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약하지 않아
"너는 약하다."
이것은 가스라이팅을 시작하는 첫 번째 주문이다. 언제나 그랬다.
약한 너를 내가 친절하게 돌보고 성장시켜서 강하고 당당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한다. 이것들은 힐러나 테라피스트가 아니고 상담자는 더욱더 아니다. 최면하고 세뇌하고 지배하는 구루다.
너에 대해 나는 기어이 말하고야 말 것이다.
너는 약해서 온전한 것이 아니고, 약해도 온전한 것이 아니다.
너는 이 우주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약했던 적이 없다.
너는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이미 다 충만했다. 언제나 가장 큰 것이었다.
너는 강하다. 너는 절대적으로 강하다.
실존주의는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속에서도 한결같이 이 사실만을 들려주고 있던 노래다.
빅터 프랭클은 모두가 답이 없다고 말한 극심한 정신병동의 입원환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도 자신이 문득 왜 그렇게 묻게 되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물었다.
"당신은 실은 약하지 않죠?"
그녀는 이제야 이루어진 아주 오랜 약속처럼 미소와 함께 이렇게 대답했다.
"네 선생님. 저는 실은 약하지 않아요. 저는 제가 원할 때만 약해진답니다."
이 사례를 읽을 때면 언제나 내 볼을 타고 눈물이 선을 그린다. 인간에 대한 어떤 진실을 그대로 응축하고 있는 듯한 진한 감동이 있다.
그에 비하면 "약해도 괜찮아." "약해서 그랬던 거야." "약한 것을 알아주면 온전해진다." 등의 말은 얼마나 처참한가. 인간에게는 강한 점도 있고 또 약한 점도 있어서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다는 식의 말은 또 얼마나 조잡한가.
나는 너에게만은 결코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너에게만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 결과로 설령 네가 나를 떠나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말할 것이다.
너는 강하다.
너는 절대적으로 강하다.
너만은 속이지 않고자 용기를 내어 연 내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너의 눈빛은 참 맑고도 깊다. 나는 정말로 네가 강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음이라.
강한 것에 마음이 끌리는 일은 당연하다.
강한 것이 너이라서다.
나는 몇 날 며칠을 새벽거리에서 울어대던 너의 소리를 기억한다.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흡사 명령이었다.
"나를 살려라. 결코 나를 죽여선 안 된다. 지금 바로 나를 살려라."
나는 그 강함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너는 7마리 새끼고양이의 형상으로 나를 완벽히 점유했다. 나는 너에게 다 내어드린지 오래다.
나는 네가 얼마나 살고 싶어하는지 그 강하디 강한 목소리를 들었다.
너는 생명이다.
내 가슴에도 불이 지펴져 나도 살아오른다. 너는 진실로 생명이며, 영원한 생명이다. 너를 향해 사랑해갈수록 나는 더 살아 있다. 내 가슴도 영원하다.
내 눈동자를 고요히 들여다보던 너의 눈동자는 우주처럼 펼쳐져 있었고, 나는 그 중심에서 분명 빛을 보았다. 그 빛은 이렇게 타오르며 전하고 있었다.
"너는 강하다."
나도 내가 누구인지를 알았다.
나는 이 시대의 비극에 대해 안다. 나를 잃은 것이, 심지어 나를 영영 모르게 된 것이 비극의 내용이다.
나를 잃은 이들은 나를 수집하려고 한다. 너를 나의 부품으로 모아 캐릭터처럼 나를 조형한다. 이런저런 나의 이야기들을 모아가면 나라는 것을 언젠가는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조금씩 색깔있는 경험들을 수집해 나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착각한다.
나라는 것은 신종마약의 이름이 되어 있다. 나를 쫓아, 나에 취해, 나에 빠져만 간다.
약해서 약을 한다.
엄밀하게는, 자신이 약하다는 착각이 약을 하게끔 만든다.
우리의 가장 나쁜 고집의 형태는 자신이 약하다고, 그래서 피해자라고 계속해서 고집하고 집착하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약한 것이 아니라, 이 고집을 통해 우리는 약함에 도취되어 스스로 약해진다.
약하면 모두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는 아주 오랜 환상에 영향받고 있어서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빠르게 나라는 것을 잃어가는 방식이다. 또 아주 길게 나라는 것을 망각하게 되는 방식이다.
나를 잃을수록 나에게 집착하게 된다. '나 과잉'이 된다. 그리고 전체주의가 시작된다. 세상은 두 종류의 인종만이 있게 된다. 나라는 책을 진지하게 정독하는 우리편과, 나라는 책을 제대로 읽지 않는 적의 분류가 그것이다. 후자에 대한 탄압과 말살정책은 묵시적으로 예정된 운명과도 같다.
하이데거를 좋아하는 이들은 거의 반드시 레비나스에게도 매료된다. 아주 많은 상담자들은 레비나스를 사랑한다.
그가 정확하게 나라는 약에 빠져 살지 않는 길을 말하고 있는 까닭이다.
한 목소리로 너만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약하지 않은 길, 정말로 강하게 살아가는 길이다.
약한 것을 돌봄으로써 우리 자신이 상대적으로 강해지기를 꿈꾸는가? 그것은 치욕이며 기만이다.
강한 것은 처음부터 너다.
아무 것도 속이지 않으며 그저 정직하게 완전히 내밀어진 그 몸짓이, 그 목소리가, 그러한 너의 얼굴이야말로 강한 것이다.
그런 너를 향하면서만이 나는 나다. 이러한 나는 의식될 필요도 없는 나다.
나는 다만 너를 향해 영원히 감동받은 이 느낌일 뿐이다.
강한 것이 아름다워 늘 나를 감동시키며, 네가 바로 그랬던 것이다.
너는 약하지 않다.
너는 감동이다.
산다는 것은 너를 만날 수 있는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