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존주의 묵시록"
인간의 운명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알아야, 비로소 자신의 자유를 알 수 있다.
운명이란 인간이 그 자신을 묶어낸 것. 인간이 어느 자리에 그 자신을 속박해두었는지를 알아야, 인간은 그 자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묶는 일을 우상화라고 하며, 이 우상화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향해 가려는 인간의 본성을 종교성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역사란 언제나 이 운명과 자유 사이의 요동이었으며, 곧 우상화와 종교성 사이의 역동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종교사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통째로 종교사다.
그렇다면 인간의 운명으로 작용하는 모든 소재는 종교현상이다. 이 문명사회에서 인간을 옭아매는 모종의 사회현상들은 다 종교현상이다. 종교적으로 해석되어야만 그것은 가장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한계인지에 대해서도, 또 그 해소책에 대해서도 매우 선명해진다.
오늘날 인간의 운명은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묻는 방식은 결국 인간이 현재 어떤 것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으며, 또 그것에 강렬하게 집착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인간의 모든 집착의 근원적인 이유는 신이다.
인간은 신이 되는 일에 집착한다.
이것은 가장 일상적인 차원에서부터 벌어지는 현상이다.
한 가족의 가장은 돈을 벌어옴으로써 가족들에게 신이 되고자 하며, 사회적으로 자신을 무력하게 느끼던 여성은 아이를 낳음으로써 그 아이에게 신이 되고자 한다. 또 연예인과 정치인, 인플루언서들은 대중들의 인기를 모음으로써 신이 되려고 하고, 지식인들은 많은 정보를 수집함으로써 신이 되려고 한다.
한 시대에 이처럼 신이 되고자 하는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하게 해줄 것처럼 기대되는 소재, 그렇다면 그것이 그 시대에 속한 인간의 운명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그러한 소재는 아주 분명하게도, 미디어다.
카메라와 마이크가 인간을 신으로 만들어준다.
이 시대에 유행하는 "개인이 곧 매체다."와 같은 말은 "개인이 곧 신이다."라는 함의를 갖고 있다.
떠올려보면 분명하다. 개인미디어로 무수한 인기를 끌어모은 미디어장사꾼 내지 미디어선동가들이 오늘날 얼마나 자신의 영향력을 신처럼 뽐내고 있는지는. 그들의 신도들에게 그들은 교주 정도가 아니다. 신 그 자체다. 어벤져스의 한 일원이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뉴미디어(new media)의 발달을 통해 인간이 신처럼 군림하게 되는 이 일이 가능해졌다. 그것들은 결국 신의 이야기인 '신화'를 만들어내는 도구들, 이른바 '미스미디어(myth media)'라고 불려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그 이상이다. 이 신화창조가 오늘날 미디어의 특정한 기능이 아니라 핵심적 기능이라면, 그렇게 오직 인간이 신이 되는 일만을 위해 기능하는 것이 미디어의 본질적 속성이라면, 이제 그것은 '뉴미디어(new mythia)'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운명이다.
우리는 뉴미디어의 축복 또는 저주 속에 태어났다. 어느 쪽이든 간에 신들로부터 받은 운명의 세례다. 저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무리 커다란 신들의 축복이라도 그것은 인간에 대한 속박의 사슬이다. 복지를 약속받음으로써 노예는 그 자신의 노예화된 상태를 공고화한다. 자신을 구속하는 것에 더욱 강하게 자신이 스스로를 동여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우리는 아주 정확하게 '관계'라고 부른다.
뉴미디어의 신화는 관계를 근거로 창생된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신이 되기만을 꿈꾸어온 인간은, 관계의 힘을 통해 한 개인에게 힘을 몰아줌으로써 그 개인이 신처럼 행세하는 일이 가능해진 현실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최초의 발견은 아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의 비유는 바로 이 현실을 시사한다. 관계는 언어로 구성되며, 언어를 한데 모으는 선동의 언어를 발화함으로써 관계의 힘은 더욱 증대된다. 인간이 이러한 언어 및 관계의 힘으로 하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던 것이 바벨탑 신화의 내용이다.
과거의 이 신화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오늘날에는 조금 다르다.
더 많은 이들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이제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방대한 공사인력들이 모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수가 적어서 실패한 것이라면, 더 많은 인간으로, 그 관계의 힘으로 다시 도전해볼 것이다. 이것이 뉴미디어가 낳은 새로운 바벨탑 축조계획의 전모다.
