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는 모험가들을 위해"
삶은 미지다. 세계처럼 당연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정해진 형식을 깨고 새로운 숨통을 열어주는 것이 삶이다.
세계는 관계로 구성되어 있고, 관계는 역할로, 역할은 선입견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 세계라는 것은 늘 똑같은 선입견 투성이의 것이다. 우리는 세계를 살면서, 자신이 삶을 산다고 착각하곤 한다. 그러니 평생 늘 똑같은 문제에 사로잡혀 만성적인 우울감과 권태 속에, 미처 한번 피어보지도 못한 자신의 삶을 끝맺고야 마는 것이다.
더는 이러한 세계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간 이들을 모험가라고 부른다.
모험가들은 말로 자신의 모험을 꾸며내지 않는다. 선입견이란 결국 말에서 온다. 그들은 말을 개입시키지 않고 순수하게 경험한다. 일어난 결과를 결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바로 그 자리에서 중요한 모험을 시작한다. 결과를 그렇게 펼쳐냈던 실제적인 마음의 힘을 순수한 눈으로 발견하는 것이다.
마음의 강한 힘을 발견한 이는 그 마음의 힘이 이미 자기의 것이다. 모험가들은 왜 다들 강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다. 그리고 이 강한 마음이 바로 삶에서 온 힘이다. 신들보다도 더 위대한 삶으로부터 직접 인간에게 전해진 일종의 치트능력 같은 것이다. 그래서 강한 마음은 선입견으로 둘러싸인 세계의 한계를 깨고 반드시 길을 열어낸다.
모험의 근본은 원래 이 '길찾기'다.
막힌 세계의 장벽 속에서 열린 길을 찾아가는 일, 이것이 모험이며, 또한 삶이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새로운 시선, 새로운 호흡, 새로운 도전방식이 다 모험의 것이다. 쉽게 말해, 선입견의 내용들로 가득차있으면서 자신이 세상 돌아가는 원리나, 사람 사는 도리에 대해 다 아는 척하고 있는 이들이, 결코 안할 것 같은 그 일을 하면 모험가라는 얘기다.
나는 계속 이런 것들을 쓰고 있었다.
어디 위대하고 자비로운 여신에게 받는 것도 아니고, 마왕을 물리친 뒤 나온 보물상자에서 얻는 것도 아니며, 오직 자신의 삶이라고 하는 것을 정말로 한번 살아보고자 하는 이에게, 곧 자기 자신을 한번 모험해보고자 하는 이에게 스스로 발현되는 어떤 치트능력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이것을 차라리 예언서로 불러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여러분에게 반드시 그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움에 대해서도 안다. 우리가 세계의 문을 열고 그 바깥으로 나가 모험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 하더라도, 번번이 좌절되곤 하는 그 핵심적인 어려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선입견의 무리들에게 여러분은 발목이 붙잡힌 것이다.
자, 여기에 질문이 있다. 초보모험가들이 모험의 꿈을 접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용의 습격? 마족의 군세? 키메라와의 격전? 혹은 늪에 도사리고 있는 저 히드라인가?
아니고, 아니다. 다 아니다.
초보모험가들의 최대의 적은 바로 고블린이다.
커다란 꿈과 희망에 부풀어 처음 모험길에 오른 이들을, 모험을 떠나기 전보다도 더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태로 만들어 다시 빗장이 걸린 어두운 집안으로 돌려보내는 세력, 심지어는 떠난 것을 후회하고 자책하며 길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만드는 그 세력의 필두는 단연코 고블린이다.
선입견의 속박을 벗어나고자 떠나는 당신의 모험을 가장 위협하려는 것이 선입견인 것과 같다.
고블린은 선입견으로 똘똘 뭉쳐있는 종족이다. 오직 선입견으로만 살아간다. 그래서 둔하고 어리석다고도 말해지지만, 그들에게는 문제가 아니다. 숫자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양적인 군세로 밀어붙여 그들은 자신의 둔하고 어리석은 그 성질로 반드시 승리하고 만다.
나는 어느 마을의 주점에서 한 음유시인의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레아 종족이었는데, 자신이 함께 여행하며 지켜본 한 모험가에 대해 노래하고 있었다.
고블린 슬레이어, 그 이름을 나는 그때 처음 들었다. 다른 의뢰는 받지 않고 오직 고블린을 퇴치하는 일만을 그의 사명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이라고 했다. 그 이유도 분명했다. 사람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그 주위에 두고 있는 고블린이야말로, 실은 가장 실제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는 그와 함께 모험길에 나섰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 나는 그가 남긴 고블린에 대한 상세한 기록들을 훑어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고블린들은 철저한 무리생활을 하며, 그 사회는 고정된 역할들로 이루어져 있고, 자신들의 자식을 키우는 일이 고블린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의 자원을 약탈하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몸 자체를 착취하는 것이다. 더 많은 번식을 이루고, 인간의 자녀의 것을 빼앗아 대신 자신들의 자녀를 배불리 먹이기 위해서다.
