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주에서 혼자일 때 마음이란 게 있어 너를 만났어

#2 외로워할 시간도 없는 사람들

by 깨닫는마음씨




인생이란 근본적으로 내가 혼자라는 것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것을 최초의 책임이라고 말해도 좋다. 이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타인에게 떠넘기고 있는 이는 인생의 어떤 일이라도 실은 책임지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그럴 때 오히려 강박적으로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이 된다. 자기는 최초의 책임에서부터 방기하고 있으면서, 남들에게는 윤리, 도덕, 의무 등의 이름으로 책임을 강제하고자 한다.


자기가 성숙한 어른인 줄 아는 애송이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자기가 혼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책임져감으로써만 어른으로 성숙해진다. 이러한 이는 자기가 혼자라고 느끼게 된 것이 누군가가 자기를 유기하고 소외하고 방치했기 때문이라거나, 누구도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착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해당의 사유로 타인을 비난하거나 타인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갈등은, 특히 화는, 자기가 혼자라는 사실에 대한 책임을 남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무수한 심리상담의 문제가 '착각'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아주 의미깊다. 그래서 심리상담은 착각 아래서 살아가는 상태를 사실 위에서 살아가는 상태로 전환되도록 돕는 일인 것이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우리가 혼자라는 말은 우리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말과 절대로 동의어가 아니다. 이것은 엄마의 치마폭에 싸여 지내던 어린아이가 곧잘 갖곤 하는 착각의 양상이다. 그러한 어린아이는 아주 늦게나마, 인생의 어느 한순간에, 원래 인생은 자신 혼자라는 사실을 반드시 실감하게 된다. 그것이 정말로 사실임을 인식하고야 만다.


이렇든 모든 아이는 어른이 될 운명인 법이다.


인생의 근본사실을 속이느라 늦장을 부리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편이 무조건 낫다.


그 결과로서 반드시 자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는 형식적 개념에 대한 유교주의적 환상을 거세하고 본다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자유로워진다는 의미에 다름아닐 뿐이다. 아이들은 왜 어른을 흉내내며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가? 어른이 되면 자신이 자유로우리란 것을 직감하고 있는 까닭이다. 애벌레가 나비의 꿈을 꾸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요즘의 애벌레들은 나비의 꿈을 꾸지 않는다.


뻥튀기처럼 허구의 덩치만 부풀리면 그게 성장하고 발전하여 어른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환상의 바다에 우뚝 세워진 욕망나무의 잎사귀들을 갉아먹는 일에만 분주하다.


분주하고 또 분주해서 요즘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없다.


외로워할 시간이 없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일부러 더 분주해지기까지 하며 시간은 더욱 없어졌다.


우리는 외로워할 시간마저 잃고 말았다.


시간이 있어야 꿈을 꿀 수 있다. 자신의 시간이 있어야 자신이 되는 꿈도 꿀 수 있다.


외로움은 오롯하게 자신으로 있는 그 시간의 경험이다.


거듭 말하지만, 외로움은 우리가 사랑받지 못해 추방된 상태라든가 엄마의 품에서 냉정하게 밀쳐지게 된 가엾은 아이의 상태 따위의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한 감상은 병적인 자아도취의 일종이다. 일그러진 자기애의 경험이다. 현재 자기의 현실이 막혀 있는 이들이 빠지곤 하는 상태다.


현실이 막힌 이유는 분명하다. 자유가 없어서다. 다른 누군가가 자기를 온전하게 알아주지 않았다거나, 진정한 사랑을 친절한 태도로 전해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을 다른 이에게 거듭 전가한다고 막힌 현실이 열리게 되지는 않는다. 현실은 비겁하게 사기를 쳐서 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현실은 오직 정직한 자유로만 열릴 수 있다.


우리가 아직 자기 자신이 아니라서 자유가 없기에 막히게 되었다는 것, 그것만이 이 현실에 답답하고 공허하고 화가 나는 유일한 이유다.


