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백수의 심리학 #1

"백수공주의 모험담"

by 깨닫는마음씨


white.jpg?type=w1600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왕비님이 태어날 때부터 연예인처럼 그 외모의 분자구조가 잘 조형되었고, 관리도 잘해 피부가 빛이 나며, 꾸준히 PT도 받아 몸매 또한 탁월한데다가, 왕비님은 투자도 성공한 파이어족이라 돈도 많고 여가도 잘 누리시며, 해외여행도 안 가본 데가 없고, 드립커피와 와인 및 위스키 전문가에, 다양한 취미활동을 세련되게 즐기는 인싸에, 문화의 각 분야에서 아주 특별한 고급지식들과 실천기술들을 보유한 힙스터이시지만,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은 백수공주입니다."


나는 왜 고 이외수 님의 글, 고 신해철 님의 노래를 그렇게 좋아했던가. 무수한 종교인과 철학자, 영성가들, 또 인디포크 뮤지션들의 목소리를 왜 그리도 즐겨 듣고 있었던가.


그들은 모두 백수에 대한 아주 따듯한 애정을 드러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백수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그들의 공통적인 이름이 바로 백수다.


그러니 백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백수가 바로 사회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백수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으로 알아보며 노래하던 이들은 바로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의 문화사상가 콜린 윌슨은 문명사회가 하나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반드시 출현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처음에는 문명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반문명과 반사회의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다. 그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의 재능은 문명의 울타리를 보수하는 일에 특화되어 있지 않아서다.


오히려 그들은 문명의 울타리 밖을 향하고자 하는 '존재의 모험가'의 재능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인간정신의 깊이와 존재의 무한성을 그들은 새롭게 탐색한다. 그럼으로써 문명의 한계를 극복해낼 어떠한 단서를 반드시 문명 안으로 획득해온다. 문명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역으로 문명을 위해 가장 활약하게 되는 셈이다.


이들은 닫힌 현실 속에서 모든 이에게 화석화된 동일성만이 반복되기만 할 때, 그렇게 문명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생명군이 그 생기를 잃고 종의 종말을 맞이하려 할 때, 작금의 상황을 시원하게 돌파해줄 새로운 현실을 발견하고자 하는 존재의 콜럼버스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콜린 윌슨은 이들을 가리켜 '아웃사이더'라고 명명하곤 했다.


백수의 다른 이름이라고 우리는 이해하면 된다.


우리가 흔히 사대성인이라고 부르는 예수, 붓다, 공자, 소크라테스를 떠올려보자.


이들의 공통점은 이들이 다 백수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깨닫고 백수가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백수로 출발했다. 백수는 오히려 깨달음의 선결조건이다.


콜린 윌슨은 『종교와 반항인』에서 이 부분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백수가 어떻게 미래를 열어갈 존재의 비전을 가진 신비주의자로 거듭나는지의 과정을 다양한 문헌연구를 통해 잘 묘사해낸다.


백수가 깨달음의 선결조건이라는 말은 또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원래 인간의 본성이 백수라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모든 인류가 실은 엄청나게 공감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의 소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우리는 통일이 아니라 백수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해야 한다. 이것이 정직성이다.


우리는 왜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가? 더는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현실을 얻고 싶어서다. 이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을 얻고 싶어서다. 문명 안의 모든 소재가 이러하다.


즉, 우리는 그 끝에서 백수가 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인류의 유일한 소망은 백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참된 소망이다.


원래 백수로 창조되었기에, 그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우리는 직감하기에, 그러한 우리의 본래모습을 우리는 간절하게 되찾고 싶어하는 것이다.


깨달으면 자신이 원래 백수라는 사실을 안다.


백수는 무엇인가?


하얀 손, 곧 텅빈 손이다.


그 손에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다.


그래서 모든 것을 만질 수 있고, 만들 수 있으며, 끌어안을 수 있다.


가장 자유롭게 열린 인간의 모습, 그것이 백수인 것이다. 무아적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인생은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돌아가게 될 그 과정이다. 누구나 이처럼 백수로 와서 백수로 살다간다.


백수로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란, 더욱 크게 열린 빈 손으로 얼마나 더 많이 품에 안고 사랑했는가, 오직 그것뿐일 것이다.


이것이 진실로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다.


사랑만이 언제나 인간의 유일한 소망이다.


아무 조건도 갖지 못한 백수공주가 제일 아름다운 것은, 그녀가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이 우주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다.


사랑할 채비를 막 마친 백수는 이 우주에서 제일 아름다운 존재로 피어날 분명한 가능성들이다.


이처럼 백수라는 것이 너무나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눈치채고 있지만, 그것을 이룰 방법론의 차원에서 헤맴을 경험한다.


자신의 노력을 통해 백수가 되는 것이라고 자주 오해하는 것이다.


자신이 더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 권위를 갖추고, 더 많은 돈을 가지며, 사람들로부터 더 큰 인정을 얻게 되면, 그때서야 우리는 마치 백수인가를 받듯이 이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백수로 살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것처럼 생각하곤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이것만 하고 쉬자."라는 말로 대표된다. 그러나 그 '이것'이 끝날 날은 평생오지 않는다. 새로운 '이것들'은 끊임없이 출현할 것이며, 막상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가 죽으면 비로소 쉴 수 있게 되며, 이처럼 우리는 죽어서야 겨우 백수가 된다. 살아 생전에는 백수를 누리지도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백수의 삶을 누리기 어려운 데는 분명 사회의 압박이 있다.


문명사회는 그 자신이 한계에 부딪혀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안다.


