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이여, 세계를 박살내보자"
기회가 된다면 한번 찾아봐라. 찾을 수 있는지.
서로를 가득히 포옹하고 있는 연인들 사이에는 세계라는 것이 없다.
그런 것이 들어올 틈이 없다.
연인들에게 가장 없는 것, 그것은 세계다. 가장 필요하지도 않은 것, 그것 또한 세계다.
연인이 없는 이들이나, 다시 만난 세계 같은 것을 외치며 광장으로 뛰쳐나간다.
연애에 무력하거나 연애의 감수성이 발달하지 않은 이들이 연애 대신 늘 찾는 것이 세계다. 즉, 자신의 가슴속에 사랑이 없는 이들이 세계라고 하는 가상의 구조 속에 끼어서 사랑받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라는 것은 엄마의 요람 같은 것이다. 그것의 연장선이다.
우리는 세계를 위해 싸운다고 하는 히어로들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서사를 피로할 정도로 많이 접해왔다. 그만큼 세계의 가치를 선동하는 세뇌에 자주 노출되어온 것이다. 이것의 정체는 그저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해 일하는 착한 아이가 되면 사랑받을 것이라는 오랜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세계의 방식'으로 연애를 시도하고 있다보니, 우리에게는 연애라는 것이 무척 힘든 소재가 되거나, 또는 상호착취의 결과물이 되어왔을 뿐이다.
연애고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연인을 향하지 않고 세계를 향하고 있을 때 그 모두는 연애고자가 된다.
세계가 옳다고 규정한 바대로 자신이 모범생처럼 열심히 하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는 이 '세계의 방식'으로 연인을 대할수록, 우리는 가장 빠르게 연인을 잃게 된다. 상대의 마음이 보이지 않게 되며, 결국 연애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기쁨이 사라진다.
당연하다. 이러한 방식 속에서는 상대의 마음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얼마나 자신의 도의적 역할을 유능하게 잘 해내는가의 그 문제뿐이다. 자신이 잘하면 사랑이라는 보상이 올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 연애란 다 자기 하기에 달렸다는 이 형편없는 생각은 결국 연애에 대한 가장 큰 폭력이 된다.
아직 사랑할 자격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나아간 얘기일까?
최소 이러한 이가 아직 사랑할 준비가 안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할 것이다.
아동에게는 엄마가 세계다. 그래서 자신이 애착을 갖게 된 다른 대상도 세계로 간주하려는 나쁜 습관을 갖는다. 그렇게 자기 주위의 모든 것을 세계라는 이름의 '자극-보상 자판기'로 대하며 착취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에는 연인에게마저.
그러니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는 누구도 착취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다. 그러한 이는 성숙하다. 세계를 벗어난다는 일 자체가,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스스로 성숙해지겠다는 그 의미를 이미 내포하고 있다.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은 반드시 절대적으로 마음을 향한다.
그들은 세계가 아니라 마음이 진실로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포착한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이들은 자신의 연인을 세계로 대하지 않고 마음으로 대한다.
곧, 자신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 잘난 존재인지를 상대에게 알아달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상대에 관해 정말로 세심히 알아가려고 한다.
우리는 사랑에 대한 현명한 말들로 다음과 같은 표현들을 접한 적이 있다.
"사랑하라. 기대없이."
윌리엄 블레이크도 이렇게 노래했다.
"가서 사랑하라. 이 세상에 의지할 것 하나 없을지라도."
이 말들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동일하며, 분명하다.
세계를 무너뜨리고, 세계 없는 곳에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온전한 사랑의 일이다.
사랑은 언제나 세계를 박살낸다.
신분, 계급, 출신, 재산, 지위 등의, 세계를 구성하는 그 모든 벽을 박살내고, 결국에는 세계 자체를 박살내며, 우리가 사랑하는 이 앞에 우리를 기필코 당도하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왜 살아있는 기적이라고 불리는가?
사랑이 언제나 인간을 가로막는 세계를 박살내고 있어서다.
사랑에는 왜 불가능이 없다고 말하는가?
사랑 앞에서 세계의 그 어떤 높다란 벽이라도 반드시 박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몽룡이 기득권인 변사또를 혼내주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인 춘향이를 신분상승시켜주는 그 일이 사랑의 일인가? 하위계급이 상위계급을 전복시키는 계급혁명이 사랑의 일인가? 또한 강자가 약자 앞에 무릎을 꿇고 이제 약자가 진정한 승리자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 사랑의 일인가?
아니다. 그런 것이 바로 세계의 일이다.
사랑은 거지가 부자에게 이기게 하지 않고, 서민이 재벌에게 이기게 하지 않으며, 약자가 강자에게 이기게 하지 않는다. 그런 세계의 마당놀이에 도통 관심이 없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오직 하나에만 관심을 갖는다.
거지도 없고 부자도 없는 현실, 서민도 없고 재벌도 없는 현실, 약자도 없고 강자도 없는 현실, 그렇게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이가 그 누구도 아닌 오직 그 자신으로서만 피어나 있는 현실이, 사랑이 관심하는 유일한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이라고 불린다.
그것은 조건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조건이더라도 그 조건을 넘어서 반드시 닿겠다고 하는 사랑의 약속이다.
세계는 상대적이고 조건적인 것, 사랑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이다.
그래서 세계에는 자꾸만 인간이 자신을 상실해갈 벽이 세워지고, 사랑은 자꾸만 벽을 박살내감으로써 사랑하는 인간의 얼굴을 바로 찾는다.
세계를 구원할 시간에 자신을 구원하라는 금언을 기억한다면, 이것이 그러한 사랑의 의미를 함축하는 것이다. 유사하게 또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 세계[엄마]를 만나러 나갈 시간에, 자기 자신으로서 이제 성숙해지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세계를 박살내볼 준비가.
사랑하는 연인과 서로를 가득히 끌어안을 준비가.
심심하면 한번 찾아봐라. 이미 세계 같은 것은 그 사이에 없다.
있는 것은 벅차게 뛰어오르는 가슴(heart)의 운동.
우리의 살아있는 마음(heart).
사랑(heart), 그 실재만이 언제나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그 전부였다.
그것만이 있었으며, 그것만이 영원하였음이라.
인간이라는 이름의, 사랑할 줄 아는 우리 모두에게는, 온전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