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t la vie"
세계라는 말은 우리를 종종 무력하게 만들곤 한다. 그것은 너무 크고, 그것과 비교되는 내 자신을 초라하게 한다.
이 세계로 떨어진 나 역시 그랬다. 여러분이라고 달랐을까. 이 세계에 태어난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자라나며 점점 세계의 크기를 실감하고, 결국에는 타협을 한다. 자신을 하나의 부품으로 인정해버리곤 하는 것이다. 대신에 어떤 중요한 부품이 될 수 있기를 꿈꾼다. 그나마 고려해볼 수 있는 위안이리라.
이것은 어떤 모험가의 일기 같은 것이겠지. 이 세계를 여행하는 일의 고됨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담겨 있는. 그러나 바라옵건대 차라리 하나의 예언서 같은 것으로 봐주었으면 한다.
나는 지나며 어느 모닥불 주위에선가 한 승려가 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국가와 사원에서 여신의 신탁으로 지정해준다고 하는 개인의 적성과 그 기프트보다 더 분명한 판별법이 있다고 했다. 신보다 더 위대한 것이 존재한다는 듯한 뉘앙스를 자신이 풍기고 있다는 것을 안 승려는 그의 신분상 말을 좀 아꼈지만, 몇 가지의 이야기는 내 귀에 또렷이 들어왔다.
먼저 그는 세 유형의 아이의 모습을 묘사했다. 자신의 실수로 화분이 깨졌을 때 사람은 누구나 이 세 유형의 아이 중 하나로 드러난다 했다.
첫 번째 아이는 얼굴이 새파래지며 자책을 한다. 자신이 똑바로 처신하지 못한 잘못의 무게에 고뇌하며 자비로운 누군가가 자기를 용서해줄 때만을 기다린다. 아니면 차라리 빨리 혼내주기를 기도한다. 상황이 신속히 종결되어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순수한 아이로 하루 빨리 돌아갈 수 있기를 꿈꾸는 것이다.
두 번째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화를 낸다. 어떤 사악한 마왕의 마법이 화분을 깨뜨리기라도 한 것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이는 분노한다. 어떤 때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오히려 자기가 발로 더 밟아, 깨진 조각을 더 작은 조각들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더는 되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세 번째 아이는 그 눈동자가 하얀 별빛처럼 반짝이며 그 얼굴에서 빛이 난다. 그의 반응은 일정하게 정해진 바가 없다. 어떤 때는 깨진 화분 주위에 오색의 조약돌들로 원을 그려 작은 예배당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화분에 담겨 있던 꽃을 그 손에 조심스레 들고는 숲으로 가기도 한다. 마을사람들은 종종 숲의 가장자리에 새로 생긴 아름다운 꽃밭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기도 하는데, 누가 그 일을 했는지는 몰라도 모두의 기쁨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이러한 기쁨 속에서는 다들 지나간 일을 돌아보기보다는 새로운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그 가슴이 충만해있다.
승려는 우리 모두는 다 이 세 아이 중 하나이며, 그러나 이 세 아이는 사실 하나의 아이라고 했다.
모든 아이는 원래 다 세 번째 아이이자, 동시에 세 번째 아이를 향해 인도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 세 번째 아이가 바로 어떤 신탁보다도 높은 곳에서 온 우리의 진짜 적성이며, 세 번째 아이로 우리 모두를 이끌어가는 어떤 힘이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힘이라고도 했다. 어쩌면 세계를 파괴할지도 모르는 힘. 그 힘을 자기의 것으로 얻은 이야말로 이 세계 속에서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용사, 일지 모르지만, 자기는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다며 승려는 웃었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내가 두 번째의 아이로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잃어왔고, 정말로 되돌아갈 곳이 없었다. 흡사 저주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평생이 좌절과 실패만 쌓여간 순간들. 나는 거꾸로 이 빌어먹을 운명을 저주하곤 했다. 어느 쪽 저주가 더 큰지 내기라도 해보자는 것처럼 살아왔다. 이미 망했는데 더 망할 것이 있겠냐며, 나를 더욱 밑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은 이 모든 것이 환한 별빛 속에 감싸여질 때가 있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새로운 색으로 빛나기 시작하며, 숨을 들이마쉴 때마다 그 이색의 공기가 내 자신도 새롭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모험을 할 때면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났다. 그 순간들을 또 경험하고 싶어서 내가 모험가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승려가 말한 세 번째 아이라는 것일까? 아직까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내가 이 세 번째 아이를 의식하면서부터,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은 머지 않아 찾아오게 되었다.
모험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렇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하고, 또 믿음직한 동료들과 함께한다 해도, 우리가 했던 그 모든 것이 커다란 벽에 막히는 순간은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 정말 마지막 영혼까지 긁어모아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는 그 심정을 여러분도 알지 않는가. 나는 몹시도 분노했으며, 그것은 말이 되어 튀어나왔다.
"이딴 것도 삶이냐?"
아, 그 순간 나는 마치 번개에 감전된 것처럼 멎었다.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고요했으며, 어떤 말과 이해를 찾으려는 내 작은 머리만이 중요한 어떤 것의 주위로 공전하고 있었다. 그것을 막 포착하려던 중이었다.
나는 분명 두 번째 아이였으며, 내가 한 말은 두 번째 아이의 대사였다.
