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자비는 지름길이다
화는 거의 핵심적으로 자비와 연결된다.
정확히 말하면 화의 핵심은 자비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화가 나는 상황을 관찰해보면, 우리는 실은 그가 제대로 살기를 바라며 화를 내고 있다. 우리가 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가 제대로 살도록 돕고자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어 무력감을 경험하기에 우리는 화로 그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또 이러한 장면은 어떠한가.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화가 나있을 때, 실은 그도 화가 나있다. 그도 제대로 어떤 것이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자신이 그렇게 만들지 못하는 고로 무력감을 경험하며 화를 내고 있다.
부부나 친한 친구 사이라면 이러한 역동은 두드러진다. 그들은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며 서로를 돕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화가 나있는 것이다. 또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있는 것이다.
그는 나와 다른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정확하게 같은 마음이었다.
화는 아주 그 형상이 크고 확연한 감정이라, 이러한 사실을 포착하는 일을 자주 돕는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한다면, 이 사실만이 마음에 대해 알아야 할 전부다.
나는 다시 강조할 수 있다.
그는 나와 같은 마음이다.
여기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모든 변화와, 모든 반전과, 모든 화해와, 모든 회복과, 모든 만남이 시작된다.
이를테면 그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바빠서 그러지 못하고 자신이 나쁜 엄마가 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이 어떻게든 나쁜 엄마만은 되지 않으려고 다른 이를 나쁜 엄마로 만들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나쁜 엄마로 만들어진 이는 또 다른 이가 실은 나쁜 엄마라며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 화를 내곤 했다. 폭탄돌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나쁜 것만이 계속 연쇄되어가며, 관계는 점점 최악으로 치달아간다. 악연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쁜 엄마로 보며 심판하고 있던 그가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 이 모든 것은 완벽하게 전환된다.
그가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이 일을 자비(compassion)라고 한다. 표현 그대로 자비는 '같이 느끼는 일'이다.
그리고 이 자비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인간 동료(companion)가 될 수 있다. 컴패션은 컴패니언을 성립시키는 핵심이다.
나와 똑같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그를 위해 인간 동료로서 우리는 돕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것은 그의 마음의 실현을 위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내 마음의 실현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같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비로 맺어진 동료관계는 언제나 상호이득을 낳는다. 희생과 헌신이 아니다. 그가 얻는 것과 동일하게 나도 얻게 된다. 반복하지만, 우리는 같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자비는 지름길이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이룰 가장 빠른 길이다.
지름길이 아닌 모든 길은 상대들을 잠재적인 경쟁자로 보며 내가 특별한 희소재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길이다. 그러나 자비의 길은 동료애(companionship)를 통해 협력하여 다 함께 얻는 길이다.
이것이 곧 사람들 속에서 너를 보며 사는 길이다. 경전의 말씀처럼 사람들에게 한 일이 곧 너에게 한 일이다. 동시에 너에게 한 일이 곧 사람들에게 한 일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의 부류다. 결국 그 일이 나에게 한 일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나와 같은 마음의 그에게 한 일로 말미암아, 너의 웃음이 내 가슴에 환히 번질 때 나는 이것이 자비라는 것을 안다. 너의 웃음이 나로부터 지금 세상으로, 더 가득한 너에게로 번지고 있어서다.
내가 웃으니, 세상이 웃고, 너도 웃고 있다.
나쁜 것만이 연쇄되던 고리가, 이제 좋은 것의 순환으로 바뀌었다.
동그랗게 그려진 것은 너의 얼굴이다.
아아, 점을 찍지 않아도 분명하게 네가 웃고 있다.
이 자비의 웃음은 너에게로 가는 길을 최단거리로 비추고 있는 저 북극성이다.
나는 무력하지 않았고 끝내 도울 수 있었다.
너의 웃음이 영원할 현실에 협력하고 있었다.
그건 분명 내가 가장 이루고 싶던 그 소망, 이 세계에서 나와 인연된 그 모든 이의 얼굴에 피어난 미소를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그 소망의 지름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