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연애의 시대에 바침
독재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즉, 독재라는 현상을 판정하는 기준은 선악이 아니다. 때문에 선한 편은 독재하지 않고, 악한 편만 독재한다는 생각은 안데르센 동화만큼이나 공상적이다. 오히려 선은 악만큼이나 독재의 현실에 노출되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독재라는 것이 실은 연애학의 논리에 서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독재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이든 악이든 간에 독재의 현실을 펼쳐냄으로써, 심지어는 가장 선한 의도로 무장한 까닭에 그것이 독재인지도 모른 채, 더 많은 고통을 야기하게 되는 그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재는 연애의 문제라는 하나의 잠정적인 선언에서 시작해볼 때, 이 명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바로 우상화(idolism)다.
연애는 크든 적든 간에 반드시 이 우상화의 문제를 내포한다. 이 우상화에 대한 틸리히의 정의는 탁월한데, 이는 다음과 같다.
'하나의 유한자가 또 하나의 유한자에게 무한자를 기대하는 행위'
이를 다시 한 번 풀어 말하자면 이러할 것이다.
'나보다 더 잘나지도, 더 못나지도 않은, 나와 똑같은 인간에게 신적인 것을 기대하는 행위'
이 우상화는 상대를 우상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특히나 자기우상화의 모습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것은 상대에 대해, 자신을 신적인 역량을 가진 입장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상대에게 신적인 호혜를 제공할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독재의 핵심이다. 상대라는 대상 또는 자기라는 대상을 통해 신적인 것을 꿈꾸는 우상화가 곧 독재를 낳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렇다면, 끝내 좌절되는 많은 연애의 경우에서, 이 우상화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작동하는 기제라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제가 언제라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임자 옆에는 늘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대로 해."
이 영화에서, 주요한 등장인물들의 문답 속에 거듭 반복되는 이 대사들은, 바로 연애하는 이들이 상대에게 핵심적으로 발화하곤 하는 대사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마치, 무한자인 신이 유한자인 인간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형식과도 같다. 때문에 이 모든 대사는 단 하나의 지점을 가리킨다. 그것은 바로 '영원성'이다. 연애하는 이들은 바로 이 영원성을 서로에게 약속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원성의 맹세가 깨어지는 것 같을 때, 연인들은 자신을 자책하고, 상대를 원망한다.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책하고, 상대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원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처럼 신적인 것에 대한 지향이었던 까닭에, 연애의 종말은 마치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것만 같은 가장 파국적인 정조를 불러 일으킨다. 배신 중의 배신이며, 분노 중의 분노다.
"나에게 신이 되어주기로 했으면서, 어떻게 네가 감히 인간일 수가 있어!"
이전날 정답게 술잔을 나누던 손에 차가운 총을 들게 하는 이 웃픈 절규는, 사실 연인들이 서로간에 얼마나 뜨거웠는가에 대한 그 반증이다. 이들이 꿈꾸던 것은 분명 가장 뜨거운 혁명이었다. 모든 것이 반드시 끝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이 유한자들의 세상에서 영원성을 꿈꾸는 일, 그것은 진정 혁명 중의 혁명이다.
그래서 혁명은 낭만적인 것이며, 연애는 낭만적인 것이다. 낭만적이라는 것은 언제나 영원한 낙원에 대한 향수이자 동경이다. 곧, 낭만적인 것은 언제나 신적인 것을 향한 방향성을 갖는다. 때문에, 낭만적인 것은 언제나 몰락하는 운명 위에 놓인다.
낭만은 몰락의 정조를 함축한다. 낙원을 꿈꾸었으나, 그 낙원에 결코 도달하지 못한 회한까지 갖추어야 완성되는 것이 낭만이다. 모든 독재자는 낭만주의자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몰락하기 위해 왕국을 세운다. 때문에, 혁명을 시작한 이가 혁명의 배신자가 되는 일은 필연적이다.
왜 이 몰락은 필연인가?
자기 자신도 영원할 수 없는데, 다른 이에게 영원을 약속하는 일은, 자신이 영원의 담지자인 척 행세하는 일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라면,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는 것이 아니라, 높이 나는 새가 깊이 추락하는 것이다. 이카루스의 날개다.
그래서 이 몰락은 모든 우상의 예고된 운명이다.
