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를 이세계로 사는 법"
오, 모험가들이여. 나는 지금 어느 던젼의 중심부에서 이 글을 쓴다.
이곳에는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는 초목의 정령들이 떠다니며 기분좋게 나의 코를 간질인다. 그 재료는 보잘 것 없더라도 갓 구운 빵은 언제나 맛있는 법이다. 우연히 길을 헤매다 찾은 농가에서 그런 빵을 대접받을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었다. 내가 누워있는 이 푸른 동산의 바람에서는 그런 빵냄새가 난다. 나는 어느덧 따듯한 불빛이 일렁이던 그 농가의 문앞에 서있다. 따듯했던 주인장과 그녀의 아내와, 모험가를 꿈꾸던 그들의 어린 두 아들들이 눈앞에 있는 것만 같다.
아니, 나는 막 귀향한 그들의 둘째 아들이다. 긴 모험을 마치고 이제 돌아와 고향의 문을 두드린다. 문이 열리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과 그의 아내가 반갑게 맞이한다. 갓 구운 빵이 우리들의 저녁식탁에 올려질 것이다. 나는 바랐던 것이다. 아주 오래되었으면서 늘 새롭고 좋은 이 바람이 동산 위에 계속 불어오라고.
나는 어느 던젼의 한복판에 있다. 모험 중이었던 것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발견하는 그 삶의 모험을.
나는 친애하는 나의 벗들에게 이렇게 전하고 싶다.
일상던젼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그곳에는 어느 던젼보다도 귀한 보물들이 널려 있다. 가는 길이 험난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바로 갈 수 있다. 어떤 일상 속에서도 가능하다. 나는 지금 조용한 마을의 한 동산 위에 누워 던젼을 탐험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 순간 동산은 나에게 단지 동산만이 아니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는 그곳은 분명 순수한 모험가들을 위한 던젼.
그래, 이것은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아름다운 모험의 장이 되는지에 대한 얘기다.
나의 벗들이여, 부디 너무 놀라지는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대부분은 실은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대신에 우리는 세계를 살고 있다.
세계라고 하는 것은 어떤 정해진 상이다. 이것은 이렇게 되어야 하고, 저것은 저렇게 되어야 한다는 선입견들로 세계는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입견들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 살아간다. 파란색은 파란색으로 보아야 하고, 겨울의 바람은 추위로 느껴야 한다. 다른 것으로 경험하면 아마도 우리는 좀 잘못된 것이다. 파란색에서 유니콘의 숨결을 보거나, 한겨울의 외출을 허브밭을 거니는 산책으로 경험하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그가 나쁜 정령에게 사로잡힌 불우한 운명을 맞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당연하다고 가정된 것을 영구불변하게 당연하다고 살아가는 일이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의 안정성이 붕괴될 것이다. 그런 것은 마왕이나 할 법한 일이지 않은가.
나는 아직 마뫙이라는 존재를 만난 적은 없으나, -만났다면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지도 못하겠지- 그 마왕이라는 것이 세계를 무너뜨리고 싶어하는지는 의문이다. 나는 마왐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세계가 무너진다면 그가 지배할 것도 없어지지 않는가. 그럼 무척 심심할 것이다. 만약 마왕이 심심한 것을 좋아하는 존재라면, 그에게는 또한 세계를 무너뜨려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당연한 것들로만 가득차 제일 심심한 것이 원래 이 세계라는 것이니 말이다.
여러분도 세계가 심심해 모험가가 되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혹시 마왕도 그러한 것이라면, 그는 더는 마왕으로 불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는 우리의 동료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정해진 이 모든 세계 속에서, 당연하지 않은 새로움을 발견해보고자 함께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모험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세계를 넘어서 미지의 삶에 닿는 것.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이 세계를 넘어서 이세계(異世界)에 닿는 것이라고도 나는 말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 이 세계 속에서도 그 일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나는 그런 일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이 세계를 이세계처럼 살아가는 법에 대해.
나는 얼마 전에 좋은 힌트를 얻은 적이 있다. 그것은 내가 잠시 동방에서 온 수도승들과 여행을 할 때였다. 우리는 정신공격을 하는 몬스터의 무리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는데, 그것은 나에게 정말 고역이었다. 그 놈들은 늘 가장 아픈 나의 기억을 헤집어 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나와 함께하던 수도승들은 전혀 그 정신공격에 타격을 입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전투는 손쉽게 끝이 났으며, 그날 저녁 휴식을 취하면서 나는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를.
동방의 수도승들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그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여러분은 알겠는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만을 마친 뒤 입가에 미소를 담은 채 조용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 미소가 너무 좋아서, 나 또한 눈을 감을 뻔했다. 나를 이끄는 그 따듯한 어떤 힘에 살짝 저항하듯이 눈을 감지 않았던 것은, 조금 두려웠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알던 당연한 것들이 사라질 것 같은 그 두려움.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의 미소는 한층 더 온화해진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괜찮습니다.'
그런 말을 들은 기분이 들었다. 뭔가 왈칵해서 나는 잠자리를 고른다는 핑계로 돌아누웠다. 호위의 역할로 고용된 나였지만, 그날 밤은 왠지 내가 보호받는 느낌이었다. 모닥불이 타는 소리와 함께 등 뒤의 온기도 더욱 깊어져갔으며, 하늘에는 별이 떠있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를 지켜보고 있는 그 따듯한 시선이.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일 것이다.
