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물리치는 것은 무엇인가"
드래곤 슬레이어, 모험가라면 그 이름을 동경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한 마리라도 용을 잡아본 이라면, 그의 모험가등급과는 별개로 그는 남다른 존재로 대우받는다. 용은 단지 실력만으로 물리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운도 아니다. 운에게 맡겼다가 얼마나 많은 모험가들이 용의 아가리 안에서 서러운 최후를 맞이했는가.
용을 물리치는 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것을 얻거나 성취한 이만이 용의 심장에 칼을 꽂는 일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용을 잡으면 그에 따른 특별한 성장의 보상이 뒤따른다고들 말하곤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용을 잡기 위해 이룬 어떤 특별한 성장이 자연스레 용을 잡게 된 그 결과로 드러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그러한 성장을 도모할 특별한 수련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런 것은 심지어 가능한 것인가?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정말로 가능하다는 것을 단지 안다.
친애하는 나의 벗들이여, 나에게 용을 잡아본 경험이 있느냐고 묻는 일은 부디 하지 말아다오. 내가 아니라고 말하면 이 글을 벽난로에 던져버리든가, 또는 내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때서야 내 말을 들을 생각인가?
당신들이 내 말에 의존하고, 내 말을 붙잡으려 하며, 그렇게 내 말에 휘둘린다면, 용의 면전에 나설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것이 좋다. 용에게 죽을 때까지 휘둘리며 희롱당할 것이다.
용이란 것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말의 달인들이다. 그들은 그 말의 재능을 교활하고, 지배적이며,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자신들의 본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쓴다. 모험가들은 용의 발톱에 찢겨 죽기 이전에 먼저 그의 말에 패배해서 죽고 만다. 그들이 얼마나 인간을 정신적으로 파멸시키는 그 일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지. 각종 금은보화와 명예의 훈장으로 용들이 모험가들을 유혹하는 이유는 그들의 이러한 취미생활을 위해서가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여기에서 분명히 적어두겠다.
용의 입에서 나오는 가장 무서운 것은 그들의 브레스가 아니라 그들의 말이다.
그 말은 우리를 현혹시키며, 위아래와 앞뒤를 뒤집어놓고, 우리로 하여금 제정신을 차리기 어렵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제대로 된 판단력을 잃게 되며, 거의 반드시 우리 자신이 모험을 떠나게 된 그 시작부터 근본적으로 잘못된 어떤 행위였던 것처럼 여기게 되고야 만다. 우리 자신의 존재 자체가 완벽하게 부정당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아주 먼 옛날에는 용이 신들의 종복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일까. 용이 그 말로써 인간을 몰락시키는 일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을 밑바닥으로 떨어뜨리는 만큼, 용들은 원래의 고귀하고 순결한 지위를 자신들이 다시 찾게 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질투와 시기, 이것은 용의 중요한 특성을 말해준다. 용들은 분명 인간을 질투하며 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피조물들 사이에서 지금의 지위를 갖게 된 것은 그의 언어능력 때문이다. 그러니 용들은 바로 그 언어능력을 통해 인간을 거꾸로 패배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언어능력이 인간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신들에게 사랑받는 인간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그 의도일까.
용들이 저 하늘에서 추락하게 된 이유가, 먼저 창조된 자신보다 나중에 창조된 인간을 더 사랑한 신들에게 반역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어느 신관에게서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또 다른 신관은 원래 용은 인간을 수호하는 역할로서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어떻든 간에 분명한 것은, 용과 인간 사이에는 질긴 인연이 있다는 것이다. 용도 인간에게 끌리고, 인간도 용에게 끌린다. 일종의 애증관계다.
그렇다면 인간이 용을 물리치려는 것은 어쩌면 이 기나긴 애증관계의 사슬을 끊고 자유로워지려는 그 소망이 아닐까?
그것은 결국 인간이 말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하는 그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연애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좀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연애가 파탄의 애증관계로 이르게 되는 것은 결국 말 때문이라는 사실을 배울 만큼은 나도 연애사에서의 여러 고초를 겪었다.
말에 휘둘리고, 또 말로 휘두르려 하는 그 말의 남용이 애증을 낳는다. 이러한 애증의 감정에 빠져 있는 이가 종국에 바라게 되는 것은 언제나 상대의 파멸이다. 조금 비극적인 얘기지만 결국 그가 사랑했던 것은 상대가 아니라, 그 자신의 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말을 숭배함으로써 자신이 자신의 말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이가, 결국 외부로부터 오는 말에도 취약해진다. 자신의 말에 자신이 휘둘리니, 남의 말에도 휘둘리는 것이다.
자신을 말로 뽐내던 그 의기양양하던 모험가들을 기억하는가? 그들은 다 용의 둥지에서 잿더미가 되었다. 필연적인 귀결일 것이다.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한다고 하는 동방의 격언이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용을 상대하는 일이 참 까다롭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최고의 능력으로 간주하는 그 말이라고 하는 것을 상대해야 하는 까닭이다. 인간의 전속무기인 줄 알았던 그 말이 이제 인간 자신에게 그 칼날을 들이댄다. 인간이 말에 의존할수록 자신을 향하는 그 칼날은 더 예리해질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칼을 버려야 한다. 그 언어의 칼이 향하게 될 것은 용의 심장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심장이다. 우리에게는 그 대신에 다른 특별한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분명하게 안다. 여러분도 분명하게 알 것이다. 모험가인 우리 모두는 그 특별한 힘에 대해 이미 들어온 바가 있다.
