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도시락"
내가 할머니에게 보았던 것은 여자의 슬픔이었다.
목사의 딸이자, 젊은 시절 경찰이었던 할머니에게 자리잡은 것은 엄격한 도덕주의. 할머니의 삶은 평생 그것과의 내적 투쟁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그녀가 할머니로 기능하고 있는 거리의 바깥으로 외출을 할 때면 늘 잔꽃무늬 원피스에 밍크목도리를 걸치는 분이었다. 예쁜 옷으로 우아하게 멋을 부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호흡과 같았으며,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그녀에게는 분명 어떤 조화로운 완벽성을 향한 섬세한 미의식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많은 자식들을 키운 엄마에서도 더 나아가 많은 손주들을 돌보는 할머니가 되어야 했을 때, 그녀는 오히려 그 반대의 방향으로 드러나곤 했다.
거칠고, 투박하며, 심지어는 추레하기까지 한 모습들로 그녀의 일상은 가득 채워졌다. 그러한 만큼 그녀가 가진 특유의 섬세함은 아주 집요한 공격적 예민함으로 바뀌었으며, 그것은 아주 많은 경우 그녀의 주변을 향한 심리적 폭력으로 작용했다.
정죄하고, 심판하며, 존재의 숨통을 조이곤 하는 할머니를 다들 두려워했으며, 그것은 도덕주의의 일그러짐이었고, 또한 일그러진 권력이었다.
거기에는 분명 그녀의 어떤 본성의 몸짓과 그것을 누르는 억압의 운동이 충돌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듣기로 할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여자로서 자신이 사랑받는 삶을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여기에서 다양성 따위의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아름다움에 관심이 큰 이가 여자로서의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일은 그저 온전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녀는 불타올랐다. 어떤 때는 광적인 질투로, 또 어떤 때는 맹렬한 비난으로 그녀 자신과 그 주변을 불태우다가, 갑자기 그 모든 것은 차갑게 식었다. 그것은 불길의 소화가 아니라 실은 더 뜨겁게 감추어진 불꽃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이제 자신이 소망하던 현실의 반대편을 향해 180도로 방향을 틀곤 했다. 모든 것이 미적으로 초라하며 형편없이 추락하게 되는 그 현실로. 자신이 가질 수 없을 바에는 다 망쳐서 아무도 못 갖게 하겠다, 차라리 그것은 이런 의지였을까?
내가 중학교 시절 다른 아이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것은 내가 갖지 못한 엄마아빠의 존재가 아니다. 그들의 도시락이 부러웠다. 아주 고운 정성의 손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격조있는 반찬에 대한 것도 아니다. 감자조림이나 진미채볶음, 콩자반 등의 아주 평이한 반찬들이, 그저 칸막이로 구분된 반찬통 안에 깔끔하게 담겨 있는 그 평범함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도시락을 열어야 하는 시간이 정말 무서웠는데, 오늘은 대체 어느 만큼의 세기말적 그림이 내 반찬통 안에 펼쳐져있을까 늘 긴장해야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계란말이는 김치국물로 시뻘겋게 물들어있고, 심지어 케찹맛이 난다. 동그랑땡은 그 붉은 화장기를 잃어 새까맣게 타있는 쌩얼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렇게 쥐구멍을 찾고 싶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씨발, 나의 작은 동그랑땡들과 함께 우리의 낙원을 찾아 지금 바로 도주하고 싶다. 아니면 이 순간 세상이 거대한 원자폭탄의 빛에 휩싸여 아예 끝나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장래에 심리상담사를 지망하는 친구가 있었다면 차라리 상쾌하게 그 장면을 놀려서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겠지만, 다들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예의바르며, 다양성의 윤리를 이미 체득한 친구들이었던지라, 모르는 척 또는 아무 일도 없는 척 그저 점심시간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해나갈 뿐이었다. 물론 내 반찬에 손을 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점심시간이 오기 전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살짝 열어보는 것이 내 습관이 되었다. 상황의 심각도에 따라 나는 도시락을 깜빡 잊고 싸오지 않았다며, 혼자 운동장에 나가 점심시간 동안 앉아있다 오는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하교하는 길에 내가 자주 다니는 으슥한 골목길 전신주 옆에 앉아, 꾸역꾸역 그 도시락을 어떻든 다 빈통으로 만든 후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던 것이다. 할머니에게 너무 죄스럽고 상처가 되는 일일까봐 우주처럼 고민하던 중학생이 가까스로 쥐어짜낸 해법이다.
그러다가 하루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서러워서, 먹던 도시락을 그대로 골목 옆에 놓인 쓰레기봉투에 쳐박은 뒤 집으로 빠르게 달려간 적도 있다.
몇 분 뒤 골목으로 돌아오는 나의 질주는 더욱 빨랐으며, 쓰레기통에서 도시락을 꺼내 빈통으로 만드는 그 솜씨는 한층 더 신속한 달인의 것이었다.
다 먹고 나는 울었다. 주저앉아 통곡했다.
여름이었, 으면 좋으련만, 늦가을이어서 추웠다. 세상에서 나는 혼자였고 몹시 슬펐다.
나도 예쁘고 싶은데, 내 생활에 예쁜 것들로만 가득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못난 벌레 같았다.