인생에 대한 우리의 유일한 책임은 자기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외로움은 바로 그 응답의 시간이다. 우리가 외로울 때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서 근원적인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외로운 이는 자유롭다. 그는 어른으로 변모하며, 이제 준비가 된 것이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은 분명하게 실존주의 에세이다. 실존주의는 사랑의 철학이며, 사랑을 배워가고 싶은 이들을 위한 심리학적 실천론이다. 나는 실존주의에 대해 이러한 나름의 정의를 갖고 있다. 실존주의에서 사랑은 자유의 자기표현이다. 자유란 언제나 사랑할 자유를 의미한다, 자유로운 이만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실존주의는 이러한 길로 우리를 준비시킨다. 우리가 한결같이 품어온 가장 소중한 꿈을 이제 이루어낼 태세를 갖출 수 있게 한다.


가장 먼저 실존주의는 우리가 외롭다는 근원의 사실로 우리를 복귀시킨다. 일단 출발점에 서야 레이스는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줄달음을 시작해보면 또한 알 수 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트랙 위를 기고 있지 않다. 우리는 날고 있다.


우리의 그리움이 저 한정없는 끝까지 널리 뜨겁게 비상하고 있다.


외로워할 시간을 가져본 이들은 이것이 무슨 말인지 너무나 잘 안다. 자신은 실은 외로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외로움이라고 알고 있던 것의 진짜 이름은 그리움이었다.


애벌레에게는 외로움인 것이 나비에게는 그리움이다.


외로워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동안 우리는 누구라도 이 사실을 발견한다.


우리가 혼자라는 사실을 살아가는 이는, 바로 그 외로움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는 그의 내부로부터 그리움이 우물처럼 샘솟아 그의 세포를 흠뻑 적셔간다.


외로움은 영혼이 목욕하는 시간이다. 이 거룩한 세례로 인해 그의 영혼은 새롭게 탈바꿈된다. 애벌레가 우화하듯 그는 전적으로 새로운 존재가 된다.


그는 그리워하고 있는 존재며,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한 존재다.


외로움이 밀려올 때 그의 내부에서도 동일하게 그리움이 가득 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이와 같은 이는 더욱 놀라운 지평으로도 향할 수 있다.


마치 바닷물에 잠겨 있듯이 그는 자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외로움 속에 잠겨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외로움과 그리움이 동일한 것이었다는 사실 또한 이해하게 된다. 그러한 그는 소스라친다.


그는 그 자신을 향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그리움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우주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던 것이다.


나는 폴 틸리히의 감동적인 한 진술을 소개하고 싶다. 그는 말한다.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고 있던 그것이 누구인지를 묻지 말라. 그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려 하지 말라. 당신은 언젠가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다만, 가장 사랑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믿던 당신이 이미 사랑 속에 있었다는 그 사실만을 이해해보라. 그 커다란 사랑 속에만 있어보라."


우리가 외로워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적을 확인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외로워할 시간도 없어서 사람들은 사랑받을 시간도 없다.


그러니 이제 사랑을 향해 나아가며 사랑을 배워갈 시간도 잃고야 만다. 인생이란 통째로 우리가 사랑을 배워갈 그 기회의 시간인데, 그러한 인생 자체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다들 저마다 연예인인 것처럼 자기를 포장지로 감싸,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인물인지를 선전하는 일에 여념이 없는 오늘날이다. 나는 이 시대의 징후에서 커다란 자기상실을 본다. 자기가 없는 만큼 우리는 자기를 사랑해달라고 요청한다. 휴대폰배터리를 충전하듯이 자신이라는 것은 '좋아요'의 전력을 공급받아야 지속할 수 있는 비루한 성질의 것이 되어버렸다.


실은 다들 살기 싫을 것이다.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다들 진심으로는 그렇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진심으로 이 에세이를 쓰고 있다.


우리가 한번 우리의 인생을 되찾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인생을 바로 찾은 그 기쁨의 노래가 될 수 있다면 더는 무엇을 바랄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러한 마음을 표현해본다.


너에게.


닿고 싶다.


내가 외로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시간을 오롯이 너를 향한 노래로 그릴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다. 나는 행운아다. 이 인생이라는 것을 살 기회를 얻었다. 너를 꿈꿀 수 있는 축복을 얻었다.


이 우주가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은, 영겁의 시간 동안 매순간을 인간이 이처럼 인간을 한길로 그리워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 혼자의 시간을 아주 많이 가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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