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나쁜 그대에게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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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입장한 그대의 심정이 '움찔' 또는 '울컥'이라면 이 글의 제목은 성공적이다. 그리고 우리가 대단히 성공적인 저주에 걸려 있다는 사실은 증명된다.


그대여, 그대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걸려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저주는 바로 앎의 저주다. 잘 아는 똑똑한 자여야만 한다는 저주다. 머리가 나빠서 잘 모르면 안된다는 저주다.


그대가 한번 떠올려보라. 그대가 하루 동안 가장 많이 신경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이켜보라.


오직 단 하나, 머리가 나쁜 자로 보이지 않기 위해 그대는 모든 최선을 다한다.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척, 혹은 몰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체적으로 이해한 척, 혹은 남들을 따라 웃으며 중간이라도 흐름을 파악한 척 하는 데에 그대는 모든 에너지를 다 쏟는다.


머리가 나빠서 알지 못하면, 그대는 추방당할 것 같기 때문이다. 열등한 존재가 되어 버려질 것 같기 때문이다. 호구처럼 남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비참한 인생의 끝을 맞을 것 같기 때문이다.


머리가 나쁘면, 즉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제대로 살지 못한다. 그렇게 앎은 삶보다 우선한다. 이것은 역사깊은 저주다.


특히나 그대가 이 저주 속에서, 주요하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비밀이다. 비밀은 은폐된 앎의 내용, 즉 숨겨진 정보다. 입시 때나, 투자를 할 때나, 구매행위를 할 때나, 이 숨겨진 정보는 중요한 것이다. 숨겨진 정보를 아는만큼, 그대는 인생에서 성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대 자신은 성공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비밀을 아는 일은 그대의 유능감과 연결된다. 그래서 그대는 비밀에 탐닉한다.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이야기되는 비밀에 대한 지식을 그대는 끝없이 수집하려고 한다. 그대가 지적인 열등감에 쌓여 있을수록, 이 비밀에 대한 집착은 강해진다. 그래야만 그대는 자신이 못나서 추방되지 않고, 떳떳하게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비밀이 있다.'라는 명제가 '그대가 있다.'라는 명제의 선결조건이 되는 셈이다.


"비밀이 존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것이 그대가 채택하고 있는 존재론이다. 이처럼 비밀은 그대가 무엇을 하든 간에, 언제나 그대보다 앞선다. 그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비밀을 추월할 수는 없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대에 대해 늘 선행하는 숨겨진 비밀이 있는 한, 아무리 많은 지식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대는 언제나 머리가 나쁜 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알아도 알아도 늘 부족하고 열등한 자신의 모습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오래된 저주인 동시에, 광범위한 저주다. 어디를 가도, 그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저주에서 쉬이 자유로워지기가 어렵다.


그러나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희망은 있다, 그대여.


우선적으로, 저주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문법의 일방적인 구조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저주의 문법은 인과론이다. 그리고 인과론의 일방통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원인과 결과를 뒤집으면 된다. 자, 뒤집어보자.


"나는 존재한다. 고로 비밀이 존재한다."


그러나 어떠한 그대가 존재하는가?


머리가 나쁜 그대다. 이 승인이 중요하다.


저주에서 자유로워지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저주의 내용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보'라는 저주가 걸린 이가 '응, 바보야.'라고 승인할 때, 그 저주는 그대를 고통스럽게 하려는 그 의도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즉, 저주는 무효화된다. 이것은 신들로부터의 영원한 저주에 걸린 시지프가 어떻게 자유로워지는를 묘사하는 카뮈의 이야기다.


그렇게 머리가 나쁜 그대가 있다. 부정될 수 없이 바로 그대가 있다.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그대가 있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이윽고 그대가 있다는 그 사실이 그대로 비밀이 된다.


그대가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이 우주의 가장 심오한 비밀이라는 사실이 개방된다.


그대여, 누구도 그대가 왜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대의 존재 앞에서, 모든 이는 자동적으로 다 머리가 나쁜 이가 된다. 그러나 그대는 존재한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신비로서 존재한다.


물어봐도 된다, 그대여.


그대가 '움찔' 또는 '울컥'을 느끼는 이에게, 머리를 긁적이며 바보처럼 이렇게 한번 물어보라.


"혹시 제가 왜 존재하는지 알고 계신가요?"


그대여, 이것은 유쾌한 일이다. 그대가 얼마나 신비로운 존재인지를 이해해가는 일은 언제나 가장 유쾌한 일이다.


그대라는 존재를 이처럼 이 우주에서 가장 심오한 비밀, 즉 신비로 이해하는 일, 이것이 바로 그대 자신에 대한 신뢰다. 또한 그대 자신의 있음에 대한 이 신뢰, 이것이 바로 자신감이다.


그대여, 머리가 나쁜 그대에게 늘 친절한 아다치 미츠루가 들려주는 그대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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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삶이라는 것은 세상에 던져진 그대 자신을 다시금 세상에 던지는 것이다. 던져진 것을 던지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자신을 공으로 삼아 하는 공놀이와 같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을 던지지 않고서는, 그대가 대체 누구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 세상 어디에도 그대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은 없다. 아무도 모른다. 때문에 그대가 자신을 던지지 않고서는, 그대가 도무지 자신을 얻을 방법이 없다. 떳떳한 자신감을 얻을 방법이 없다.


그 길은 분명, 머리가 나쁘게 가는 길이다. 떳떳함은 똑똑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띨띨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생에 대해 좀 사는 법을 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어떻게든 얻어 맞지만 않기 위해 몸을 사리며 휘황찬란한 변화구를 구사할 때, 인생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들은 다만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직구를 미트에 꽂는다.


그리고는 알게 된다.


인생이 자신을 향해 짓는 그 묵직한 미소 속에서, 자신이 인생 앞에 정말로 떳떳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대가 왜 존재하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머리가 나쁜 그대는 언제나 이처럼 인생과 정면승부를 해왔다. 두려움 속에서도 떳떳하게 던져 왔다. 그러한 그대의 모습을 경외롭다고 우리는 말한다.


경외는, 누군가를 또 다른 의미로 '움찔' 또는 '울컥'하게 하는 그 이름이다.


'나도 저렇게 아름다운 직구를 던져보고 싶다.'


그렇게 머리가 나쁜 그대는 누군가의 가슴을 울리며 두근거리게 하는 그 이름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성공적이다. 우리가 대단히 신비로운 존재라는 사실은 증명된다.


그대여, 더는 "(제가 알아야 할) 비밀이 있어요."라고 말하지 말라. 이제는 이렇게 말하라.


"(제가)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그대는 존재의 전 질량을 압도적으로 꽂아넣는 존재의 비밀병기다. 가장 최후에 신뢰할 수 있는 우리의 구원투수다.


그러한 그대가 있다. 그것은 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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