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인간이다"
이 우주에는 인간밖에 없다.
인간이 보는 것은 다 인간일 뿐이다. 인간은 자기가 바라보는 것을 의인화시키며, 자기가 만드는 것을 다 자기를 닮게 만든다.
자판기도, 진공청소기도, 마이크도 다 인간을 닮아 있다. 그것들이 선뜻 인간처럼 안보이는 것은 인간의 특정한 기능을 부각시켜 특성화되어 있는 까닭이다. 이 경우는 아마도 '입'일 것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사물은 이처럼 기능에 따라 파편화된 신체와 같다. 어떻든 인간의 몸인 것이다.
자신의 몸의 형상을 따라 인간은 신도 발명했다. 어떠한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한 것은 그것이 인간이 만든 신이기 때문이다.
외계인이라고 다를까. 팔다리가 몇 개 더 달려있을 수는 있어도 그것 또한 인간의 모습일 것이다. 외관이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인간과 같은 고등한 정신기능은 갖고 있을 것이라고 그 유사성은 가정된다.
이와 같이 인간은 생물에서도 인간 자신을 보고 무생물에서도 인간 자신을 보며, 또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조차 인간 자신을 본다.
이러한 작용을 심리학 용어로 흔히 투사(projection)라고 말할 것이다. 투사는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면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 자신을 앞으로 쏘아낸다. 그럼으로써 거울에 맺힌 상처럼 인간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기를 원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인간 자신이 대체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하는 까닭이다.
인간이 이처럼 일으키는 투사작용을 바로 마음이라고 말한다.
마음은 인간의 거울이다.
이 거울로 보고 있기에 모든 것은 다 인간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거울 위에 색칠을 하고 글씨를 더하기도 한다. 투사작용은 매우 자주 소설쓰기가 된다. 인간이 인간 자신에 대해 쓰는 소설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고 싶어서 소설을 쓴다. MBTI 소설을 쓰고, 혈액형 소설을 쓰며, 모든 마음을 알아주는 주인공의 소설을 쓴다.
그냥 다 소설일 뿐이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이웃나라 왕자님 또는 공주님의 얼굴이 궁금해서 혼자 침대 위에서 상상해보는 백일몽이다.
실제 만나게 되면 소설들은 다 휴지통에 버려진다.
그러나 갸륵한 것은 인간은 분명 아직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자신의 얼굴을 무수한 소설로 써내면서까지도 이토록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그리움이야말로 이 우주를 창조해낸 동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은 이가 자기를 닮은 모습으로 이 모든 것을 창조해 그 자신의 얼굴을 보고자 했다. 우주의 역사란 아마도 이런 것일 것이다.
인간이 하는 무수한 활동들은 근본적으로 자전적인 소설을 쓰는 일과 같다. 자화상을 그리는 일이다.
인간 자신의 자화상이 달라지면 세계상도 달라진다.
인간이 더는 스스로를 저주하는 존재이기보다는 조금은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존재로 자신을 그릴 수 있었을 때, 세상은 천동설의 우주에서 지동설의 우주로 이동했다. 현실이 바뀐 것이다.
조금씩 더 인간이 스스로에 대한 멋진 자화상을 감상해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소설쓰기다.
아무리 정교하게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영원히 도달할 수는 없다. 사실에는. 그 사실과의 만남에는.
그것은 허구의 필연적인 운명이다.
자신이 소설을 쓰는 유일한 이유가 오직 자신을 알고 싶어서였다는 것을 망각한 경우에는 더욱 요원하다. 이러한 상황을 이야기에 빠져 삶을 잃었다고 표현한다.
자신이 이야기로 자신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경우에는 가장 어둡다. 그것은 자신의 손가락을 투사해 벽에 만든 그림자를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자신에 대한 그림을 그리면 그것이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알고자, 한번 짐작해보고자 상상의 그림을 그려본 것뿐이다. 그리고는 좋아서 한번 웃어본 것이다. 이것이 예술의 가치다. 문화란 이러한 유희의 성대함이다.
상상만으로 이런데, 실제로 만나면 압도적으로 좋다.
자신을 투사하여 소설을 쓰거나 자화상을 그리지 않고, 인간이 직접 그 자신의 얼굴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순간을 견성(見性)이라고 말한다.
눈을 떠서 스스로의 얼굴을 본 것이다.
정확히는 눈을 뜬 그것이 스스로의 얼굴임을 안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도 말하게 된다.
"이 우주에는 인간밖에 없다."
이것은 인간의 오만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유일하다고 말하는 이는 다만 인간이 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본 것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가장 소중한 것이다. 우주에 단 하나뿐인 보물이다.
또 이렇게도 말하게 된다.
"내가 인간이구나."
이것은 아주 장대한 여정의 시작이며, 출항을 알리는 거룩한 뱃고동이다.
마음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이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보물로 알아보며 인간은 스스로를 향한 그 거대한 사랑을 이제 시작해나간다.
작고 낡은 USB의 형상 하나에도 인간의 그 거대한 미소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