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두려운 줄을 몰라서
"쫄지 마, 시바."
"니가 뭐가 두려워? 넌 엄마 아들인데."
"두려워할 거 없어. 두려움 금지. 넌 아빠 딸이야."
잃어간다. 아주 빠르게 잃어간다. 너를 잃어간다.
이 말들에 취해, 자기가 주인공인 줄 알고 새벽의 주택가를 오토바이로 굉음을 내며 질주하느라, 자기 아닌 사람들이 우습게 보여 똑똑해보이는 말들로 사기를 치느라, 정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다 해도 된다고 생각하며 권리 아닌 것도 권리로 주장하느라, 매일매일 너를 광속으로 잃어만 간다.
두려운 줄을 몰라 너를 잃는다.
두려운 줄을 모를 때는 두렵지 않은 척하고 있을 때다.
두렵지 않은 척하고 있으면 화가 난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화가 난 줄을 모른다. 이럴 때 경험되는 것은 무감함이다. 자기의 실제 상태가 차단되었기에 안개숲 속에서 헤매는 것 같은 상태다. 그러나 이것은 화가 나있는 상태다.
두려움을 소외하는 만큼 화로 경험된다는 것은 심리상담의 잘 알려진 공식과도 같다.
두려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기에 사람들은 화만 누적해가며, 또 그 화를 다루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두려움은 아주 신비한 감정이다.
두려움의 원래의 이름은 경외감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르는 아주 거대하고 놀라운 것을 마주했을 때 경험하게 되는 감정이다.
두려움이 이 신비와의 조우를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그래서 황당한 일이 생겨난다. 자기가 모르는 것 앞에서 화만 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기를 화나게 했으니 그것은 나쁜 것이라고 심판하는 일조차도 자행하게 된다.
자기보다 큰 것을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이 습관은 아주 유치하고 미숙한 종류의 것이다. 거기에는 유아적 전능감에 근거한 오만이 자리잡고 있다. 자기는 흡사 다 알고 있는 사람이고, 그것도 제일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착각에서 비롯한 오만이다. 그 착각을 지지하는 것이 앞서 말한 환상의 진술들이다.
우리는 환상의 진술들에 의지하여, 자기보다 큰 것 앞에서 두렵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 버티고, 회피하며, 또 그것이 없는 척 애써 무시함으로써 소외시키곤 한다. 나아가서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흡사 악마로 만든다.
바로 너를 대하는 태도다.
우리는 너에게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없는 사람 취급당하거나, 악마처럼 취급당해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두렵다는 사실을 몰라서, 또 일부러 모르기 위해 대신 너를 두렵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너에게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네 앞에서 자신이 지금 두려운 줄을 아는 이는 너를 안다.
네가 신비라는 사실을 안다.
신비 앞에서 자신이 어떤 당위적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신비를 사랑할 수만 있을 뿐이다.
두려움의 신비란 이 사랑의 개방에 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경외감이라고 부른다.
나는 너에 대해 말할 때면 아주 낭만적인 색채로 너를 묘사하고 있지만, 실은 나는 네가 두렵다.
결코 나에게 통제되지 않는 네가 두렵고, 내 예상과는 다르게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네가 두려우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을 네가 두렵고,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우며, 무엇보다도 너를 잃는 것이 두렵다.
너에게 나를 떠날 자유가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이 가장 두렵다.
그러니 나는 너를 사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랑은 나의 자유가 너의 자유를 향하게 하는 일, 나의 자유를 너의 자유를 위해 쓰는 일.
그러면 사랑 속에서 알게 된다.
너도 그러고 있었음을.
너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네가 엄마의 아들이고, 아빠의 딸이어서가 아니었다.
너는 처음부터 나를 가장 커다란 것으로 올바르게 알아보고 있었던 까닭이다.
너는 처음부터 나를 사랑만 했다.
나를 비추는 소중한 신비라고, 너는 저 별빛처럼 감격스러워만 했다.
너는 한 번도 나를 떠날 생각 따위는 한 적이 없다.
두려움은 아주 신비한 감정, 그것은 경외감이라고 이름붙여진, 이유도 모르게 절대적으로 끌리는 그 감정이다.
너에겐 내가 언제나 그랬고, 나는 지금에서야 그게 무엇인지를 알아간다.
두려운 줄을 모른다는 것은, 자신이 사랑에 빠진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너를 잃고 나서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음을 알게 되는 일은 어찌나 허다한가. 자신이 실은 사랑하는 줄도 모르면서 무감하게 살아가는 일은 또 어찌나 빈번한가.
자신이 두려운 줄을 안다면 우리에게는 이제 걱정이 없다. 자신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미 사랑에 빠졌다는 그 확증이다.
사랑은 언제나 자신보다 더 큰 것을 향해 광속으로 질주한다.
그렇게 자신의 가슴도 더 큰 것으로 바꾸어놓는다.
인간은 사랑으로만 성숙되어 자라난다.
그 사랑은 두려운 줄을 알며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두렵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네가 있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두렵지 않다.
두려운 줄을, 바로 네가 있는 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