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째 날"
상담실 두 곳과 내부평상의 위아래에 각각 깔릴 마루재를 고를 시간이다.
내부평상 위는 외부의 방부목과 유사한 색감으로 마치 하나의 큰 상판인 것 같은 느낌을 주면 되니 선택은 쉽다. 문제는 바닥에 들어갈 마루재의 선택이다.
나는 마른 걸레에 왁스를 묻혀 벅벅 닦던 옛날 국민학교 마루의 느낌을 내고 싶다. 혹은 시골 할아버지집에 삐걱거리던 그 대청마루의 느낌일 것이다. 신발을 벗고 누워 만화책을 보며 뒹굴거리다 어느샌가 낮잠이 들면, 깨어났을 때 수박과 차가운 보리차가 머리맡에 놓여 있는 그 정경이다.
나는 옛날물펌프도 좋아하고 차가운 물이 담기던 붉은 다라이도 좋아한다. 논 사이로 난 길로 쌀집자전거도 많이 타고 다녔고 육중한 사각배터리가 들어가는 후레쉬를 들고 뒷산도 많이 누볐다. 커다란 평상 위에 앉아 고스톱을 치던 어른들 사이에 끼어 큰 솥에 끓인 라면을 나누어 먹던 기억도 좋고, 화톳불이 타닥거리던 소리도 좋으며, 이 느긋한 공간을 지키고 있던 풀벌레 소리와, 이 모든 것을 고요한 침묵으로 바라봐주고 있던 달빛은 가장 좋았다.
그래서 바닥의 색감은 이러한 정취와는 다른 밝은 톤으로 결정했다. 조금 더 젊고 세련된 감각이다. 결국 나는 알아버린 까닭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다만 순수하고 오롯하게 내 가슴의 천국이라는 사실을.
그곳은 내 자신이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사람들을 만나러 나올 곳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다 놀고 저녁해가 저물어갈 무렵 자전거에 올라타 기쁨으로 돌아가야 할 집이다. 언젠가는 우리가 거기에서 만날 일도 있겠지만, 지금은 들에서 노는 시간이다.
들의 색감도 나는 분명 좋아한다. 결국 그런 색으로 마루재들을 선택했다.
어쩌면 지금 이러한 공간의 느낌은 또 나중의 누군가에게는 그의 가슴에 피어날 천국의 정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정말 좋을 것이다.
이 세상을 살다간 모든 것은 반드시 누군가의 가슴에는 천국으로 남는다고 나는 믿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상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자신의 천국에 갖고 갈 것을 모으고 있는 것이라는 그 상상이다. 이미 모두가 다 방주같은 삶이다. 사랑했던 것들을 다 싣고 가려면 역시 쌀집자전거 정도는 되어야 하리라. 나는 이미 많이 실어 놓았다. 그리고 더 싣고 싶어서 아마도 이 공간을 만드는 중일 것이다. 사랑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그래서 끝없는 사랑이다.
오늘도 이렇게 또 놀러 나왔듯이, 마루 위에서 잠이 깨면 언제든 다시 놀러나올 것이다. 이곳에 기대어 있는 자전거가 보인다면 아마도 수박과 차가운 보리차를 놓고 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일 것이다. 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달려 스물한째 날도 막 도착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