우리가 햇병아리 모험가였던 시절, 우리를 단련시켜주던 길드의 교관이 늘 우리에게 했던 얘기가 있다.
"기억해라. 너를 진정 강하게 하는 것은 칼의 강함이 아니라, 네 마음의 강함이라는 것을."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는 일에 도전해볼 만큼 자신의 실력과 행운을 자부하게 된 이들은 어느새 이 사실을 자주 잊곤 한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칼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친애하는 벗들이여, 존경하는 모험가 동지들이여, 우리가 모험가인 이유는 단 하나, 우리의 마음이 모험의 설렘으로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상처입더라도, 번번이 좌절하더라도, 우리가 다시 또 모험이라는 것을 꿈꿀 수 있는 강한 마음을 갖고 있기에 우리는 모험가인 것이 아니었던가?
용을 퇴치하는 것도 이 강한 마음이다.
아아, 용은 분명 착각하고 있었으리라. 신이 사랑했던 것은 인간의 언어능력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가장 특별하게 빛나고 있는 이 강한 마음의 빛이었다는 사실을 용은 몰랐던 것이다.
우리는 이 강한 마음으로 말을 상대한다. 아니, 강한 마음만이 말에 휘둘리지 않고 유일하게 말을 상대할 수 있다.
강한 마음을 키울 수련법, 자 이제 우리에게는 이것만이 중요해졌다. 이에 대해 쓸 수 있게 되어 나는 무척 기쁘다.
마음은 어떻게 강해지는가?
결과를 결과로 받아들이는 만큼 강해진다. 마음은 결과다. 이 말이 아무리 생소할지라도 나는 이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일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내 마음은 결코 그렇지 않았는데, 왜 그러한 일이 생겼지. 정말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어."
그렇지 않다. 지금 일어난 그 일이 정확한 마음의 결과다.
마음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마음이 어떤 것을 이루기로 했으면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일어난 일은 다 그러한 마음의 작용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다.
그러나 우리는 이 결과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자꾸만 말을 동원한다. 그게 아니라 사실은 이랬던 것이라며, 결과에 대한 온갖 변명과 정당화를 이루기 위해 말을 남용한다.
그 엘프족 소녀와의 약속에 왜 늦었는가? 그 과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우리는 말로 이런저런 이유들을 만들곤 하지만, 결과는 단순명료하다. 결과 자체가 그 이유다. 늦고 싶기 때문에 늦은 것이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아서 늦은 것이며, 데이트상대로 그다지 내키지 않아서 늦은 것이다.
마음이 결과라는 의미는, 마음은 아주 정직하다는 의미다.
마음은 그 자신을 정직한 결과로서 반드시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가 그 결과를 결과로서 받아들임에 따라, 우리는 마음의 강함을 얻게 된다. 마음이 아주 강한 힘으로 반드시 스스로를 실현한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으니, 이제 마음의 강한 그 힘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강한 마음이라고 하는 그 특별한 힘을 얻는 특별한 수련법이다.
우리는 그동안 말로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일에 지나치게 능숙해졌으며, 그 능력만을 너무 키워왔다. 그러한 우리의 모습은 흡사 용과 같다. 이처럼 용의 방식에 동의하고 있으며, 심지어 용의 방식만을 강화시키고 있었기에, 우리가 용을 물리치는 일이 아주 어려운 일이 된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가깝게 묶여 있는 것, 나아가 우리 자신과 동일시되어 있는 것을 물리치는 일은 원래 어렵다. 이것이 애증관계라는 것이 아닐 것인가. 말로 서로를 묶고, 그 말의 속박을 통해 서로를 휘두르려 하는 이 일이 용의 둥지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다.
그래서 어떤 연금술사들은 "용을 퇴치하고자 하는 이여, 먼저 내면의 용을 퇴치할지어다."라는 비유를 즐겨 썼던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속삭이는 용의 말에 현혹되지 말라. 여러분의 눈앞에서 일어난 그 일만이 결과이며 사실이다. 눈앞에서 접시가 깨졌다면, 자신이 접시를 깨지 않았다는 그 과정의 정당화만을 위한 소설을 쓰지 말고, 차라리 이렇게 받아들이리라. '내가 접시를 깨고 싶었구나.' 그런 다음 그 결과 위에서 질문하라. '나는 왜 접시를 깨고 싶었을까?' 그러면 완전히 새로운 답이 나온다.
그것은 실력에 의한 것도 아니고, 요행으로 찾은 것도 아니다.
마음의 힘이 한 것이다. 우리를 언제나 자유로 이끌고자 움직이던 그 마음의 힘이.
이것이 우리의 새로운 칼날이다.
말의 속박을 깨고 기어이 용의 심장에 닿고야 말, 인간에게 부여된 아주 특별한 힘. 신들이 사랑했던 그 아름다운 빛.
오직 자유를 향하여 당신은 일점으로 돌격한다.
인간은 지금까지고, 또 언제까지나 이 영원한 자유의 이름일 것이라고, 한 줄기의 섬광이 빛난다.
드래곤 슬레이어.
자기 자신을 해방한 자.
말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의 길을 가는, 스스로 자유로운 그 이름.
이제 그것이 당신의 이름이다.
강한 마음을 가진 나의 벗이여, 칭송되고 영원히 노래되리니. 신들도 온통 그대를 경애했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