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상담소를 만들어보자 #38

"서른여덟째 날"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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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기계가 잘 작동한다면 대체로 우리 삶에 큰 문제는 없어지리라 생각한다.


테스트로 끓인 김에 『일본침몰』의 마지막 권을 꺼내 읽는다. 약간 과잉된 어조가 오글오글하기도 하지만 『세계의 미스터리 조사반』처럼 그 맛에 읽는다. 그리고 분명하다. 전하고자 하는 것이. 세상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았으며, 그러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에 정직하지 않고 마음을 속이고만 있을 때 세상도 침몰한다. 마음현상과 자연현상을 같은 것으로 보고자 하는 이 관점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그런 것을 그리고 있는 만화다.


라면 안에 빠진 계란처럼, 만화 안에 내 마음도 폭 빠져들어간다. 라면을 먹으며 만화책을 볼 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라면기계만 잘 작동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탄산수 제조기에서 왠지 물이 새는 것 같아 수난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킨다 해도, 자판기의 커피믹스 분량을 조절하는 일이 어렵다 해도, 또 에스프레소 머신에 이상한 추가부품을 장착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해도, 라면기계만 안녕하다면 근본적으로는 다 괜찮을 것이다.


오늘도 세상만 안녕하다면 모든 것은 괜찮을 것이다.


내 마음은 세상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세상에 빚을 지고 있다. 애초에 세상은 단 한 번도 청구한 적이 없지만, 나는 잊지 않고 있다.


그것은 갚아야 하는 빚이 아니라, 갚고 싶은 빚이다.


아이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갚아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갚고 싶다는 자신의 자유를 발휘해 어른이 되는 것이다.


무엇을 갚고 싶은지도 분명하다.


세상에서 태어난 내 마음이 처음 본 것은 환한 빛이었다. 그렇게 세상이 자신에게 준 것은 빚이 아니라 빛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 아이들은 이제 그 빛을 갚고 싶은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빛나는 곳인지를 그들은 사랑으로 노래하고 싶어한다.


『일본침몰』의 마지막에서는 이렇게 암시한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세상을 보는 그 마음이 아름답기 때문이고, 마음이 아름다운 것은 마음을 낳은 그 세상이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이것을 깨달은 이는 완전히 다른 존재방식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책에서는 비유한다.


나중에 또 망하게 되면 그때에는 '마음과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에니메이션이나 만화의 창작활동을 심리상담적 요소와 연결시킨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러니까 조금 더 세상을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정직하게 증언할 수 있는 적극적 투광기의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현재 우리가 들어와있는 공간은 원래 카메라와 같은 촬영장비 대여점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망했다고 치고 마음과 세상을, 아니 마음의 세상을 여기에서 바로 펼쳐봐도 좋을 것이다. 마음이 사랑했던 세상이고, 세상이 사랑했던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세상 안에 폭 빠져 살아가고 있다면, 이제 그 눈에 보이게 되는 것들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빛으로 가득할 것이다.


마음의 방주가 위치해 있는 이 서교동 거리의 여름날 풍경은 정말로 예쁘다.


그 자체로 어떠한 만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다.


라면기계만 잘 작동한다면, 세상이 원래 이처럼 아름다웠다는 사실을 누구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도, 너무 좋아서 그 안에 폭 빠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왠지 오늘은 세상에 조금 갚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서른여덟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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