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밤의 요정"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또 강둑을 자전거로 달리는 것이 좋다.
돌아보면 가장 외롭던 기억에는 늘 자전거가 등장한다. 자전거는 나에게 마치 골든 리트리버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내 외로움을 옆에서 충직하게 지키고 있던 아주 선량한 그 무엇이다.
자전거는 많은 순간을 지켜보았다.
저녁놀이 지는 공원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설움에 오열을 쏟을 때도, 강변의 벤치 위에 어떤 편지처럼 강아지풀을 작은 돌과 함께 놓아보고 있을 때도, 또 소나기가 개인 여름밤 옛동네의 골목길을 정처없이 누비고 다닐 때도 자전거는 언제나 나와 함께했다.
자전거라고 말하니 몇십 년은 타고 다닌 매우 빈티지한 어떤 하나의 실체가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계속 바뀌었다. 많은 자전거들이 내 곁을 거쳐갔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는 그 모든 자전거를 하나의 자전거로 경험하곤 한다. 흡사 자전거의 영혼이 계승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결국 나에게 자전거란 대상적 소재가 아닌 것이다. 하나의 자전거로 인식되는 것은 타는 내가 같아서다. 곧, 나에게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나를 경험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나는 나를 타고 여행하며, 나에게 지켜봐지고, 나와 늘 함께다.
가장 외롭던 기억에는 그렇게 늘 내가 있었다.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나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나를 만나는 시간. 나는 괜히 좋아했던 것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가끔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달리고 있을 때면 요정들이 내 궤적을 따라 함께 비행하는 상상이 들곤 한다. 반짝반짝한 빛줄기를 그리며 종횡무진으로 날고 있는 그 모습이 황홀하다.
그럴 때는 가슴에 어떤 감각이 차오른다. 무척이나 자유롭고도 경쾌한. 흡사 내가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그 어떤 충만감이.
그런 심상을 치우고 현실의 아스팔트로 돌아와도, 가슴의 감각은 남아 있다.
그래서 알게 된다.
이 또한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내 것이었다.
나는 이 거리를 자유로이 활공하고 있던 밤의 요정. 그것은 나의 자유로움이었으며, 나의 어여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만남.
자신과의 만남.
삶은 자신을 만나러 온 시간이다.
자신의 눈에 비추이고, 지켜봐져서, 지금 그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 아무도 없는 밤에도 그것만은 있었다. 그 영원한 햇살만은 반드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