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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Sep 08. 2024

놀아야 산다 #1

"먹는 놈, 자는 놈, 싸는 놈, 그리고 노는 인간"




  지구를 지배한 놈들이 먹고, 자고, 싸고 있었을 때, 그래, 난 놀지 않았다.


  방심하지 않았고, 한시도 쉬지 않았다. 경계를 게을리 한 적이 없다. 적어도 나만은 최후까지 인간같이 살고 인간같이 죽겠다는 그 고결한 경계를.


  그래서였을까───


  내 인생이 슬퍼져버린 것은.



  ..



  놈들, 지구를 지배해버린 인간놈들.


  내가 아무리 부단하게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며 인간같이 살아보려 해도 나는 결코 인간이 될 수 없었다.


  대체 놈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일조차 놈들은 너무나 쉽게 해버린다. 이 우주는 근본적으로 불공정한 것이거나, 아니면 나에게만 특별히 불친절한 것이 틀림없다. 매일같이 놀고 있는 인간놈들이 왜 내가 평생을 들여 이제야 조금 그 윤곽을 그려볼 만하게 된 것을 그리도 빨리 가장 완벽한 형태로 성취할 수 있단 말인가?



  ..



  놈들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비밀은 아니지만, 비밀을 원한다면 그 비밀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진짜 비밀이라고 말했다.


  마음의 비밀이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마음이라는 비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숨겨져 있지 않다며───


  관심만 가진다면 그것은 바로 이 순간 전부 다 나의 것이라고 인간놈들은 말했다.


  그러면서 또 인간놈들은 말했던 것이다.


  나와 같이 놀았으면 좋겠다고.



  ..



  이것은 에세이인가? 아니면 어떤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글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놀자고 쓰는 글일 뿐입니다.


  인간이 되어가는 현상입니다.



  ..



  마음은 먹고, 자고, 싸는 것.


  마음을 가진 모든 것은 다 이렇게 산다. 삶을 이루는 기초마음활동이다.


  그런데 호기심이 하도 많아 버튼을 있는대로 눌러보던 한 생명체가 있었다. 그렇게 놀이를 시작하던 아주 묘한 생명체가 있었다.


  인간의 출현이다.


  인간이라는 이 신비한 존재방식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되었다. 아니 인간이 원래 있던 그러한 버튼을 찾아낸 것이다. 딱히 숨겨져 있던 것은 아니었다. 관심만 가지면 바로 찾아낼 수 있는 그 버튼을 누름으로써 이제 인간의 현실은 완전히 변화했다.


  단지 먹고, 단지 자고, 단지 싸던 현실에서부터, 먹는 것으로도 놀고, 자는 것으로도 놀고, 싸는 것으로도 놀 수 있는 현실로 변화된 것이다.


  마음은 이제 인간 삶의 다양성과 풍요성을 책임지는 고급재가 되었다.


  삶은 더는 인간에게 두려움의 소재도, 또 지루함의 소재도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


  인간이 마음껏 놀아도 된다고 허락된 시간.


  같이 놀면 더 좋다고 제안된 시간.


  언제나 우리에게 있어 더 좋은 것이 미래를 연다.


  모든 것을 다 놀이로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마음이라는 것.


  마음이 미래를 연다.


  마음대로 노는 일이 미래를 연다.


  우리의 삶이 다 놀이라면, 지금 그 자리는 지상낙원, 약속된 천년향, 너와 나의 동산.


  미래는 벌써 열렸던 것이다.



  ..



  그것이 바로 놈들의 비밀이었다.


  놈들이 결코 인간같지 않고, 인간 그 자체였던 이유.


  먹는 놈들, 자는 놈들, 싸는 놈들, 그러면서 저 태양처럼 환하게 웃고 있던 그들은 다 노는 인간이었다. 인간이 인간인 그 이유, 인간 그 자체였다.


  나 같은 놈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충분히 믿을 수 있었다.


  나 홀로 지구에서 슬퍼져버리는 일은 이제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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