고블린들이 투표라는 것을 통해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는다는 얘기도 기록에는 적혀 있었다. 자신을 정의라고 생각하는 그 고집이 세고, 자기가 세상 다 아는 척하는 선입견이 가장 강한 개체가 대개 지도자로 선출된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지도자를 뽑은 뒤에는 고블린 집단의 모든 개체가 그 지도자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고블린들의 무리가 국가를 이루고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지도자는 고블린들 자신이 지켜야 할 조국 같은 것이다. 아니 고블린들의 무리 자체가 이미 하나의 조국이다. 여기에는 가족주의보다도 더 끈적한 아주 원초적인 군집의 본능 같은 것이 있다. 이런 표현이 정확할지는 모르겠지만 고블린들은 마치 서로에게 어떤 마음의 빚 같은 것을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그들에게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면). 서로를 수호하고 서로의 자리를 사수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모든 행위의 동기인 것만 같다.
그래서 고블린들은 인간을 적대하는 것일지 모른다. 고블린의 입장에서는, 사악한 인간으로부터 자신들의 동지를 지켜내기 위해 인간을 위협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위에서 묘사한 고블린의 생태는 사실 선입견으로 가득차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똑같이 닮아있다. 그래서 전체주의적 군집을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이 고블린에게 갖는, 또 그러한 생태의 고블린이 인간에게 갖는 그 불쾌감은 아마 동족혐오일 것이다.
그러니 고블린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동은 그림이 참 묘하다.
사악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그것은 고블린 자신의 모습이며, 사악한 고블린이라고 말하는 그것은 인간 자신의 모습이다. 그러니 동지애로 움직이는 이 동일한 속성의 군집들은, 사악한 것을 퇴치해서 사악한 것을 지켜내겠다고 하고 있는 것과도 같다.
이상한 모습이지만, 그 모습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그리 이상하지 않다.
선입견으로 살아가면 언제나 이 일이 만들어진다.
선입견은 당연한 진리라고 맹목적으로 가정된 그 내부를 선으로서 수호하고, 외부를 악으로서 적대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외부의 것이 내부의 것과 동일한 속성을 갖더라도 그것은 악이다. 선악을 가르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단지 내부인지 외부인지의 그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입견은 늘 표리부동의 모순을 만들어낸다. 그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 외부의 것에 싸움을 걸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모순은 더욱 짙어지는 방식으로, 이 선입견으로 사는 일은 점점 더 불일치를 낳는 순환고리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고블린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일지 모른다.
처음부터 고블린이라는 존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고집스러운 선입견으로 똘똘 뭉쳐 있던 인간이 그 끝에서 변화된 모습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고블린이 늘 인간 주위에 머물며, 아무리 없애도 끝없이 출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보자면, 선입견이란 결국 자신이 자신에게 거는 저주인 셈이다.
하나로 통합된 세계를 살며, 군집의 관계를 살고, 투쟁과 수호의 역할을 살며, 그렇게 선입견을 살면 이 주문이 발동한다. 우리가 고블린으로 변하게 되는 그 자기저주가.
우리가 모험가라고 부르는 이들은 그 반대편을 향하던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사는 대신 세계를 살고, 결국 선입견을 살게 되는 이 일을 멈추고, 이제는 정말 자신의 삶을 살고자 문 밖으로 나가려 한 이들이다.
고블린들이 보기엔 이 모험가들의 모습이 아주 꼴보기 싫을 수도 있다.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은, 선입견으로 사는 고블린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악 중의 악이다. 단지 사악한 것이 아니라, 어디 이세계에서 온 불가해한 별종의 최악 같은 것이다.
그러니 고블린들은 어떻게든 이 모험가들의 진로를 좌절시켜서, 그들이 다시금 그들의 침울한 방 안으로 돌아가도록 획책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감을 완전히 추락시키고 그 삶을 철저히 파괴한 뒤, 결국에는 방 안에서 읊조리는 자책의 자기저주만이 남도록.
이것이 새로운 고블린을 탄생시키는 고블린의 번식방법이라고 누가 믿을 것인가, 또는 누가 믿지 않을 것인가.
여러분의 모험은 분명 이 고블린들의 방해와 위협으로 인해 그 시작부터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혹은 누군가는 이미 너무 아프고 속상한 상처를 입어 모험 얘기는 더이상 듣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제는 고블린이라는 단어에도 흠칫 놀라며, 그것이 끝나지 않는 악몽의 소재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그러나 나는 분명하게 적어야 하리라.