그것은 아마도 할머니의 목소리, 할머니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아주 예민한 사람이었던 만큼,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도 아주 예민한 사람이었고, 나도 그렇다.
예민함은 잘 찌르기도 하지만, 잘 찔리기도 한다. 많은 것들이 침투해들어온다. 라디오 수신기의 감도가 좋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예민함의 본래의 이름은 섬세함이다. 감수성의 섬세함. 마음을 잘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는 그 성질.
나는 아마도 그때 할머니의 마음을 도시락이라는 매개를 통해 그대로 느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살아온 모든 일이 그 안에 다 담겨 있었다.
도시락 안은 그녀의 내적 투쟁의 결과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계속 아름답게 사랑받는 여자이고 싶지만, 그녀는 엄마가, 또 더 상위의 엄마인 할머니가 되어야 할 의무에 봉착한다. 딜레마가 생겨난 것이다. 그녀는 딜레마의 끝에서 늘 도덕주의의 승리를 선언하지만, 이 과정은 가시밭길을 헤쳐나와야 하는 그 과정이다. 이미 투쟁 속에서 에너지가 많이 소실되었다.
나아가 이제는 생물학적 노화가 시작되어 절대적인 에너지의 양이 줄어든 상태에서, 이러한 내적 투쟁은 그녀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불가피하게 할머니가 되어야 한다면, 그녀는 할머니 또한 아름답고 우아한 것으로 하고 싶다. 이것은 그녀가 가까스로 꾀해볼 수 있던 통합의 해법이다. 그러나 그러기엔 에너지가 너무 부족하다. 하루하루 할머니의 역할을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쁘다.
손주들을 키우는 일을 이제 그만 하겠다고 하는 것은 애초 그녀의 선택이 될 수 없었다. 도덕주의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신이 아름다운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다는 그 소망이 그녀 자신에게 명확하게 자각되지 않은 까닭에, 오히려 그녀가 아름다운 여자로서의 삶을 스스로 나쁜 것으로 만들며 부정하고 있는 속에서는 이는 총체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할머니는 여자로서 사랑받는 현실을 택하기 위해 자신의 자식들을 포기하는 여자의 모습을 몹시 경멸했다. 사실 경멸 정도의 표현으로는 그 증오를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몸이 정말 부들부들 떨렸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어떻게 안좋은 것으로 만들어 심판하고 있었는지의 그 정도였다. 극단적인 예에 대한 극단적인 반응은, 그녀의 내적 갈등과 그 갈등을 낳은 소망이 얼마나 극단적인 것이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극단적으로 그것을 강하게 소망하기에, 그 소망을 억압하려면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무거운 누름돌이 필요하다.
이것을 감히 여성성과 모성 사이의 충돌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까?
원래는 극단적인 갈등을 빚어야 할 성분들이 아닐 수 있지만, 도덕주의가 여기에 개입함으로써 그것은 극단적인 갈등이 된다. 신을 수호하고 악마를 퇴치해야 하는 문제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한쪽을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는 그 강압도 생겨난다.
그러한 압박에 의해 저 어두운 골목길의 끝까지 몰린 할머니의 심정은, 정말로 세상에서 혼자인 자, 그래서 몹시 슬픈 자.
그것은 여자의 슬픔이 아니었을까.
평생을 자신이 반한 여자라고 하는 아름다운 존재이고 싶었으나, 그것을 억지로 눌러야 했던, 그럼으로써 온전하게 여자일 수만도 또 온전하게 할머니일 수만도 없던 어떤 이. 그래서 결국에는 모든 것을 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뒤덮을 수밖에 없던 이.
모종의 신성한 의무를 규정하는 도덕주의의 언어를 절대적인 진리로 삼게 된 끝에, 그 자신의 삶이 무척이나 서러워진 한 여자의 삶이 여기에 있었다.
떠올려보면, 한 번도 의식해본 적은 없지만, 내가 실존주의상담을 하게 된 것에는, 아니 그 이전에 실존주의에 끌리게 된 것에는 어쩌면 할머니의 이 설움을 오랫동안 지켜봐왔던 이유가 크게 작용할지 모른다.
언어가 어떻게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가?
언어로 만들어진 가상이 인간 자신이 정말로 살고 싶었던 그 현실을 왜 못얻게 만드는가?
실존주의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고, 또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아마도 할머니를 돕고 싶었던 것이리라.
아니 차라리 여자가 그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그 현실로 향하는 일을 돕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다.
이 과잉모성의 시대에, 나아가 그것이 도덕주의로 더욱 정당화되고 있는 시대에, 내가 왜 이런 말들을 하고 있는지 그 이유도 동일할 것이다.
할머니가 나의 할머니이기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그녀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내가 아주 많이 좋아하고 사랑한 것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그녀가 이제 이 세상에 없는 것은 바로 그 자유의 현실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나는 그 영혼의 아름다운 빛을 분명 맛본 적이 있기에.
아무리 세기말의 난장처럼 모든 아름다움이 무너진 속에서도, 그 맛만은 결코 사라질 수는 없었다. 그것만은 영원히 아름다울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말해야 하리라.
할머니, 도시락 맛있었어요. 늘 맛있었어요.
당신의 모든 것이 무너져가던 그 순간에도 도시락으로 전해주신 그 빛을 저는 기억합니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