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종교심리학 #4

"마음의 초월성"

by 깨닫는마음씨


illustration-dawid-planeta-02.jpg?type=w1600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초월적인 소재로 보는 것이 종교심리학의 한 관점입니다. 초월성이라는 표현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이 경우 우리는 경계를 넘어서는 문제를 얘기해볼 수 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 몸 안과 몸 밖의 경계, 자신과 세계의 경계, 이 모든 경계들을 마음은 초월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속성을 가리켜 비이원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애초 분리된 적이 없으며, 분리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심리상담자들은 종종 이러한 마음의 비이원성을 경험하곤 합니다. 내담자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으며, 그 성격이나 성장배경 등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내담자의 상태를 자기 자신의 상태처럼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경험들이 일어납니다. 흡사 상담실에는 하나의 인간만이 앉아있는 것처럼.


또 유사하게, 어떤 과거의 인물에게 반해 그를 깊이 이해하려고 책을 읽는 이들 또한 이러한 경험을 합니다. 한순간 그 인물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그 문장의 내용을 넘어 그의 삶 전체가 다 들여다보이는 경험입니다. 심지어는 그가 그 다음 순간 무슨 말을 하게 될지도 알 것 같습니다. 그가 이미 죽은 까닭에 책 너머의 것을 그의 입으로 미처 말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경험 속에 있는 이의 입에서 이제 나오게 되는 말은 분명 그 인물의 것입니다. 책의 저자와 독자는 완전하게 하나의 인간으로 일치했습니다.


빙의, 공수, 신들림, 영매 등의 현상은 많은 경우 이 마음의 초월성에 의해 생겨나는 일들입니다. 여기에서 마음은 분명 시공이라는 경계를 초월해 우리를 하나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이와도 마치 그 사람이 된 것처럼 경험하게도 되며, 멀리 있는 이의 상태도 종종 우리 자신의 것처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잃어 무척 속상해하는 이가 있습니다. 고통이 너무 극심해 자신을 잃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그는 모친에 대한 애착이 강했고, 곧 모친을 향하던 관심의 강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엄마 없이는 자신은 제대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러한 그가 정신을 추스리고 회복을 도모하게 되는 방향성이란, 대개 그 자신이 엄마 같은 모습이 되려는 양상으로 드러납니다. 엄마가 부재하니 그 자리에 엄마가 끌어당겨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기 주변 및 세상의 모든 것을 흡사 가엾은 아이처럼 보며 그것들에 대한 돌봄과 헌신의 행위를 시작합니다. 길고양이들을 구조하러 다닌다든가, 주위 사람들에게 현명하고 인자한 조언자처럼 행세하려 하는 등, 그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성의 모습을 자신의 언행을 통해 구현하고자 힘씁니다.


정확히는, 자신이 잃은 그 모친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녀가 너무나 그리워, 이제는 자신이 직접 그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녀가 생전에 지었던 그 한숨과 비탄의 목소리도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자신이 이렇게 희생해봤자 누가 알아주냐는 둥, 그래도 안쓰러워서 또 어떻게 버리겠냐는 둥, 그의 모친이 그에게 했던 얘기들이, 이제는 그의 입에서 다른 이들을 향해 흘러나갑니다.


그러다가, 거의 반드시, 이들은 진짜 불쌍한 아이 같은 대상을 만나게 됩니다. 이를테면, 고아처럼 모성이 가장 필요한 이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상 앞에서 이들이 필연적으로 하게 되는 일은 그 고아와 같은 대상을 절벽으로 미는 일입니다. 그래야 일치된 구조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엄마를 잃은 아이와, 아이를 잃은 엄마가 일치된 그 구조가.


엄마를 잃은 아이의 입장이었던 자신이, 이처럼 이제 엄마의 입장이 되어 아이를 잃게 되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창조함으로써, 이들은 결국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이였던 자신이 엄마를 잃어 너무나 속상했던 그 심정과 정말로 똑같이, 자신이라는 아이를 잃게 된 엄마도 실은 그토록 속상했다는 것을.


자신에게 엄마가 그리도 소중했던 것처럼, 엄마에게도 자신이 그토록 소중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이것이 우리가 애도라고 부르는 그 정확한 상황입니다.


참된 애도는 우리가 잃은 그 사람의 심정을 정말로 이해할 때 가능해지는 것이며, 우리는 마음의 초월성을 통해 그 일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몸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직접 경험하게 되는 그 일은 흡사 구원과도 같습니다. 더는 분리되지 않으며, 분리될 수도 없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늘 우리 옆에 함께 있는 것 같은 경험, 그 실감. 우리 안에 우리가 사랑했던 이가 진실로 머물고 있는 것 같은 그 설명할 수 없는 확신. 그리고 삶의 어느 순간, 그들이 돌연히 우리의 눈과 입을 빌어 그 모습을 드러내곤 하는 경험은 우리 모두가 누구나 한번쯤은 하게 되는 매우 일상적인 경험입니다.


이것은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초월성이 그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고전적인 비유로 "우리 안에 천국이 있다."와 같은 표현은 이러한 현실을 지시합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이 가득 차있으며, 우리는 늘 그것들과 함께이자, 하나입니다. 물리적으로 그것들이 우리를 떠났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자리를 옮긴 것입니다.


아직도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바로 이 마음속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사랑이며, 사랑만이 인간의 모든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아주 심원한 사실에 정말로 근접해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사랑의 위대성은 그것이 모든 경계를 넘어서는 가장 초월적인 것이라는 점에 있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사랑으로 다시 발견하고자 하는 이 위대한 여정 속에 있습니다. 종교심리학의 길입니다.



작가의 이전글일상의 종교심리학 #3