비극은 무엇인가?
우리는 만리장성을 짓기 위해 동원되어야 했던 인부처럼, 어떠한 방식으로든 뉴미디어의 새로운 올림푸스를 짓는 일에 동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개인은 매체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우리 자신도 어떠한 스피커나 커뮤니케이터 같은 것이 되지 않으면 어리석은 바보 취급을 받게 되는 것 같다. 방방곡곡에 우리를 미디어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유인책들이 깔려 있으며, 우리는 늘 질투와 증오심 또 열등감이 자극받는 강한 어그로가 끌리게 된다.
이처럼 뉴미디어의 시대에서 우리는 늘 이 '신들의 전쟁'에 합류하도록 암묵적으로 종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도 신이 되는 그 길인 것처럼 언술되겠지만, 실상은 그저 뉴미디어의 장 자체의 지속과 번영을 위해 우리의 에너지가 착취되는 길일 뿐이다.
뉴미디어를 통해 신처럼 군림하는 미디어주체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들은 얼마나 권력적인가? 권력의 가장 중심부에 붙어서 그 자신이 권력을 운용한다. 뉴미디어의 핵심이 이 권력의 획득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권력은 원래 인간이 신처럼 되기 위해 가장 최초이자 또 가장 최후로 꿈꾸게 되는 소재다.
뒤집어 말하자면, 결국에는 자신이 신이 될 수 없어서 생겨난 그 열등감이 스스로를 보상하기 위해 추구하게 되는 것인 권력인 셈이다. 그러니 어떤 이가 권력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실은 신이 되고자 하는 그 기획이 이미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권력을 갖고 있으니, 권력을 못가진 다른 이들에 대해 상대적인 입장에서의 신적 지위만을 지속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거짓 신'의 위세를.
원래 거짓을 유지하는 일에는 가장 많은 에너지가 든다. 우리가 거짓말을 할 때를 떠올려보자. 그렇다면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에게서 착취함으로써 충당한 것이다.
뉴미디어가 낳은 오늘날 인간의 운명적 비극이란, 이처럼 미디어가 만들어낸 '거짓 신'의 지위를 지속시키기 위해 우리의 인생이 약탈되며, 우리의 생명에너지가 희생당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실존주의가 언제나 인간의 운명 앞에 선 인간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해보라.
그것은 더는 신에 의해 희생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인간의 그 표정.
그 묵시의 눈동자였다.
인간이 신인 척하기 위해 그 손에 든 것이 미디어였다면, 그 거짓 신들에게 맞서기 위해 진짜 인간이 이제 손에 드는 것이 실존주의다.
이것은 미디어 vs 실존주의의 이야기다.
뉴미디어(new mythia)이니, 그에 대한 신실존주의(new existentialism)다.
결국에는 무엇인가.
신 vs 인간이다.
'거짓 신' 대 '참된 인간'의 장면, 아니 선택.
우리는 선택해야 할 것이다.
뉴미디어의 신화적 권력에 종속된 노예로 살 것인가, 참된 인간으로 자유로울 것인가, 이것은 정말로 선택이다.
인간이 정말로 신을 꿈꾼 것이라면, 거기에는 분명 다른 길이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원래 그 하나의 길이었다.
참된 인간만이 참된 신을 불러온다.
어느 종교적 전통에서나 다 이 얘기를 한다.
신비주의는 개인이 참된 인간으로 살아감으로써, 그의 삶에 직접적으로 참된 신을 초대하게 되는 그 과정에 대한 묘사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신비주의다.
인간의 오랜 소망을 정말로 이룰 수 있게 되는 그 길이다.
감히 우리가 참된 신의 이름을 말해보려 하는 바, 그것은 자유다.
자유만이 인간에게 있어 참된 신이다.
뉴미디어의 거짓 신들도 자유를 말한다. 자신들이 민중을 해방시키고, 사악한 권력으로부터 시민들의 자유를 지키는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외친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자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권력이 있다고 말하는 그 '거짓 자유'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참된 자유다. 참된 신의 이름이다.
참된 자유는, 자신이 얼마나 신적인 존재인지를 카메라 앞에서 연출하고 스피커로 부르짖는 이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정말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그 참됨을 정직하게 묵시하고 있는 인간이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자유를 향한 인간의 그 거룩한 여정을 담은 실존주의 묵시록.
뉴미디어 시대의 운명을 자유하고자 하는 신실존주의 묵시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