 자신의 삶을 살지 않으려는 가장 효과적인 핑계가 되어 있다. 마치 자식을 끝까지 온전하게 돌본다는 핑계로 자신의 시간을 동결시켜버린 부모의 상태와도 유사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며, 차라리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자유의 유혹자이다. 이것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루세요, 라고 욕망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다. 다 버리고 한번 거대한 자유를 향해서만 가보지 않겠냐고 은근하게 꼬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최대치의 이득을 얻는다. 자유의 목격자에게도 그 자유가 동일한 크기로 흘러들어온다. 함께 자유를 느끼는 것이 바로 행복이며, 우리는 진실한 차원에서 행복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우리는 마음의 헌팅공간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다에서 마음을 낚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라는 바다에 우리가 몸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바다에 낚인 것이다. 처음부터 그러했으며, 그러고자 원래 태어났다. 자유롭다는 것은 우리가 마음이라는 바다에서 수영이나 서핑을 할 때의 그 상태라는 것을 기억해간다.
무엇이 어떻게 일어날지, 여기는 도무지 무슨 공간인지 우리조차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지만, 기억해야 할 것만 기억하고 가면 다 괜찮을 것이다. 열여덟째 날, 그 미지의 문을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