인간이 신적인 것처럼 행세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무엇보다도 빠르게 그 인간의 유한한 한계를 노출하게 한다. 그러나 한계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일, 바로 이것이 고통을 양산한다. 이미 끝난 현실 속에서, 옥좌를 움켜쥐고, 아직도 좋았던 그 시절의 낭만은 끝나지 않았다고, 아직도 가슴뛰는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고, 바로 영원한 우리의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고집부리는 모습과도 같다.
자신이 신적인 존재가 되어 상대를 영원히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었던 안데르센 동화의 애독자일수록, 이 고집은 격렬하다. 이처럼 고집스러운 '선한 의도'가 자신과 상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이 선한 의도 속에서, 자신이 무한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는 독재의 상태에 대한 자각은 망각된다.
그래서 이러한 이는 자신이 독재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가장 모욕적으로 여긴다. 자신만은 나쁜 독재자와는 달리, 진정으로 상대를 위한 100%의 선한 의도로 행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는 사실이다. 그는 100%의 선한 의도를 갖고 있다. 다만 전술한 것처럼, 독재는 선악과 아무 관계가 없을 뿐이다. 독재는 오직 낭만적인 영원성을 꿈꾸며 자신이 상대를 구원할 수 있는 신적인 존재처럼 행세하려고 하는 바로 그 사실과만 관계될 뿐이다.
자신이 신적인 열정과 능력으로 상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으며, 또 어느 정도는 그런 것처럼 보였던 한 시절을 향수하며, 이미 이전에 영원하다고 믿었던 많은 것이 시간 속에 풍화되어 그 영원성이 환상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믿음을 고집하며, 상대에게도 자신과 똑같이 '그 좋았던 옛시절'에 남아달라고 강요하는 모습, 이것은 연애에 서툰 이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모든 독재자는 연애에 서툰 이들이며, 모든 독재는 서툰 연애의 전형이다.
뜨거운 혁명처럼 우상화의 기제로 시작된 연애가 필연에 따라 실패했다는 사실을, 그러한 연애 속에는 그것이 아무리 뜨거웠다 할지라도 결코 영원성은 없었다는 사실을, 즉 신적인 것을 꿈꾸던 연애관계는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때문에 상대와의 이별은 불가피했다는 사실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바로 이 서툰 연애의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서툰 연애의 주인공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을 배워간다.
인간이 신이 아니고 다만 인간이라는 사실은, 그 어떤 배신도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바로 이처럼, 인간이 그저 한계 속에서 발버둥치는 갸륵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시선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신적인 것이다. 즉,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신적인 주체가 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상냥한 시선이 신적인 것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이것은 혁명적 연애가 아니라, 현명한 사랑이다. 불타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것이다.
우리는 실상 누군가가 우리를 구원해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벅찬 한계 속에서도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를 이해받기를 원할 뿐이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의 한계 속에서 발버둥쳐온, 그토록 갸륵하게 열심히 살아온 유한자들의 역사다. 때문에 역사가 현재의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은, 그 역사가 성공적인 연애의 역사였던 것처럼 미화하는 몸짓이 아니고, 그러한 연애를 다시 한 번 불타는 혁명으로 현재에 재현하기를 꿈꾸는 몸짓이 아니며, 또 다른 '선한 의도'의 신적인 연애를 고집하는 몸짓이 아니다. 그 여느 몸짓이 아니다. 다만 시선이다. 역사는 다만 우리의 시선을 요청한다.
그렇게 우리가 도무지 얼마나 서툴렀는지를 바라보고 이해함으로써, 차근차근 사랑을 배워가기를 요청할 뿐이다.
인간은 그 누구도 다른 누구보다 잘나거나 못나지 않고 평등한 존재며, 인간은 다른 신적인 누군가에게 구원될 필요 없이 스스로를 이미 정성껏 살려내고 있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이 있다. 우리가 서툰 연애의 끝에 결국 배우게 되는 바로 그 사실이다. 유한한 자들의 역사가 전하는 이 사실은 우리를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인간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함께 사랑을 배워갈 뿐이다.
신해철 - 70년대에 바침
하늘이 그리도 어두웠었기에
더 절실했던 낭만
지금 와선 촌스럽다 해도
그땐 모든 게 그랬지
그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 70년대를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가위를 든 경찰들
지금 와선 이상하다 해도
그땐 모든 게 그랬지
그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 70년대를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
한 발의 총성으로
그가 사라져간 그날 이후로
70년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지
수많은 사연과 할 말을 남긴 채
남겨진 사람들은 수많은 가슴마다에
하나씩 꿈을 꾸었지 숨겨왔던 오랜 꿈을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