그럴 때 문명이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것은 역사다. 잘 나갔던 과거로부터 답을 얻으려는 것이다.


정치현실은 대표적으로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정치의 각 입장들은 어떤 시절을 살기 좋았던 시절로 규정하며 그 시절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자기들의 전성기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특정한 이익집단이 자신들을 제일 아름다운 것처럼 경험했던 그 과거의 낭만적 가치를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낭만적 가치는 사람들에게 선전됨으로써, 모두를 과거퇴행적인 현실로 이끌려고 한다.


특정한 이익집단의 아름다움이 추앙되어 모두의 아름다움이 되어야 한다고 계몽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동일성의 폭력'이다. 더 쉽게 전체주의라고 불린다.


아름다움을 소재로 한 전체주의는 특히나 기준이 없기 때문에 가장 억압적이다. 끝없는 내로남불 속에서 다만 "너는 내가 과거의 스토리로 만든 나와 똑같아져야만 해."라는 고집스러운 압박만을 반복적으로 집행한다.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누구도 백수로 살게 두지 않는다. 빈 손에 반드시 자기들의 과거를 들려주려고 한다. 그 과거를 신주단지처럼 양손으로 받들어 모시게 함으로써 그 가치를 깊이 되새겨 언젠가는 너희도 정신차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시절을 자신들의 모습처럼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며 부드럽게 그러나 강력히 권고하곤 한다.


더 쉽게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백수로 그렇게 멍하게 있느니, 어디 외국 건설현장에 가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돈이라도 벌어오든가, 아니면 그 손에 화염병이라도 들라는 것이다.


돈을 벌 게 아니면, 차라리 정의로운 인격이라도 보여주라는 것이다.


이것을 '실리'와 '이념'의 문제라고 다시 표현해보자.


실리와 이념 사이에서 늘 모순적으로 갈등하다가, 결국 그 둘을 통합적으로 다 가지려고 획책한 세력이 있다.


그들을 바로 선비라고 부른다.


조선의 유산은 부채다. 그것도 아주 큰 부채다.


실리와 이념을 다 가질 수단은 입신앙명이다. 과거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과거시험지는 유튜브와 SNS, 개인방송들에서 대중들이 채점한다.


백수는 아예 평가대상에 오르지도 못한다. 그들은 사회의 낙오자들이다. 그렇게 낙오자가 되어 추방되기 싫은 이들은 대중의 행렬에 합류해서 이제 심사위원이 된다.


어디에도 백수가 설 자리는 없다.


백수에게는 실리냐 이념이냐는 선택지가 강제되다가, 또 다시 실리와 이념을 다 잡을 통합적 선택지가 강요되며, 마침내는 남의 인생이나 관람하면서 별점이나 매길 최후의 선택지만 개밥처럼 던져진다.


그래서 거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왜 다만 내 자신일 수는 없단 말인가?


어떻게든 내가 내 자신일 수 없이 이미 규정된 어떠한 선택지이기만 하도록, 한계에 이른 사회는 과거의 영광된 시절의 문법을 따르라며 끝없이 백수에 대한 폭력을 시도한다.


한계에 부딪힌 문명사회가 새로운 활로를 열어 미래로 연결될 수 있는 그 가능성이 되어줄 이들을 오히려 박해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붙들고 앉아 자신의 미래를 부정하고 있는 것에게 미래란 없다. 당연한 말이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이처럼 사회가 맨날 못살게 굴다보니, 백수들 자신이 그 저주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자기들의 미래를 스스로 부정해버린 것이다.


[백수공주는 중독되었습니다]


독이 든 사과를 받아먹은 백수공주의 상황이다.


그러나 이것은 백수공주의 운명이 아니다.


백수공주는 사랑받으라고 태어난 운명이다.


백수공주를 온전히 사랑하는 일곱거인들이 어느 시대에라도 반드시 존재했다.


백수를 향한 아주 따듯한 애정을 갖고 있던 이들이 한 일은 결국 디톡스다. 유독한 저주에 오염된 백수의 해독을 돕는 그 정성스러운 일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저주로부터 풀려나, 백수에 대한 사실을 또 자신이 바로 그 백수임을 자각한 이는 이제 이러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백수로 산다는 것은 백수를 말하고 노래하는 것.


백수를 사랑한 이들은 그들 자신이 누구보다 백수였다.


특별하고 대단한 그 무엇이 되지 않고 아무 것도 아닌 백수여도, 그러한 자신이 존재 자체만으로 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던 이들이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인간입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분명한 사실이 여기에 알려지고 있었다.


백수는 인간 본래의 모습, 이러한 백수를 귀하게 여기지 않을 때 생겨나는 것이 인간소외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잃은 상태다. 백수가 아니라 특별하고 대단한 그 무엇인 것만 같았던 과거를 양손에 붙잡고 집착할 때, 아름다움은 가장 빠르게 상실된다.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사랑할 수 있어서, 바로 그 두 손이 비어있어서인 까닭이다.


나라는 것은 이러하다.


내가 내 자신이 된다는 것은 내가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은 인간이다. 인간을 회복하는 일이 언제나 닫힌 현실에 대한 답이 된다.


백수는 가장 인간을 드러내는 존재, 오롯이 인간이 되고자 하는 꿈과 희망의 존재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모험가다.


그래서 백수공주는 자신을 향해 모험해올 특별하고 대단한 왕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이제 자신이 빈 손으로 모험을 떠난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향해, 그렇게 그 무엇도 아니고 오직 그 자신으로서만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모든 것을 향해.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이 모험담을 노래해보고자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느 심리상담사의 우울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