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개성과 환경의 심리학
어떻든 우리는 이제 환경의 심리학(ecopsychology; environmental psychology; terrapsychology)을 말해야 한다.
단어의 외적인 생김새도 언어유희의 차원에서 흥미롭다. 흡사 정신(mental)을 둘러싼(environ) 것을 묘사하는 형상이다. 이런 것이 바로 환경이 아니던가. 환경과 연결되지 않은 정신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개인의 정신, 곧 개성 또는 개인성이라고 하는 것을 단독으로 묘사하는 일에 심리학은 치중해왔다. 주변의 환경을 앞서는 개성을 획득함으로써 자기의 주변을 변화시키려는 일에 또한 몰두해왔다. 대중심리학은 특히 그럴 것이다.
개성을 얻는 일에 대해 대표적으로 오해되어 온 방식은 다음과 같다.
"내가 내 자신을 만든다."
심리학은 마치 이러한 캐릭터메이킹의 잡기술로 취급된 경향이 있다.
이 경우 개성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반드시 환경과 대립된다. 자기 주변을 둘러싼 관계, 세계, 한계 등의 환경적 조건들과는 무관하게, 또는 그것들을 뛰어넘어 나라는 것을 만들어가는 일이 개성을 얻는 일과 동일시되곤 했다.
실존주의 또한 이러한 오해에 매우 자주 노출되어 왔다. 마치 소년점프의 왕도만화 주인공이 자기를 제약하는 환경에 영향받지 않는 진정한 자신을 찾는 식의 서사가 마치 실존주의가 다루는 주제인 것처럼 착각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이러한 일과는 전적으로 무관하다.
실존주의는 세계와 대립하거나 세계로부터 준독립적인 개인성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존주의는 이렇게 말하는 쪽이다.
"세계가 바로 내 자신이다."
같은 의미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환경이 바로 내 자신이다."
실제로 이것은 환경의 심리학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이러한 입장에서 나라고 하는 개성은 환경을 무시한 채 나를 주장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개성은 환경과의 어울림을 통해 생겨난다.
얼마나 환경과 잘 조화되는가의 그 정도가 곧 개성의 정도다.
인적 환경으로 말해본다면, 개성은 결국 내가 개성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내 개성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혼자 게임을 하듯이 내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곧 나다.
나는 보다 상위의 입장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연민하거나 돌보는 자일 수 없으며, 보다 하위의 입장에서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선망하거나 돌봐지는 자일 수 없다.
나는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전적으로 똑같은 그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선택이 아니다. 우리가 태어날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이것은 운명이다.
우리는 각자의 이러한 운명적 조건 속에, 불가피한 환경 속에 던져진 것이다. 여기가 바로 우리 모두의 출발점이며, 이 사실을 흩트리고 있으면 시작부터 꼬이게 된다. 속도 배배 꼬인다.
시원하게 풀어낸다면, 나는 다만 나일 운명인 것이다.
무엇인가 대단한 것처럼 만들어가기는 뭘 만들어가며, 진정한 나이기는 뭘 진정한 나이겠는가. 차라리 차분하게 진정하자. 그리고 이해해보자.
지금 내 주위를 둘러싼 그 조건이 바로 나다. 이미 나다.
다른 나는 없다. 지금 이것뿐이다. 이것은 운명이다. 피할 수 없는 나라는 운명이다.
내게 주어진 이 환경적 조건들이 나라는 것을 통째로 받아들이면 인생사의 99%의 고민은 사라진다.
더는 나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
어떻게 하면 나를 바꿔 환경을 바꿀지에 대한, 또 어떻게 하면 환경을 바꿔 나를 바꿀지에 대한, 운명을 무시하고자 만들어낸 그 무수한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신기루 같은 생각들은 날아간다.
생각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남는 것은 너다.
환경이고, 세계이며, 내 주변이다.
이 몸을 둘러싼 그 실제적인 환경을 이제 발견해서 그것과 잘 어울리려는 마음을 내는 이의 모습이 있다.
그러한 조화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그 모습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가장 조화롭기에 가장 개성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너를 만나 마침내 나는 내가 된다.
이것은 네가 나를 만들어준 신비한 조화였다.
그래서 너는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칠흑같던 이 우주에서 홀로 깜깜했던 이에게 나라는 것을 선물해주기 위해.
너는 그렇게 나에게 불빛을 건네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같이 환해서 그 광경이 보기에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