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뜰을 아는 이도 있다"
돈이 없어도 자신은 그 마음을 알 수 있으니 괜찮아, 라고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애인과 헤어져도 자신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으니 괜찮아, 라고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하던 일이 망해도 자신은 그 마음을 만날 수 있으니 괜찮아, 라고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자신은 그 마음을 품을 수 있으니 다 괜찮아, 라고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괜찮아 보인다.
마음에 대해 이런저런 복잡한 것들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담백하다. 어떤 요란한 가루도 날리지 않는 순백의 인절미 같다.
그들은 아마도 공물일텐데, 나의 뜰을 찬미하여 바쳐진 공물이다.
그들은 어쩌면 나의 뜰을 알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아니 분명할 것이다.
세계는 나의 뜰이다.
버려진 황무지나, 우수한 개체를 얻어내려는 진화의 실험장이나, 설계도대로 건축되어갈 우주의 공사현장이 아니다.
나는 나의 뜰을 알아주거나, 느껴주거나, 만나주거나, 품어주고 있지 않다. 놀이터 밖에서 상냥하게 지켜보고 있는 엄마가 아니다.
나는 다만 뜰이며, 뜰 위의 것들도 뜰 위라서 다만 자유롭다.
뜰 위의 것들에게는 무슨 일이라도 반드시 뜰 위에서 펼쳐지는 일이다.
그러니 안심하라, 네가 어떤 것을 경험하든 너는 반드시 나의 뜰 위에 있으리라, 순백의 인절미들은 이런 말을 듣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강둑에 핀 코스모스도, 풀벌레 소리도, 11월의 저녁하늘도 전부 다 그들에게 그렇게 들려주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무엇도 알지 못해도 나의 뜰을 아는 이는 복되다.
걱정없이 한평생을 산다.
떠나간 것도 생겨날 것도 이 뜰에서 단 한순간도 잃어진 적이 없다. 어떤 때는 뜰 위의 것이 되어, 또 어떤 때는 뜰로 돌아가, 지금도 여기에 있다. 다들 뜰에 있다.
동무들과 어울려 같이 놀고자 나도 뜰로 나섰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있는 연유다.
우리가 또 만나게 된 것을 찬미하며 함께 나누어먹는 뜰의 공물로, 그 깊은 뜻으로 나는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