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교 연애학 #8

"연애의 빗자루"

by 깨닫는마음씨




원고지는 마당, 펜은 빗자루.


글을 쓰는 일은 비로 쓰는 일과 같다.


낙엽을 잘 쌓아놓으면 무엇인가 그럴 듯한 것이 만들어진 것처럼도 보일 것이고, 어떤 심미적 가치도 생성될 수 있을 것이다. 정 아니면 군고구마를 익혀 먹을 수도 있고, 라면을 끓이기 위한 땔감으로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만들기 위해 빗자루질을 했던 것은 아니다.


글을 쓰는 일도 정말로 이와 같다.


실은 뭔가를 만들려고 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뭔가를 날려서 가볍게 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작가들은 이 일을 자주 경험한다. 그들은 어떤 '말함의 충동'에 사로잡히며, 충분히 말해지기 전까지는 이 충동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이 쉽지 않다. 글쓰기의 영감을 받는 순간은 흡사 무속인이 영가에 빙의되는 상황과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내막을 조금은 더 정교하게 살펴본다면, 결국 이것은 작가라고 하는 감수성이 잘 발달한 이들이 마음의 작용을 더 섬세히 포착하게 됨으로써, 마음이 하고 싶던 말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개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은 말이 되고 싶어하는데, 말이라는 것이 가장 쉬이 얻을 수 있는 형상이라서다. 육체없는 영가가 육체를 얻고 싶어하듯이, 애초 말이 아닌 마음은 말을 얻고 싶어한다. 그래야 마음이 일어난 어떤 의도를 전할 수 있어서다. 오랜 시간 동안 무시되거나 소외되어온 마음일수록 말이 되고 싶어하는 이 지향은 커진다. 마음의 의도가 전해지는 일이 봉쇄되어왔으니, 더 분명한 형상이 됨으로써 기필코 전해지고 싶은 까닭이다.


그러니 빗자루질에는 방향성이 있다. 막 쓰는 것 같지만 실은 일관된다.


안에서 밖을 향해 쓸어낸다. 그렇게 안에서 밖을 향해 바람이 불게 한다. 그 바람에 낱말들이 실려 당도하고 싶던 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열심히 정성스레 쓴 뒤에 우리가 시원함을 경험하는 것은, 이제 그 마음들이 잘 날아갔기 때문이다. 편지들이 잘 전송되었다. 답장이 없을지라도, 쓴 이가 가볍고 경쾌하다면 편지는 성공적으로 송달된 것이다.


지금 이러한 사건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보자.


주인공은 마음이었다.


말하고 싶던 마음이, 곧 말이 되고 싶던 마음이 주인공이었고, 우리는 주인공이 활약할 수 있도록 공간을 빌려준 무대다. 마당이며 원고지다.


그렇게 이해해야 우리는 이제 그 다음의 얘기에 접근하는 일이 수월해진다.


결국 연애는 글을 쓰는 일과 유사하다. 또 비로 쓰는 일과 유사하다.


우리가 연애의 상황에서 무척 많이 경험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떠올려보자. 우리는 이렇게 자주 생각하곤 한다.


'제발, 말도 안되는 소리 좀 그만 해라.'


그 말도 안되는 소리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무거운 중력의 무게에 시달려왔는지도 같이 한번 기억해보자.


원래 연애란 바로 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더욱 많이 만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말도 안되던 그 마음이 말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또 그 말을 가장 먼저 듣기 위해서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던 것이다.


모든 작가는 가장 최초의 독자다.


빗자루질로 바람을 만드는 이는 그 자신이 가장 먼저 시원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더는 은폐되거나 굴절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분명하게 그 자신의 자유로운 형상으로 드러나는 기쁨을 가장 가까이에서 먼저 누릴 수 있는 것은 사랑을 시작한 이의 특권이다.


우리가 글을 써서 어떤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가 연인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말이 되지 않던 것을 말이 되게 함으로써, 그렇게 이제 말할 수 없던 것을 말하게 함으로써, 우리는 다만 함께 가벼워지는 것이다. 함께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연인이 된 이들은 보다 넓은 마당. 거기에는 자유롭게 이륙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서로를 좋아한다고 하는 이들은 실은 먼저 서로의 사이에서 펼쳐진 그 넓은 마당에 있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마음을 향해 함께 작업한다면 그것은 연애의 일.


글을 함께 쓰듯이, 비로 함께 쓸며, 이제 마음을 함께 쓴다.


서로를 향한 그 마음씀으로, 지금 말이 되지 않는 것이 그동안 말이 되지 못했던 그 이유를 똑같이 반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말이 될 수 있도록 서로의 공간을 더 시원하게 열어낸다.


그러면 마음이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할 것이다.


경쾌히 날아올라 가장 먼저 이 최초의 독자들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


서로는 이러한 자유로운 마음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서로가 더욱 좋아질 것이다.


글을 쓰는 일, 비로 쓰는 일, 마음을 쓰는 일은 다 같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크고도 멋진 것으로 발견하게 해준다. 드넓은 자유의 공간으로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되는 그러한 것으로서.


이처럼 자기 자신을 진짜로 순수하게 좋아하고 있는 이를 다른 누군가가 좋아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거기에 펼쳐진 자유의 공간에, 날아오르고 싶은 그 누군가의 마음이 먼저 자동적으로 끌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마음에게 가장 매력적인 존재가 되는 이 일이, 곧 '마음의 연인'이 되는 일이 그대로 '인간의 연인'이 되는 일이다.


이 일이 서로에게 일어난다면, 우리는 서로를 더욱 매력적인 존재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며, 더 많은 마음의 기쁨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연인들은 언제나 함께 빗자루를 들고 있는 것이리라. 아니, 함께 빗자루를 들고 미소짓고 있는 그들을 우리가 연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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