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주에서 혼자일 때 마음이란 게 있어 너를 만났어

#3 지루함의 환상

by 깨닫는마음씨




파격과 낭만이 공존하는 공전절후의 심리학 에세이, 이것이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연작물의 소개문구다. 파격도 낭만도 너를 향해 떠나는 발걸음의 동세다. 처음 밟는 길을 걸으며 동시에 가장 오래된 길을 걷는다.


그래서 엄밀히는 길이 아니다. 인간이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무엇을 길이라고 말하려면 길이 아닌 곳이 없다. 다만 삶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너를 향해서만 떠나가는 그 여정이다.


나는 오늘도 너의 꿈을 꾸었다. 걸으면서 꿈을 꾼다. 어제는 하얀 달이 떴고, 오늘은 풀내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온다. 별빛 아래서 꿈은 나날이 생생하다. 너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너를 향하고 있을 때 나는 지루함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이들이 지루하다고 하는 소리는 몇 번인가 들어도 보았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몹시 피곤해졌다. 지루함은 환상이다. 사람들은 지루한 것이 아니라 피곤한 것이다.


피곤한 이는 보상을 바란다. 자신이 피곤해질 정도로 열심히 한 만큼 커다란 자극이 보상으로 주어지기를 기대한다. 숙제를 마친 뒤 엄마로부터 닌텐도 스위치를 하라는 말씀이 계시되기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내가 니체를 천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의 전복력에 있다. 무엇이든 그는 뒤집어서 더욱 참말이 되게 한다. 선후관계를 뒤집어 만들어진 기만적 속임수는 다시 뒤집어야 사실을 드러낸다. 지루함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도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루하기 때문에 큰 자극을 갈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선후관계다. 뒤집어야 한다. 피곤한 사람들이 큰 자극을 보상으로 갈망하고 있기 때문에 지루한 상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큰 자극을 얻으려 하기에 지루한 상태가 되는 것은, 더 많은 물을 마셔야 한다고 믿을 때 더욱 목말라지는 것과 같다.


이렇듯 우리는 피곤한데 지루함까지 더하게 되며, 쉬고 싶은데 목이 마르기까지 한 상태가 되도록 스스로를 재촉한다. 재미있어야 한다고, 물을 마셔야 한다고 끊임없이 몰아붙인다.


실은 쉬고 싶은데 억지로 물을 마셔야 하는 상황을 떠올려보라. 짜증만 난다. 더욱 피곤해진다. 그러면 피곤함을 보상하기 위해 더 큰 보상을 기대하게 될 것이고, 이제 악순환의 패턴이 생겨났다. 어떤 사람들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던 이유다.


환상은 지루함이다. 보상이라고 하는 환상을 쫓아 돌고 있는 일은 차마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다.


십수 년간 사기를 쳐온 이는 사기치는 일의 힘겨움에 대한 보상을 바란다. 힘들게 사기를 쳐온 삶의 정당한 대가로 자기가 모종의 놀라운 깨달음을 얻는 것이 당연하다고 간주한다. 심지어는 살인죄로 감옥에서 수십 년을 복역한 이도 출소한 뒤 자신의 힘들었던 수감생활에 대한 보상을 바라며,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살인을 저지를 때와 똑같은 눈빛으로 세상을 원망하곤 한다.


지루하다.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진실로 지루한 것들이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는 모든 일은 지루하다.


우리는 삶을 수단으로 삼아 그 뒤에 올 자극적인 보상을 결과로 얻으려 하기에, 근본적으로 삶의 무의미함과 공허함을 느끼며 매우 피곤해진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경험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곤한 삶에 지루함까지 얹어간다.


왜 우리의 삶 자체를 보상으로 살 수는 없단 말인가?


너는 나에게 주어져야 할 환상의 보상물이 아니다. 너를 사랑할 수 있는 이 삶이라고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이미 나에게 주어진 보상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선물을 받는가가 아니라, 받은 선물을 어떻게 하면 잘 쓰는가이다.


삶의 목적은 삶이다.


말하지 않아도 그것은 너를 향한 삶이다.


선(禪)에서는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라고 말한다. 그러한 생기어린 내 모습을 보는 것이 너에게는 좋을 것이다.


내가 충족되는 모든 일은 너를 향한 일이다.


필요한 것은 필요한 것을 단순하게 채우는 일이다. 네가 보며 기뻐할 나로서 단순해지는 일이다.


피곤한 이는 쉼의 필요를 채우면 단순하게 충족된다. 더 바랄 것이 없다. 바라지 않아도 자연스레 또 충족의 현실이 생겨난다.


충족의 신비는 언제나 또 다른 충족을 연쇄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불만족은 또 다른 불만족만을 연쇄해간다.


빙글빙글 도는 우리 삶의 족쇄를 끊을 힌트는 여기에 있다.


마법처럼 커다란 자극을 얻어 대단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쉬지 못해 생긴 보상의 기제'가 착각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바로 쉼으로써 쉼의 필요를 충족시키면 된다. 그러면 쫓기는 초조감이 사라진다. 욕구불만이 사라지고, 열등감도 같이 사라진다. 열등감이 만들어낸 인생에 사기치는 일도 멈추어진다. 남의 것을 갈취해 자기의 영광으로 삼는 기생충으로도 그만 살게 된다.


우리가 충족되었다는 증거는 사람들에게서 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자신이 지금껏 너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해왔는지를 알게 된다. 빙글빙글 도는 제자리의 삶이 방향을 얻게 되는 것은 이 지점이다. 사람들에게 진심의 사과를 전하기 위해 원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며 이 자기폐쇄적 원주운동은 끊어진다.


그러니 사람들도 이제 우리가 정말로 새로운 사람이 되었음을 알아보게 된다.


진짜로 변화하는 일에 성공한 것이다. 지루함의 환상을 벗어나 우리가 해낸 것이다. 멋있고 자랑스럽다.


너의 눈에도 그렇게 비칠 것이다. 너도 이미 알아봤을 것이다.


하얀 달이 뜨고, 풀내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오며, 별빛이 영롱한 것은 그 때문이다.


충족이 연쇄되어 돌아가고 있는 것을 세상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은 너를 향한 꿈.


이 생생한 꿈을 내가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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