두려워하지 마라, 나의 사랑하는 벗들이여.
고블린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그대들이다.
그대들을 새싹이 막 돋던 그 시절부터 잔혹히 짓밟으려 한 것은, 고블린들에게는 그대들이 그토록 두려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가 내는 그 영롱한 빛은, 고블린들에게는 재앙 그 자체인 것. 스스로 온전한 그 마음의 빛이 넘치는 곳에서 음울한 선입견이 낳은 마음의 빚으로 살아가는 고블린들은 살 수가 없다. 신관들의 멋진 비유처럼, 존재의 축복이라는 가장 겸허한 감정 속에, 죄책감이라는 가장 오만한 감정이 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고블린들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오만한 종족일 것이다. 고블린 슬레이어도 그 자신의 기록에서 이런 보고를 많이 남겼다. 그들의 강한 선입견이 거대한 오만성을 만들어낸다. 죄책감도 그래서 출현한다. 선입견은 지켜야 하는 것, 그에 따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다 오만성의 표현이다.
자신의 선입견으로 인간이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일을 위협한다면, 이보다 더 오만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역으로 말하자면, 이 오만한 것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인간 그 자신의 삶이다.
더 쉽게 말해보자.
선입견으로 가득찬 오만한 것은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리고 가장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삶이다. 세계의 모든 것을 선입견으로 다 조종하고 통제하는 척하고 있어도, 정작 자신의 삶만큼은 결코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5분 후에라도 갑자기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이며, 또 모험한다는 것이다.
선입견으로 꽁꽁 무장하고 있으면 자신이 죽음을 방비하고 있는 줄 착각하는 오만한 것들이, 그런 선입견 따위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툴툴 털고서 오히려 삶 그 자체에만 자신을 맡긴 채 모험을 나서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목격한다고 하자. 몹시 불쾌할 것이다. 한심하게도 볼 것이다. 또는 자신의 세계를 영화롭게 지켜가고 있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오만한 고블린들은 다만 두려워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이 두렵고, 그렇게 자신의 생각대로는 결코 되지 않을 자신의 삶이 두렵다. 삶의 세력이 두렵고, 그 빛이 두렵다.
오만한 모든 것은 언제나 두려워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외면하려는 오만함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분명하다.
고블린들은 그 삶의 본성대로 통제될 수 없고 제한될 수 없는 여러분을 무척 두려워한다.
이렇게도 말해도 될까.
고블린들은 바로 여러분의 자유를 두려워한다고.
그 자유가 자신들의 세계를 반드시 박살내고야 말 것이다, 고블린들에게는 이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예언서다.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험가들로 인해, 고블린의 세계는 무너질 것이다.
이 자유의 삶이 어떻게 선입견의 세계를 무너뜨리는가, 우리는 바로 그것을 모험하고 있던 중이었다.
친애하는 나의 벗들이여,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가장 고집스러운 선입견으로 지금 그대 앞에 위협적으로 서있는 것의 그 눈빛을 들여다봐라. 그대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대가 그 위대한 자유의 힘으로 무슨 일을 할지 몰라 바짝 긴장 중이다. 자신의 위협이 먹히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사방으로 궁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방해물조차 되지 못한다는 듯이, 옆으로 살짝 돌아서 그대의 길을 가라.
그 작고 비루한 고블린이 막을 수 있는 그대의 길은 애초 없으니, 그저 이 장대한 하늘 아래서 그대 자신의 '길찾기'만을 이어가라.
뒤에 남을 고블린들은 고블린 슬레이어가 정리해줄테니, 염려말고 그대의 발걸음을 내딛어라. 선입견 없이. 그 시야에 그대 자신도 모르는 삶의 불가해한 가능성만을, 그 신뢰만을 담아라. 더는 자신을 저주로 묶지 말고, 더 큰 자유로 계속해서 열어가라.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만나게 되었을 때 그대의 얘기를 들려다오.
그대가 그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사랑했는지.
또 그대 자신의 삶으로부터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그런 그대가 걸었던 길을.
이제 노래가 될 그 삶을.
그대 자신의 삶을 여행하는 진실한 모험가여.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저 별빛이 반짝일 때 나는 그대인 줄을 알리라. 가장 짙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는 그 빛을 참으로 그대인 줄 알리라. 복되고 복되소서. 그대가 태어나 살아가는 일이 더욱 큰 기쁨이며, 영원한 기쁨이기를. 어느 날엔가 문득, 내 안에도 그 마음의 빛이 기쁘게 퍼져갈 때, 아아, 나는 두려움 없이 그대인 줄을 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