나는 몹시도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가벼운 의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너무 방심했던 탓인지, 나는 그만 정신공격을 하는 무리들에게 걸려버리고 만 것이다. 이놈들은 정말로 치명적으로 후벼 판다.
나에게는 푸른 동산의 기억이 있다. 그곳에 있던 작은 농가의. 거기에는 마음씨좋은 주인과 그의 아내와, 또 그들의 작은 두 아들들이 있었다. 아들들은 모험가가 되기를 꿈꾸었고, 그 집에 들릴 때마다 내가 들려주는 모험의 얘기에 밤새 귀기울이며 저 밤하늘의 별들처럼 눈빛을 반짝이곤 했다.
나는 지키지 못했다.
둘째 아들이 모험가가 되어 떠난 첫여행에는 나도 함께 있었다. 함께 있었지만 지키지 못했다. 지켜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래서 그의 첫모험에 함께한 것인데도, 나는 무력했다. 생각보다 쉽게 달성한 의뢰였기 때문일까. 우리는 방심했고 돌아오는 길에 습격을 당했다. 새벽이 왔을 때 살아남은 것은 나뿐이었다. 그는 영영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고, 나 또한 더는 그 동산으로 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나는 도망다녔다. 원망으로 가득한 그 눈동자들을 견딜 수 없었다. 믿음을 배신한 이 죄가 나를 짓눌렀고, 어디로 가든 세계는 죄로 가득 차있었다. 도처에서 나는 나의 죄만을 볼 뿐이었다.
그런 내가 정신공격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겠는가?
둘째 아들의 모습이 내 앞에 서있었다.
왜 자신을 지켜주지 않았냐고, 그 아름답던 푸른 동산을 왜 자신에게서 영영 떼어놓았냐고, 내가 늘 내 마음속에서 내 자신을 비난했던 그 목소리 그대로 내 앞에 서있는 둘째 아들이 외치고 있었다.
나의 세계는 정말로 지옥이었다.
죄를 지은 내가 당연하게 떨어져야 할 그 지옥.
그런데 문득 또 하나의 작은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려왔다.
"당신은 그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마음의 눈이 뜨였다.
나는 그 시선으로, 수도승들과의 그날 밤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그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 것도 몰랐다.
세계가 만들어낸 나의 입장, 나의 생각, 나의 선입견으로 당연하게 아는 척하고 있었을 뿐이지, 정말로는 몰랐다. 나는 당연하게 내가 원망받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경험이 정말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진정 아무 것도 몰랐다.
순수한 경험, 그 자체.
나는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자 둘째 아들의 심정이 그대로 나에게 들어왔다.
그는 자신을 모험가의 길로 이끈 나를 원망했을까? 첫모험이 마지막 모험이 된 그의 기구한 운명을 원망했을까? 아니면 이 세상 모든 것을 원망하며 눈을 감았던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푸른 동산을. 작은 농가를. 그 안에서 웃고 있을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을. 그리고 그 단란한 식탁 위에 올려진 갓 구운 빵을.
잘 다녀왔다고 말하고 싶었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눈물이 한없이 쏟아지는 내 자신을 알아차렸을 때, 이미 그곳에는 정신공격의 무리들은 없었다. 효과가 없음을 알고 물러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더이상 당연한 세계라는 것 또한 없었다.
삶.
끝없이 이어지는 삶만이 있었다. 끝났어도 끝난 것이 아닌, 다시 새롭게 이어질 이 영원한 삶만이.
모든 것이 당연한 저주인 것만 같은 이 세계는 이 순간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이세계처럼 변했다. 당연한 이 세계를 새로운 이세계처럼 경험해가는 바로 그것이 삶이었다.
외견적으로 바뀐 것은 없지만, 나는 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더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왠지 모르게 나는 기뻤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수도승들은 그래서 미소짓고 있었던 것이리라. 괜찮았다. 정말로 나는 괜찮았다.
그리고 괜찮다. 이제 괜찮다. 나의 벗, 내가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던 농가의 아들이자, 나의 소중한 동료여, 자네도 정말로 다 괜찮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당연한 아픔으로 끝나지 않았고,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삶의 소망이 반드시 스스로를 이루리라.
내가 경험한다는 것은, 내가 삶의 소망을 발견하게 되고, 이제 나를 통해 삶의 소망이 스스로를 이룰 것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제 이것을 안다. 이제는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나를 통해 분명한 가능성으로 이루어진다. 흡사 어떤 치트능력처럼.
내가 내 앞의 삶을 받아들일 때 이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내 앞의 삶을 순수하게 경험하고자 할 때, 이 일은 언제든 가능했다. 불가능이란 없었다.
얼마 전의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푸른 동산에 누워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일기장을 덮고는 작은 농가로 향할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둘째 아들이 사랑했던, 그래서 너무나도 돌아오고 싶었던 그곳으로.
그와 나는 같다. 내가 그것을 순수하게 경험하자, 그것은 이제 나이고, 나는 그것이다. 얼마든지 기꺼이 그럴 것이다. 나는 경험할 것이다. 아주 오래되었지만 늘 새롭고 좋은 바람처럼 이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것이 삶이다. 나는 이어가며, 기쁠 것이다.
문을 두드린다.
따듯한 바람이 불어온다.
갓 구운 빵의 냄새가 난다.
'다녀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