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째 날"
좌식 상담실도 일단은 마무리를 했다. 겨울에는 코타츠에 이불이 덮일 것이고, 조명은 조금 더 따듯한 느낌의 램프의 형상으로 벽에 단 나무선반들 위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 좌식공간은 내가 처음 낸 상담소인 실존상담연구소의 내부를 닮았다. 소박하며 포근하다. 공방 같기도 하고 작업실 같기도 하다. 기타보다는 우쿨렐레가 분명 더 어울리는 공간인데, 우선은 기타를 갖다 놓았다.
3곳의 상담실들이 각각 실존상담연구소, 카페 어웨이크닝, 그리고 현 꽃이 피는 상담소 maum의 분위기를 따라 구성되어 있다. 각각 통나무집, 정글 속 아지트, 꽃집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공통점은 분명하다.
왠지 모르게 음악이 흐르면 아주 잘 어울리는 공간들이다.
음악, 나를 상담사로 성장시킨 절반의 몫은 음악이 아니었을까.
게임이나 책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나는 음악에 대해서는 그 취향이 한층 분명했다. 다른 이들이 좋아한다고 억지로 그 음악을 들은 적도 없고, 다른 이들에게 대단하게 보이기 위해 음악을 들은 적도 없다. 100%로 내 가슴이 바라는 소리들만을 찾아 나섰고 더 많이 만나갔다.
음악에 대해서만은 나는 언제나 순도 100%의 나였다. 누구에게도 의존해 있지 않았고, 누구의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어떤 때 행복한지를 나는 분명하게 알았으며 그 행복을 누구에게도 위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음악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이러한 것이다.
세상 모두가 NO라고 하더라도 그 음악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그것이 내 음악이며, 그런 것이 바로 나다. 다른 것을 다 포기해서라도 나는 그것만을 선택해가면 되는 것이었으리라.
결국 나는 음악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로 사는 법을 배워갔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음악을 소재로 자신을 고집하며 다른 이들과 투쟁을 벌여왔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내가 듣는 음악이 심히 후지다고 누가 비난한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 왜인가? 나는 이미 그것으로 행복하기 때문이며, 완벽하게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하다는데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이들의 견해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자신이 어떤 때 행복한지에 대한 분명한 감각이 없는 이들이 오히려 자신의 취향을 내세우며 고집을 부리는 모습을 나는 압도적으로 더 많이 보아왔다. 나는 분명 어설픈 메니아나 오타쿠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늘 화만 낼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화는 이들이 아무리 많은 취향의 소재들에 대한 정보를 보유했다 할지라도, 정말로 딱 자신다운 어떠한 것을 찾지 못해서 생겨난 답답함에 기인한다.
그러한 것을 찾지 못하게 된 이유도 분명하다. 남들에게 커피 좀 아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커피에 버터를 넣고 있고, 남들에게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겉핥기로 계보사만 따라가며 앨범을 듣고 있어서다.
어설픈 메니아나 오타쿠의 특징은 남들은 잘 모르는 희소한 정보를 자신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듣고 있던 것과도 같다. 그렇다고 그 정보가 희소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 또한 물론 아니다. 편의점에서도 팔고 있는 방탄커피가 특별한 소수의 메니아들만 알고 있는 희소재일 수는 없다.
죽기 전에 딱 한 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이 놀라운 방탄커피의 가치를 못알아보는 무지한 세상을 자신이 계몽해주겠다며 열을 올리던 자칭 커피메니아들은 정말로 방탄커피를 마시려 할까? 그들의 가슴은 정말로 그렇게 말하고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의 가슴을 따라 어떤 것을 하고 있는 이라면 그것에 열을 올릴 이유가 없으며,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그것을 그윽하게 들이키며 지금 여기에서부터 행복할 것이다.
음악이라고 말해왔지만, 우리 자신의 가슴이 끌리고 있는 그 소재는 결국 나다.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실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찾아 오고 있는 것이이라.
다른 이들을 만족시켜야만 나일 수 있고, 다른 이들의 눈치를 봐야만 나일 수 있으며, 다른 이들에게 대단하게 보여야만 나일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과연 살 이유가 있을까?
나는 아무 조건없이 그냥 나이고만 싶었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담을 시작했다.
음악이 흐르는 일처럼 상담을 하고자 했다.
상담은 한 개인이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이로 살고자 하는 망상의 욕망을 좌절시키고 오롯하게 나로 사는 일을 돕는 것이다.
음악의 작용과도 정말로 같은 것이다.
음악이 흐르고 있는 동안 꽃이 핀다.
그렇게 믿고 있기에 나는 상담실들을 왠지 모르게 음악이 흐를 것 같은 공간들로 만들고자 했다.
마흔다섯째 날, 내가 죽을 때 한 곡을 들을 수 있다면 데미안 라이스의 트러스티 앤 트루를 들으리라고 나는 다시 한 번 기억했다. 내가 죽을 때도 나는 나로 죽을 것이라고 떠올리며 행복했던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행복을 보증하는 각자의 멜로디들이 있다. 바로 이 공간에서 우리는 함께 찾을 것이고, 함께 꽃필 것이다.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