삶.
그래 삶이다! 두 번째 아이는 삶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아니 두 번째 아이라는 것 자체가 삶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었다. 하나의 태도였다. 아니 그 모든 아이는 다 삶에 대한 태도였을 것이다.
승려의 얘기는 나에게 이제 완전히 새로운 이해로 다가왔다.
첫 번째 아이는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던 것과 같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그것은 삶을 근본적으로 죄악시하는 태도. 그럼으로써 삶을 무시하고 회피하려는 태도. 어떻게든 삶으로부터 도망쳐 자신이 기존에 알던 세계의 껍질 속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태도다.
두 번째 아이는 이미 말한 대로다.
"이딴 것도 삶이냐?"
이는 삶에 대해 반항하는 태도다. 두 번째 아이는 삶이라는 것을 무시하거나 회피하지 못한다. 그러니 화가 나는 것이다. 삶이라는 하는 그 싫은 것을 분명하게 자신의 앞에 두고 있다. 삶이 기존에 알던 자신의 세계를 붕괴시키기 때문에 싫다. 그러나 싫은 만큼 두 번째 아이는 세계의 붕괴라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사실로서 실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만 모를 뿐이다.
그리하여 세 번째 아이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있던 것이다.
"이게 삶이구나."
아아, 나는 알 것만 같다. 세 번째 아이에게는 어떤 것이라도 기회였다. 하나의 좌절과 실패는 그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세 번째 아이는 하나의 세계의 파괴를 통해 다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의 모든 노력을 삶이 무너뜨린다고 해도, 거기에는 자신에게 새로운 보물을 가져다주려는 삶의 큰 뜻이 있음을 믿으며 삶을 신뢰한다. 그에게 있어 삶은 긍정, 바로 그 전적인 긍정의 이름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미소를 띤 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나아간다. 더더욱 삶을 향하여.
"아핫, 이런 것이 삶이구나."
저 먼 서쪽 나라에서 온 여행자가 마을에서 사기를 당했을 때, 나는 그가 묘한 표정으로 이렇게 길 위에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C'est la vie."
이것이 서쪽 나라의 언어로는 그 뜻이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알았다.
그래, 이것이 삶이다. 이런 것이 삶이다.
나는 조금 울었던 것 같다.
거기에는 분명 어떠한 마력이 있었다.
지금껏 무수한 좌절과 실패 속에서 분노만을 거듭해온 내 자신에게 끝없이 쌓여만 갔던 것은 어떤 커다란 상처. 평생을 지워지지 않을 줄 알았던 그 상처의 아픔이 그 순간 모두 다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것은 삶의 마력이었을 것이다. 삶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긍정한 이에게 삶이 가져다주는 그 놀라운 힘.
승려는 바로 이것에 대해 말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삶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힘. 세계에 속하지 않고 세계보다 높은 곳에서 왔기에 삶은 세계를 초월한다. 그러니 한 사람의 세계를 파괴할 수도 있고, 또 한 사람의 세계를 구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삶은 삶을 영접한 누군가의 운명을 반드시 바꾸어낸다는 것이다.
용사란 파멸의 운명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할 힘을 가진 이.
나는 이 세계에 태어난 우리가, 여러분과 내가 실은 이 용사가 아닐까 생각 중인 것이다. 아니 그렇게 희망하고 있다.
내가 여행을 하며 봐온 용사들은 다들 평범했다. 남들보다 검술실력이나 마법능력이 좋지도 않았고, 특별한 여신의 가호나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강력한 전설의 장비 같은 것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 모든 것이 없음에도 다만 용기를 갖고 나아가는 이들이었다. 세계가 아무리 그들을 초라하게 만든다 해도, 그들은 그저 자신의 삶만을 의지한 채 계속 나아가고 있었고, 결국 세계 속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내는 일에 성공했다.
그럴 수 있었던 그 힘은 세계를 넘어선 일종의 치트능력이었을 것이다.
삶, 그것은 분명 이 세계에 떨어진 우리에게 주어진 치트능력임에 틀림없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삶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이는 반드시 이 치트능력을 각성하게 된다. 당연하지 않을까. 그것이 자신의 것임을 자각해야 자신이 그 능력을 쓸 수 있는 법이니까.
나만큼이나 이 세계를 사는 일이 고되고 당혹스러웠던 여러분이라면, 나는 이것이 동료모험가인 여러분에게 전할 수 있는 작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니 차라리 이 일지를 일종의 예언서처럼 읽어주면 좋겠다.
이 예언서는 분명하게도 우리가 그토록 꿈꾸던 용사의 출현을 예언하고 있다.
당신이 그 용사다.
당신의 삶을 한번 신뢰해봐라. 당신의 삶이 펼치는대로, 이끄는대로 그 몸을 맡겨서 따라가다보면, 그 삶의 치트능력으로 당신에게 새로운 현실이 창조될 것이며, 동시에 그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 주인공이 바로 당신 자신이라는 것을 당신은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당신의 이름은 용사,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그 이름.
친해하는 나의 모험가들이여.
이 세계에 떨어진 운명을 공유하는 나의 벗들이여.
깊은 사랑과 존경을 담아 나는 이제 말하고자 한다.
당신들이 참된 용사라는 이 위대한 삶의 사실 앞에서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C'est la vie."
그래, 이게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